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12월05일 제437호 

‘전업남편’은 없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영부군’의 사례… 대처 남편은 약간 얼간이로 여긴 경향도


사진/ 대처와 남편 데니스 대처. (SYGMA)


‘영부인’의 세계는 비교적 알려졌지만 ‘영부군’의 사례는 많지 않다. 가장 잘 알려진 이는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남편 데니스 대처일 것이다. 그는 마거릿 대처와 재혼한 사업가였지만 부인이 총리가 된 뒤에는 대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국민은 그를 약간 ‘얼간이’로 여기는 경향도 있었다.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총리의 남편은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대학교수 피터 데이비스다. 부부는 젊었을 때부터 열렬한 노동당원이었다. 노르웨이의 총리인 그로 브룬틀란드의 남편인 아르네 브룬틀란드 역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부인이 1974년 환경부장관 자리를 제의받고 정계에 진출할 때 이들 부부는 가사와 세 자녀의 양육문제를 놓고 속 깊은 얘기를 나눴다. 남편 아르네는 당시 “당연히 내가 살림과 아이들을 맡겠소. 그러나 내 방식대로 할 거요”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모든 남편이 국가 지도자인 부인에게 도움을 준 것만은 아니다.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총리는 남편 때문에 정치생명에 타격을 입은 경우다. 남편 알리 자르다리는 유명한 재벌 2세로 부인의 정치적 후광을 업고 국내에 유입되는 모든 투자건과 관련해 커미션을 받아내서 ‘미스터 30퍼센트’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는 6년형을 선고받고도 옥중 출마를 선언할 정도로 부토 총리의 속을 썩였다. 인도네시아 메가와티 대통령의 세 번째 남편인 타우피크 키에마스는 정치인이자 사업가 출신이다. 그는 60년대에 학생운동가로서 미래의 장인인 수카르노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다 3년간 투옥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 사업과 관련해 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 필리핀의 아로요 대통령은 변호사이자 사업가인 남편 호세 미구엘 아로요의 활동으로 덕도 입었고 타격도 받았다. 남편이 텔레비전 프로의 진행까지 맡아 지명도를 높였지만 정보통신관련 사업 허가를 놓고 스캔들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여성 정치 지도자의 수가 적은 탓에 ‘영부군’의 역할은 일반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례를 통해볼 때 대부분 사업가 아니면 교수라는 공통점이 있고, 사업가이면 검은 거래를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전업남편으로서 ‘영부군’이 된 경우는 아직 없다. 시대적 추세로 보아 그런 경우가 조만간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권은정/ 자유기고가 ujkwo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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