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2.10.31(목) 제432호

[특집] 동교동계 최후의 선택은?

노 후보를 도울 것인가 버릴 것인가 갈림길…한화갑 대표 ‘우호’ 정균환 총무 ‘대립’

동교동계 최후의 선택은 무엇일까.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도울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갈림길에서 동교동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 자칫 길을 잘못 들었다가는 형체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1997년 대선을 거치며 와해된 상도동계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정 총무의 숨겨진 힘 무시 못해

더욱이 노 후보는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고 힘깨나 쓴 사람들이 노무현 흔들기 작전을 쓰고 있다”며 압박해 들어오고 있어, 동교동계 의원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 물론 노 후보가 동교동계 전체를 싸잡아 공격하지는 않고 있다. 동교동계가 ‘모셔온’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계 수장격인 한화갑 대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며 감싸안고 있다.

하지만 노 후보 진영에서는 탈DJ와 동교동계와의 차별화를 위한 일전 불사의 의지가 곳곳에서 읽힌다. 단지 “힘이 모자라는 만큼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다”라는 전술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0월 중순께 정치개혁추진위원회 소속의 조순형·신기남·천정배·김택기 의원 등이 노 후보와 저녁을 함께 먹으며 ‘차별화 전략 추진’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노 후보는 “선대위 안에 여러 생각들이 있는데, 여러분의 의견만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들은 내치는 꼴이다. 위원회가 먼저 치고 나가면 그 뒤를 밟아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차별화 전략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역량과 상황을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노 후보가 범동교동계로 분류되는 정균환 원내총무에 대해 유독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는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또 김 대통령 비서 출신인 협의의 동교동계와 정 총무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분리대응하겠다는 전략일 수도 있다. 실제로 한 대표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을 독대한 사람들은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대표나 후보를 인정하지 않는다. 승복의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이다”라고 정 총무를 비판한 적이 있어, 둘 사이의 틈새가 만만찮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노 후보의 이런 차별화 전략은 정치개혁이라는 명분 외에도 영남표 획득이라는 실리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노 후보가 이기는 길은 지역대결 구도를 깨뜨려 영남에서 30% 이상을 득표하는 방법뿐이고, 영남표를 얻기 위해서는 ‘노무현=DJ 양자’라는 등식을 깨야 한다는 절박감이 작용한 것이다. 호남표와 민주당 전통 지지층은 결국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어줄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기에 우선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 여론조사 관계자는“최근 김민석 전 의원 탈당 이후 촉발된 노 후보 지지율 상승은 호남이 아니라, 수도권 개혁 성향표와 영남에 근거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또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과거 김 대통령 같은 카리스마가 없어, 호남인들에 대한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계산도 깔려 있음직하다

정 총무는 직격탄을 맞았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 유용태 사무총장이 “용납할 수 없는 분열책동을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입장 발표 계획을 정 총무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덧붙인 것 외에는 거의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싸울 시점을 고르는 것일 뿐 싸움을 회피하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정 총무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경우 그 세력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와 가까운 문희상 의원도 “민주당에는 국민경선으로 뽑힌 노무현 후보, 60%가 넘는 지지를 받은 한화갑 대표, 의원들의 직선으로 선출된 정균환 총무 등 세 사람의 주인이 있다”며 정 총무의 지분을 인정해주고 있다.

‘파격적인 결단’도 가능

하지만 정 총무는 이런 공식적 대표성말고도 ‘숨겨진 힘’이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물론 이 힘은 처음에 김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에서부터 시작됐다. ‘돌쇠’라는 별명답게 우직하고 성실하게 일한 덕에 김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DJ정권의 초대 사무총장에서부터 시작해 총재특보단장, 신당 영입 창구, 16대 총선 공천팀장, 중앙당 후원회장, 두번의 원내총무까지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쳐왔다. 이 때문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김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을 것으로 다들 짐작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탈당 이후에는 정 총무가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정 총무는 과거 공천 과정이나 장관 추천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의원들과 끈끈한 유대를 맺고 있으며, 소장파 원외위원장 6~7명은 그의 직계로 분류되고 있다.

여기에 넉넉한 자금사정도 그의 힘을 키워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 총무와 가까운 송영진 의원은 기자들 앞에서 공공연히 “요즘 의원들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래도 정 총무는 필요할 때 다만 몇푼이라도 의원들에게 집어준다”고 말해 정 총무의 자금력을 짐작하게 했다. 정 총무 자신도 최근 당내 회의에서 “돈과 관련한 얘기가 나오는데, 노 후보도 돈을 내라. 우리 최고위원들도 돈을 내겠다”고 노 후보쪽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무는 자신의 향후 행보에 관해 철저히 입을 닫고 있으나, 측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파격적인 결단’도 가능할 것으로 추측된다.

