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에 사는 가정주부 임아무개(32)씨는 지난 5월 말 텔레비전으로 유선방송을 시청하다가 방송 중간에 나온 홈쇼핑 광고를 보고 베스트월드의 소형 진공청소기를 7만9천원에 구입했다. 신용카드 3개월 할부였기 때문에 그다지 부담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임씨는 한달 뒤 끔찍한 일을 경험한다. 7월 초 돌이 막 지난 아이를 데리고 청소를 하던 중 청소기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한 것이다. 장난감처럼 청소기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기는 소리에 놀라 얼굴색까지 파래졌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밖으로 퍼져나온 연기에 불이 난 줄 알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나마 다친 사람이 없다는 데 안심한 임씨는 제조업체에 연락해 환불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 직원의 답변은 ‘교환은 가능하지만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제품을 다시 쓸 수 없다고 강력히 요구했지만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달여를 밀고 당기는 씨름을 했다. 임씨는 하는 수 없이 소비자단체에 연락을 취했고, 그 뒤에야 간신히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사고가 터진 뒤 거의 3달 만이다.

월평균 소비자 상담건수 503건

서울 신길동에 사는 주부 곽정화(35)씨는 더 심하다. 7월 초 위더스 홈쇼핑을 통해 홍익인간의 옥장판 2개를 49만6천원에 신용카드 6개월 할부로 구입했다. 이름도 거창한 ‘음전이 온열치료기 매트’. 하나는 어머님 것, 다른 하나는 자기 것이었다. 그러나 주문한 상품을 받아본 곽씨는 기가 막혔다. 어머니 것은 아예 다른 제품이 배달됐고, 자기 것은 옥의 3분의 1가량이 금이 가고 부서져 있었다. 교환을 받았으나 새 제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시 교환. 그러나 오는 제품마다 불량품이었고 무려 7번을 반품시켰다. 시간도 3달이 지나갔다. 화가 난 곽씨는 환불을 요구했고 환불을 못해주겠다는 홈쇼핑과의 입씨름이 계속됐다. 곽씨는 결국 24만8천원짜리 매트 대신 29만8천원짜리 다른 제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고 말았다. 물론 11월 초까지 4달 동안 겪은 스트레스와 시간낭비는 전혀 보상받지 못했다.

홈쇼핑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방송과 다른 제품, 빈번한 고장, 반품과 환불 거부 등 홈쇼핑을 둘러싼 소비자 피해 사례를 들자면 한이 없다.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TV홈쇼핑 관련 상담건수를 보면 최근의 추세를 알 수 있다. 1~6월 상반기의 상담건수가 월평균 320건이었던 데 반해 7~10월 하반기 들어서는 월평균 503건에 이르고 있다. LG·CJ·현대·우리·농수산 5개 홈쇼핑 전문채널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데다 유선방송 중간에 광고 형태로 홈쇼핑 방송을 하는 유사 홈쇼핑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시장이 극도로 혼탁해지고 있다.

가장 흔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반품과 환불의 어려움이다. 각종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이 결국 반품과 환불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품과 환불 문제는 약간씩 개선되고 있다. 특히 5개 홈쇼핑 전문채널에서는 이전보다 반품과 환불이 훨씬 쉬워졌다.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소비자를 현혹하는 갖가지 수법이다. 이러한 수법은 갈수록 다양하고 교묘해진다. 특히 안방에서 편안한 자세로 쇼핑을 할 수 있다는 홈쇼핑의 장점은 항상 소비자들의 주의를 흐트려놓는다. 간과하기 쉬운 소비자 현혹 사례를 3가지 유형으로 정리해본다.

[유형1 시중가 할인의 함정]
교묘한 가격의 장난

홈쇼핑 방송 내용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가격이다. 홈쇼핑은 항상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을 시중 가격과 비교해 싸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생각처럼 그렇게 싸지는 않다. 잘못하게 더 비싸게 살 수도 있다. 그리고 방송 중 소개되는 시중가 대비 50%, 60% 할인 등의 내용은 거의 사실과 다르다고 보면 된다.

