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11월14일 제434호 

“쌍용 살리기는 거대한 사기극”

국민의 세금이 1조원 들어간 구조조정에도 계열사 매각 약속 안 지킨 채 적자행진


사진/ 퇴출위기에 놓인 쌍용양회의 '회생' 판정 조건인 쌍용정보통신의 매각은 이뤄지지 않았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겨레)


평생 1억원을 만져보기도 어려운 사람으로서는 1조원이란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을 것이다. 1조원은 너무나 큰돈이기 때문이다. 200만원짜리 월급쟁이가 매달 100만원씩 저축한다고 생각해보자. 1년에 1200만원, 10년에 1억2천만원을 모으니까, 1조원이라면 자그마치 8만3333년 동안 모아야 하는 돈이다.

쌍용양회는 어떻게 퇴출을 면했나

쌍용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는 국민의 세금이 무려 1조원 이상 들어갔다. 올해 상반기 쌍용양회 사업보고서를 보면, 금융기관들은 2001년 쌍용양회에 1조7천억원의 부채를 출자로 전환해주고 금리를 깎아줬다. 이로 인해 쌍용양회는 2001년에 7241억원, 올해 상반기에 2132억원의 채무면제이익을 회계장부에 올렸다. 다른 쌍용 계열사까지 합치면 쌍용그룹을 살리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본 손실은 1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금융기관들의 손실은 대부분 공적자금으로 메워졌다.

외환위기 이후 금방이라도 외줄에서 떨어질 듯한 상황이 계속된 쌍용그룹이 지금까지 생존해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정부와 금융기관들의 쌍용양회 지원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진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의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쌍용그룹이 부실의 늪에 빠진 것은 지난 86년 동아자동차(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데서 비롯됐다. 김석원 회장은 일부 임원들의 만류에도 쌍용차 투자를 계속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는 천문학적인 부실로 이어졌다. 쌍용그룹은 결국 98년 1월 쌍용차에서 손을 뗐다. 이때 쌍용양회는 쌍용차 보유주식을 처분하면서 858억원의 손실을 보았고, 쌍용양회를 포함한 계열사들은 자그마치 1조7665억원의 쌍용차 부채를 떠안았다.

쌍용양회는 자산 재평가를 통해 장부상 자기자본을 5302억원이나 늘렸음에도,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다. 쌍용그룹은 쌍용정유(현 에쓰오일), 쌍용증권을 매각하고 쌍용건설과 남광토건에 대해 워크아웃을 신청했으며, 그 뒤에도 쌍용화재와 한일생명을 처분했다. 그러나 쌍용양회의 생존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였다. 유동성 위기는 계속됐다. 쌍용양회는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쌍용양회의 생존을 지원한 것은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이었다. 조흥은행으로서는 쌍용양회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은행 자체의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사진/ 지난 2000년 10월, 기자들에게 쌍용그룹의 자구계획을 설명하는 당시 위성복 조흥은행장. 그러나 쌍용은 대규모 지원만 받고 자구노력은 시늉만 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00년 11월3일 부실기업 일괄 퇴출 당시 쌍용양회는 현대건설과 함께 뜨거운 감자였다. 쌍용양회의 영업이익으로는 회생판정을 내리더라도 앞으로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던 까닭이다. 쌍용양회는 결국 현대건설과 함께 ‘조건부 회생’ 판정을 받았다. 조건은 외자를 유치하고, 쌍용정보통신을 서둘러 매각하며, 더 이상의 신규자금 지원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쌍용양회의 퇴출여부 판정 과정에서 정부쪽 압력에 시달렸다고 뒷날 술회했다.