먼저 정 총무 주변 사람들은 정 총무와 동교동계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한 측근은 “정 총무는 김 대통령의 비서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교동과 다르다. 비서실장을 하라고 했지만 끝내 고사한 적이 있다. 김 대통령은 비서 출신들에게는 지시를 내렸지만, 정 총무에게는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정 총무는 독립세력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정 총무는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를 3김정치 종식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탈DJ·탈동교동계의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는 곧 정 총무가 민주당과의 인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또 노 후보의 비중에 대한 평가에서도 동교동계와 상당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동교동계의 한 중진의원은 “우리도 후보단일화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정몽준 의원 못지않게 노무현 후보의 결단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변수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 총무쪽에서는 정몽준 의원에게 힘을 몰아줘 노 후보를 고사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준 의원으로의 단일화를 주장하는 정 총무의 측근은 “노 후보가 일정한 지지세를 확보했어도, 호남표가 정 의원쪽으로 몰리면 정 의원은 40% 이상의 지지도를 얻으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 호남표가 현재 정 의원 대 노 후보로 양분된데다, 지지 의사를 드러내지 않는 층이 30%는 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노 후보는 여도 싫고 야도 싫은 부동층표를 가져가는 제 3후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논리로 탈당한 김민석 전 의원과 정 총무가 사용하는 논리와 용어가 정확히 일치하는 점도 주목된다. 두 사람 모두 ‘냉전 회귀세력’과 ‘민주평화 개혁세력’을 거론하고 있다.

‘일단’이라는 전제가 붙는 지지

정 총무와 노 후보와의 관계가 복원되기에는 이미 너무 벌어진 것도 정 총무의 결단을 재촉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대립 이전에도 노 후보와 정 총무쪽은 가볍지만은 않은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올 1월 정 총무, 김한길 전 의원 등이 자민련과의 합당을 추진할 당시 노 후보쪽에서는 ‘영남고립 구도’라며 반발했고, 얼마 전에는 노사모 회원들이 정 총무 지구당을 항의 방문하자, 정 총무가 노 후보를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이에 반해, 한 대표와 노 후보 사이에서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지는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우호적인 관계로까지 비치기도 한다. 한 대표는 10월23일 북한 핵 문제 논의를 위한 청와대 간담회 직전 노 후보를 찾아가 40여분간 만나기도 했다.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도 한 대표가 노 후보 방을 찾은 것은 4월 전당대회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대표는 이날 “지금은 후보와 당이 합심해 대선 승리에 총력을 기울일 때”라고 지지의 뜻을 다시 한번 밝혔다. 또 전날에는 한 대표가 이끄는 한미정책포럼 소속 의원 16명이 모여 ‘조건 없는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대표의 노 후보 지지에는 ‘일단’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일단 노 후보를 돕겠지만, 노 후보가 대세 반전을 이루지 못하거나, 정몽준 의원과의 현저한 지지율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면 단일화를 위한 압박을 가하겠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0월16일 동교동계 의원 9명이 모인 자리다. 이 모임에는 동교동 구파를 대표해 김옥두·최재승·윤철상·전갑길 의원이, 신파를 대표해 문희상·설훈·배기선·배기운 의원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한 공식성을 띤 자리라는 얘기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의원은 “노 후보 선대위나 탈당을 거론하는 후단협 양 극단을 눌러 앉힐 수 있는 중간지대를 폭넓게 형성해, 그 힘으로 막판 후보단일화를 이뤄내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모임의 분위기를 전달했다. 그는 이어 “후보단일화를 위해서는 한 50명 정도 모으면 가능할 것 같고, 노 후보를 도울 수 있는 시한은 11월10일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 자리에서는 한 대표가 당의 단합을 강조하자, 구파 의원들이 “우리가 앞장서겠다”고 나서는 등 신·구파가 하나가 됐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도 했다.

한 대표쪽에서는 후보단일화를 위해 정몽준 의원쪽과도 간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정 의원쪽에 ‘노 후보와 단일화되지 않으면 정 의원 자력으로는 대선에서 절대 이길 수 없으니, 노 후보의 대선 공약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등 노 후보에게 사퇴의 명분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혼전 상황, 결정 내리기 어려워

한 대표가 이렇듯 한편으로는 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결별을 준비하는 것은, 대선 승리에 대한 불확실성과 함께 노 후보 중심으로 당이 재편될 경우 자신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우려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의 한 측근은 “노 후보나 정 의원 모두 호남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반호남·반DJ 정서 때문에 호남 정치인을 껴안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부터 당내 갈등이 빚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노 후보가 단일화에 응해주지 않는 한, 스스로 먼저 몸을 옮기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 대표가 자신이 ‘당의 뿌리’임을 강조하며 “설사 정권 재창출을 못하더라도, 야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당을 지키겠다”고 여러 번 말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정 의원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대선 국면이 혼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한 대표가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동교동계는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정치상황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05000/2002/10/021005000200210310432014.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