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ww.hani.co.kr/h21 |
|
|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2.11.28(목) 제436호 |
|
[특집] “혀로 핥아 독을 빨아내고…” 역사 속의 치질… 나폴레옹·히포크라테스·루이14세도 한동안 고생
치질은 현대인의 질병인가 과다한 육류 섭취와 식이섬유 섭취량 부족, 오랜 시간 앉아서 생활하는 현대인에게 치질은 평생을 안고 가는 질병이다. 하지만 고대에도 치질은 인류를 괴롭히는 ‘말 못할 고민’이었다. 의학사에서 치질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서로 전해지는 것은 기원전 3000년께 쓴 것으로 추정되는 <스미드 파피루스>다. 기원전 1000년에는 인도의 수스루타가 쓴 <삼히타>에서 치핵·치루·직장탈 등 많은 수술을 언급했으며, 부식제를 사용해도 치료효과가 없는 치핵은 말총으로 묶어 제거하는 결찰요법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서너마리의 거머리를 갖다붙여라”
또 구약성서 사무엘상 5장에는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독종’은 다름 아닌 치핵이다. 기원전 460년에 태어나 104살까지 장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진 히포크라테스도 그의 저서에서 치루와 항문 주위 농양, 치핵에 대해 상세히 썼다. 동양에서도 치질에 대한 관심은 일찍부터 문헌에 남아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쓴 <산해경>에는 치(痔)와 루(瘻)라는 병명이 나온다. 또 <장자>에는 치질에 대한 일화도 실려 있다. “주왕이 치질에 걸려 명의를 불러 치료를 하라고 했더니, 명의는 칼로 치질을 째고 혀로 항문을 핥으면 낫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항문을 찢고 치료를 했는데 이런 의원에게는 수레 한대를 주었으며, 혀로 핥아 치질의 독을 빨아낸 자에게는 수레 다섯대를 하사했다.” 역사적 인물 가운데도 치질로 고생한 이들이 여럿이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를 치르는 동안 치핵이 심해 고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1807년 자신의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네가 치핵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이해한다. 치핵을 치료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서너 마리의 거머리를 갖다붙이는 것이다. 나는 이 치료법을 사용해 10년 동안 별 탈이 없었다”고 적었다. 또 ‘태양왕’ 루이 14세도 치질의 일종인 치루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프랑스의 외과의사 프랑수아 펠렉스가 루이 14세의 치루를 성공적으로 수술한 것을 계기로 외과의사의 지위가 높아져 1731년 왕립외과학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동의보감>에 나오지만 인물기록은 없어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땠을까 허준의 <동의보감>을 보면 맥치·장치·기치·혈치·주치는 내치질에 속하며, 모치·빈치·루치·치루는 외치질이라고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치질의 종류를 9가지로 자세히 나눈 것으로 보아, 당시 치질이 널리 퍼져 있는 질병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 가운데 치질을 앓은 인물이 있다는 기록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오랫동안 책을 읽은 옛 선비들 가운데는 치질환자가 제법 많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체면 때문에 ‘더러운 곳’에 생긴 병을 입 밖에 내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대장·항문 전문병원이 급격하게 늘면서 우리나라에서 한해 이뤄지는 치질수술 건수만 12만~13만 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 건수가 모두 새로 발병한 건수는 아니다. 항문질환 병원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온 환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항문·대장 전문병원이 전무한 시절에 치질환자들은 비뇨기과로 가거나 심지어 피부과를 찾기도 했다. 대장암·직장암 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항문질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치질수술이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혈변을 보거나 항문출혈이 있는 경우 ‘암’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즉각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일본 등지에서는 항문질환보다 대장질환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다. 세계 최초의 항문질환 전문병원으로 1835년 프레드릭 샐먼이 런던 북서부에 개설한 성마크병원도 이미 대장질환쪽으로 전문분야를 바꿨다. 육류 섭취량이 급격히 는 반면, 식이섬유 섭취량은 줄어들면서 대장질환이 많아진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항문질환보다는 대장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