일단 비교 대상이 되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시중가·매장가·직매장가·백화점가·신문판매가·기존가·기존쇼핑가 등 별의별 가격이 다 등장한다. ‘시중가’라 하면 일반적으로 백화점·할인점 등이 아닌 대리점 등 일반 소매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격을 말한다. 뚜렷한 기준이 없을 수밖에 없다. 매장가도 마찬가지다. 매장이란 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LG홈쇼핑은 지난 7월 직매장가 298만원의 동우 옥돌침대 소피아(Q)를 159만원에 판매한다고 방송을 내보냈다가 방송위원회에 적발됐다. 판매대장을 확인한 결과 제조회사 직매장에서 1~2건 판매된 실적을 바탕으로 298만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해놓고 파격적인 가격으로 할인판매한다는 방송을 내보낸 것이다. 농수산TV는 35만8천원에 팔던 삼성 케녹스 Winner105라는 제품을 21만9천원에 판매한다고 방송했으나 용산 직매장을 확인한 결과 그런 상품을 아예 판매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시중가나 매장가라는 표현은 고무줄과 같다. 사실 여부는 실제 판매실적으로 검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최소한의 판매 근거를 남기는 방식이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시중가를 최대한 부풀려 직매장 등에서 1~2건 판매한 뒤 이를 근거로 할인판매한다는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다. 백화점 납품 실적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2~3만원에 불과한 상품을 백화점에 소매가 10만원에 납품하는 것이다. 물론 1~2주일 형식적으로 판매한 뒤 물건을 뺀다. 그 다음에 홈쇼핑으로 “백화점에서 10만원에 팔던 물건을 5만원에 판다”고 떠들어대는 수법이다. 이것도 아니면 신문광고를 이용한다. 높은 가격으로 신문광고를 내놓고 이보다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홈쇼핑 판매를 하는 수법이다. 대부분의 ‘신문판매가’라는 것이 이런 용도로 사용된다.

이런 가격의 장난이야말로 가장 교묘하게 소비자를 현혹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적으로 단속도 어렵다. 실제로 높은 시중가에 판매한 실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피해가는 방법은 소비자의 몫이다.

[유형2 알고도 속는 허위·과장 광고]
의사·연예인 동원 과대포장

알면서도 허위·과장 광고에 잘 넘어가는 것이 건강 관련 상품이다. 특히 건강식품은 ‘몸에 좋다’는 말에 속는 셈치고 한번씩 구입했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구석구석 쌓인 체지방을 태워줍니다”, “연골조직 재생 유도”,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무독성으로 인증”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로 다이어트·건강·질병 관련 효과를 과대포장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CJ홈쇼핑은 지난 10월 중순 두뇌개발 상품 ‘엠씨스퀘어프로’를 판매하며 “사용 한달 뒤 중간고사 성적이 몇십점 올라갔어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가 방송위원회에 적발됐다. 현대홈쇼핑도 액상추출차인 ‘강화 황금쑥 애호’를 판매하면서 ‘해독작용 및 혈액 정화작용, 위장강화 등 효과’,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위장병’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가 징계를 받았다. 건강식품이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표현은 모두 불법이다.

조심해야 할 대목은 전문가들의 등장이다. 건강식품이나 의료기기 방송에는 또 예외 없이 의사나 한의사가 등장한다. 원래 홈쇼핑에는 의사가 출연해 효과를 설명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홈쇼핑 업체들은 그래서 의사로 분장한 모델을 출연시키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것도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가능한 방법은 의사가 출연해 고혈압·심장병 등에 대한 일반적인 증상을 설명하거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홈쇼핑 방송은 이런 의사들의 말을 방송 중간에 적절히 집어넣어 편집한 다음 자기 상품의 효과와 교묘하게 연결시킨다. 이로써 실제로 의사가 출연해 제품을 홍보하는 효과를 낸다. 특정인의 체험담도 소비자를 현혹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 먹고 1달 만에 몸이 좋아졌다”는 식의 표현이다. 특히 인기 연예인이 등장해 체험담을 소개하면 더 설득력이 있다.