쌍용양회는 기업퇴출 판정을 앞두고 그해 9월 일본 태평양시멘트로부터 3억달러의 외자유치계약을 맺었고, 그해 10월30일 외자유치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일부 편법이 동원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태평양시멘트가 2억달러 이상 투자하기는 어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2억달러는 태평양시멘트가 직접 투자했지만, 1억5천만달러는 태평양시멘트가 별도의 TCC홀딩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회사채를 발행하고, 산업은행이 이 회사채의 지급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끌어다 쌍용양회의 우선주에 투자됐다. 산업은행은 회사채 보증 당시 태평양시멘트가 보유한 2억달러어치의 보통주를 담보로 잡았으나, 11월9일 현재 쌍용양회 주가는 1430원에 지나지 않아, 담보가치는 3분의 1로 줄어든 상태다. 회사채는 2003년 10월 만기가 돌아와 자칫 산업은행에 또 한번 거액의 손실을 안길 위험도 크다.

1조원 전망한 주가가 648억원으로

‘회생’ 판정의 조건인 쌍용정보통신의 매각도 이뤄지지 않았다. 쌍용정보통신 주가는 2000년 코스닥 시장이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음에도 연초 1만원대에서 9월에는 한때 10만원 넘게 뛰었다. 영업실적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상급등이었다. 어쨌든 쌍용양회와 조흥은행쪽은 회사가 생존할 수 있다는 근거로 채권단이 3천억~4천억원을 출자전환해주면, 쌍용정보통신 매각을 통해 7천억~9천억원가량은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성복 당시 조흥은행장은 “쌍용정보통신은 주당 20만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양회가 보유한 쌍용정보통신 주식은 364만주(67.4%)였다. 그러나 연내 매각이 가능할 것이라던 쌍용정보통신의 매각은 계속 늦어졌다.

쌍용양회는 2001년 1월14일 쌍용정보통신 주식 384만주를 3168억원(뒷날 영업이익이 크게 늘 경우 최대 4624억원)에 매각하기로 기본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애초 기대한 가격의 절반에 지나지 않지만 매각은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본계약은 계속 지연됐다. 쌍용양회의 유동성 위기가 계속되자, 산업은행은 정부가 마련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통해 그해 53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인수해줬다.

그러는 사이 채권단은 3월31일 쌍용양회에 1조4천억원 규모의 출자전환과 금리감면을 서면결의했다. 정보통신이 늦어도 4월 초에는 팔린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결의였다. 하지만 서면결의가 이뤄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4월15일에 매각협상은 결렬됐다. 애초 협상 자체가 서면결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후 몇 차례 매각협상설이 나도는 가운데 위성복 조흥은행장은 쌍용정보통신 매각 무산에 대비해 쌍용양회에 대한 채무 재조정안을 짜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10월5일 1조7천억원에 이르는 출자전환을 이끌어냈다. 금융권은 신규자금도 3500억원을 지원했다. 쌍용양회에 조건부 회생판정을 내린 당시 조건은 폐기됐고, “자구노력을 이행하지 않으면, 출자전환을 한 뒤 경영권을 박탈한다”는 약속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후 채권단은 쌍용양회에 올해 말까지 쌍용정보통신과 용평리조트를 매각한다는 약속을 다시 받았지만 이 또한 유야무야됐다. 코오롱정보통신은 올 들어 쌍용정보통신에 대해 실사를 벌였으나 최근 인수를 포기했다. 주가는 하락을 거듭했다. 지난 11월9일 현재 쌍용정보통신 주가는 2400원, 올 들어 액면을 5분의 1로 분할한 것을 감안하면 1만2천원이다. 한때 1조원에 이를 것이라던 시가총액은 648억원으로 줄었다.

연간 1천억원대 손실 전망

금융기관들이 무려 1조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쌍용양회에 출자전환해준 1조7천억원은 앞으로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까 쌍용양회는 올해 상반기에 68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그 많은 지원을 받았음에도 이자비용이 영업이익의 2배에 이르는 1359억원이나 돼 512억원의 경상손실을 봤다. 이런 상태로라면 연간 1천억원대의 손실을 볼 전망이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초 국회의원(한나라당·대구 달성)직을 사퇴하고 경영 일선에 복귀한 김석원 회장은 건재하다. 김 회장의 쌍용양회 지분은 2000년 6월 말 11.48%에서 태평양시멘트(현재 22.29%)의 투자 이후 5%로 줄었다. 이에 따라 그는 지금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등기이사며, 사실상 총수로서 그룹 경영을 좌우하고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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