[ 특집 ] 2002년12월05일 제437호 

“나와 남편을 구별해달라”

세계 대통령과 총리의 부인들… 평범한 주부, 전문가에서 ‘진정한 야당’의 역할까지


사진/ '블레어 총리의 아내'이기에 앞서 유능하고 실력 있는 변호사로 곱히는 쎄리.


지난 1997년 영국 총선에서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가 당선됐을 때 언론은 그의 부인 셰리 부스에게 계속 물어댔다. “남편이 총리면 내조할 일이 많을 텐데 계속 일을 하실 건가요” 오래전부터 변호사 일을 해온 셰리 부스는 큰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제가 일을 계속하지 못할 까닭이 뭐죠”

총리관저로 들어가서 막내를 낳아 이제는 네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인권전문 변호사로 때론 남편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며 당당하게 자기 길을 가고 있다.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 부인 다니엘 미테랑 역시 남편보다 진보적인 견해를 지닌 활동가로 유명했다.

힐러리와 셰리의 차이

‘바이 원, 겟 원’(하나를 사면 하나는 덤!)이라는 슈퍼마켓식 판촉구호를 앞세워 백악관에 들어간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의 말 많던 대통령직이 끝나자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뉴욕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그의 오랜 숙원인 정치인으로서 당당히 홀로서기를 하게 된 것이다.


사진/ 클린턴의 임기가 끝나자 당당히 홀로서기를 한 힐러리. (GAMMA)


흔히 현대적 ‘영부인’상을 그리는 데 자주 예로 등장하는 힐러리와 셰리는 둘 다 법률가 출신으로 매우 명석한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 부인 역할에서는 차이를 보인 게 사실이다. ‘퍼스트 레이디’라는 용어와 역할이 분명히 있는 미국과는 달리 영국은 총리의 배우자를 위해 법적으로나 공식적으로 명시된 규정이 없다. 미국이 역대 대통령 부인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고 그들의 역할을 비중 있게 다뤄온 데 비해 영국에서는 그냥 ‘총리의 아내’일 뿐이다. 셰리 부스를 대단히 유능하고 실력 있는 여성으로 꼽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총리 부인이라는 사실이 그의 경력에 크게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도 거의 없다. 국민의 이런 믿음은 셰리 부스의 배경이 워낙 서민적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리버풀의 가난한 집안에서 일곱딸 가운데 맏딸로 태어났고, 연극배우인 아버지는 일곱살 때 집을 나가버렸다. 홀어머니 밑에서 공립학교를 다니며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왕실 고문변호사로 일했다. 최근 그가 총리관저에서 열린 범죄관련 세미나에서 좌장을 맡자 야당인 보수당은 총리 부인의 ‘정치 관여’라고 비난했다. 물론 셰리의 반응은 “나와 남편을 구분해달라”는 것이었다.

영국의 역대 총리 부인들은 대부분 드러나지 않게 살았으며, 실제로 ‘히든 파워’를 발휘하지도 않았다. 메이저 전 총리의 부인 노마 메이저도 그저 수수한 ‘전업주부’였다. 전임인 대처 총리가 워낙 카리스마가 강해 후임 메이저 총리는 웬만해서 드러나지 않는 인상이었는데, 그의 부인은 남편보다 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숨어 있지도 않았다. 노마는 평범하고 조용한 자신의 이미지에 맞게 주부로서의 생활을 대중과 나누는 활동을 했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차를 만들 때 티백을 두번 우려내고 먹는 편이라고 말하며 아이스크림 통을 씻어서 냉동보관 상자로 쓰면 좋다는 생활의 지혜를 내놓기도 했다. 최근 메이저 전 총리가 재임시절 그의 각료인 한 여성장관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보도가 나오자 메이저는 그런 사실을 인정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아내에게 용서를 받았노라”고 고백했다. 영국민은 노마 메이저가 용서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놀랐을 것이다.

루스벨트 부인 엘리너의 활약


사진/ 드러내놓고 남편 루즈벨트의 정책에 간여한 엘리너(가운데는 딸).


“대통령의 아내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관심 있는 활동에 참여해도 좋은가” 이 물음에 응답자의 70% 이상이 좋다고 대답했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1938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활동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다. 엘리너는 뉴딜정책으로 미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남편 루스벨트 대통령 못지않게 역사적 인물로 기억된다. 힐러리를 포함해도 역대 미국 대통령 부인 가운데 아마 엘리너만큼 역동적인 활동을 한 이는 드물 것이다. 그는 드러내놓고 남편의 정책에 간여했다. 그것도 베갯머리 송사가 아니라 세계 각 곳을 누비고 돌아와 남편에게 대안을 내놓는 식이었다. 백악관 안에서의 직언은 물론, 언론매체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쓴 ‘나의 하루’라는 칼럼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글이었다. 전쟁과 대공황에 시달리는 미국민 앞에서 펼친 엘리너의 왕성한 활동 덕에 루스벨트는 4선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엘리너는 유엔인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1948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의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엘리너는 독립된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지만 남편과의 사랑에서는 누구보다 고독하고 쓸쓸한 여자로 살아야 했다. 그에 비해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은 의상비의 과도한 지출을 놓고 남편과 싸우긴 했어도 정치적인 문제로 남편과 맞선 적이 거의 없었다. 우아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며 자신의 매력을 국제외교에 활용할 수 있게 행동할 만큼 똑똑한 여성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남편의 곁에서였다.

아직 아무도 후보 부인을 보면서 대통령을 뽑지는 않는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편보다 아내가 한발 더 나서는 것을 곱게 봐주지 않는 게 사실이다. 힐러리가 뛰어난 정치력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측근들은 대통령과 함께 보고받으려는 대통령 부인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사진/ 어디까지나 남편 케네디의 곁에서 자신의 매력을 국제 외교에 활용했던 재클린.


세계적 흐름을 보면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진정한 야당’의 역할을 자임해서 주변에서 못하는 직언을 과감하게 하는 것이다. 엘리너 루스벨트나 다니엘 미테랑이 전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셰리 부스처럼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주변의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만 이런 행동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비전을 제시한다. 그러면 전문성이 없는 대통령 부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평범한 주부로 있다가 대통령 부인이 된 뒤 자신이 놓인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현명하게 벌인 경우도 있다. 미국 포드 대통령의 부인 베티 포드는 자신의 유방암을 발표해 당시 누구나 밝히기 꺼린 유방암 문제를 양지로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당사자의 개성과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심스럽고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손만 흔들고 사라지는 대통령 부인의 모습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게 세계적 추세다.

권은정/ 자유기고가 ujkwo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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