온열기 등 건강 관련 제품은 ‘한달 무료 사용 후 결정하세요’라는 문구가 자주 소개된다. 그러나 이 말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11월5일 밤 한 홈쇼핑 방송에서 소개된 148만원짜리 온열기도 마찬가지였다. 한달 무료 사용을 내걸었지만 사실을 확인해본 결과 먼저 구입을 하고 원하지 않으면 한달 안에 환불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30일 안에 반품·환불이 가능하다는 일반 홈쇼핑 상품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얄팍한 눈속임이었다.

[유형3 사은품·경품의 유혹]
없어서 못 판다고

쇼핑호스트가 하는 거짓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없어서 못 판다”란 얘기다. 그러나 홈쇼핑 업체들은 없어서 못 판다는 상품에 보통 사은품을 2~3가지 얹어준다. 사은품 없는 홈쇼핑 상품은 없다시피 할 정도다. 올해 초 한국소비자보호원 조사 결과를 보면 홈쇼핑 업체의 70.5%가 사은품을 제공하고 있다.

사은품 제공의 방법과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이 “선착순 명만 사은품 증정”이다. 이는 충동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대표적인 수법이다. 한 전문 홈쇼핑 채널은 요즘 잘나가는 정관장 홍삼 대보를 29만8천원에 판매하며 홍삼캔디 등 ‘17만원 상당의 사은품 증정’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식의 방송은 지금도 계속된다. 또 ‘방송 중 특별추첨’이란 방법도 있다. 경품을 타려거든 방송이 끝나기 전에 주문하라는 얘기다. 몇몇 방송은 남은 방송시간을 초단위로 표시하게 함으로써 방송이 끝나기 전에 사도록 유도한다. “오늘이 지나면 가격이 인상된다”는 말도 충동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사진/ 방송과 다른 제품, 빈번한 고장, 반품과 환불 거부등 홈쇼핑을 둘러싼 소비자 피해가 계속 늘고 있다. 한 홈쇼핑 업체의 물류센터. (류우종 기자)

가격으로 현혹하는 방법도 있다. 제품에 대한 가격비교는 당국으로부터 까다로운 제한을 받는 반면 사은품에 대한 가격표시는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매 제품보다 사은품 가격이 더 높은 경우까지 등장한다. 지난 9월 한 전문 홈쇼핑 채널은 국내 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9만1천원에 판매하면서 ‘10만원 상당’의 사은품을 제공한다고 방송했다. 그러나 이 제품의 원래 가격은 6만원이었다. 사은품을 핑계로 가격을 3만1천원이나 더 받아낸 것이다. 같은 방송의 또 다른 화장품 방송은 5만1천원짜리 제품을 판매하면서 10만원 상당의 사은품을 증정한다고 방송했다. 당연히 사은품 가격을 뻥튀기한 것이다.

중독자 증가… 가계지출 만만찮아

이 밖에도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홈쇼핑 업체들의 수법은 많다. 그러나 판매전략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소비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일이다. 제품 품질에 대한 신중한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객관적인 가격 비교를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시차를 두지 않고 현장에서 주문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일반인들 가운데 홈쇼핑의 비중이 아직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보호원 조사는 홈쇼핑으로 인한 가계 지출이 만만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고객이 홈쇼핑에서 한번 사들이는 물건 가격이 평균 17만4천원이라는 것이다. 적게는 6천원에서 많게는 690만원에 이른다. 소비자보호원의 박현서 표시광고팀장은 “실정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홈쇼핑 업체의 판촉전략은 법과 제도만으로 막을 수 없다. 소비자들의 냉정한 판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