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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2.10.02(수) 제42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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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신의주 특구 ‘자본개벽’ 첨단 정보통신과 물류 중심으로 거듭난 2010년의 특별행정구에 미리 가본다
경의선에 사람과 화물이 실리고 북한이 미국과 일본과 적대관계를 허물고 신의주특구가 본괘도에 오른 2010년 10월. 한 북한 투자담당관이 미국 투자방문단을 만나 상담하는 이야기를 가상으로 엮어봤다. 신의주 투자여건 등은 홍콩·선전과 ‘중국 속 싱가포르’로 꼽히는 쑤저우 공업원구의 선례, 양빈 초대 특구장관의 발언 등을 참고로 했다. 편집자 주
신의주 특별행정구 관리위원회 소속 투자코디네이터 리종남(43)씨는 중국 단둥의 랑터우 공항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BMW 승용차를 몰았다. 이날 오후 4시에 도착하는 미국 투자방문단 마중을 나가는 길이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압록강 제2다리의 중국쪽 경비병은 간단한 신분 확인만 하고 리씨를 바로 통과시켰다. 다리에서 공항은 차량으로 20분이면 도착한다. “저 철교는 왜 끊어져 있나요?” 압록강에 반사된 가을 햇살이 눈부신 듯 양미간을 약간 찡그린 미국 투자방문단 가운데 한명이 영어로 물어왔다.
미국에서 온 투자방문단을 맞는 풍경
투자방문단과 안내하며 같이 버스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로 들어오던 리종남씨는 빙그레 웃으며 능숙한 영어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저 다리는 1911년 조선반도를 지배한 일본이 경의선을 개통하고 중국과 연결하려고 만든 압록강 철교입니다. 조선전쟁(한국전쟁) 때 공화국(북한)을 돕던 중국이 저 다리를 이용해 대부분의 군수물자를 운반하자 미군이 집중폭격으로 완전히 동강내버렸습니다. 전혀 손쓸 수 없을 만큼.” 미국 투자가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리종남씨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 다리 교각에 적힌 네온사인 글귀를 잘 보세요.‘과거를 넘어 미래로’, ‘신의주를 세계 일류의 도시로’라고 적혀 있습니다.공화국은 신의주특구를 통해 불행한 과거를 넘어 평화와 연대의 새 시대를 열려고 합니다.저 철교는 그 의지의 상징으로 일부러 남겨뒀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리종남씨는 말을 이었다. “신의주특구는 처음부터 경찰 총수는 미국 사람이 맡았고, 검찰 총수는 유럽연합쪽에서 맡았습니다. 사유재산권과 상속권이 완벽하게 보장됩니다. 공화국은 국방·외교권만 행사하고 특구 일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아요. 쉽게 생각해 신의구를 제2의 홍콩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미국인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리종남씨는 차 안에서 간단하게 신의주특구에 입주한 기업체 현황을 설명했다. “마쓰시다, 소니, 히다치, 필립스, 어드밴스트마이크로다바이시스(AMD), 삼성전자 등 현재 신의주특구에는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20%가량인 100여개 기업이 진출해 있습니다.”
여기가 정녕 북한 땅이란 말인가
북한한테 ‘악의 축’이란 모자를 씌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2004년 겨울 재선에 실패하고 물러난 지도 벌써 6년이 흘렀다. 벌써 몇해 전에 북한은 ‘테러지원국’이란 족쇄를 벗어던졌지만 아직도 미국인 가운데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는 시각이 남아 있어 신의주 투자를 멈칫거리고 있었다. 미국 투자방문단 일행을 태운 전용버스는 숙소인 신의주 만상호텔로 향했다.버스는 옛 신의주 북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왕복 10차선의 양빈대로를 시원스럽게 달렸다. 양빈대로는 초대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인 양빈의 이름을 땄다. 도로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빌딩숲과 잘 가꾼 가로수와 잔디밭이 펼쳐쳤다. 리종남씨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이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마치 제가 사는 동네인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주의 도시인 어바인에 온 것 같군요.” 빙그레 웃은 리종남씨는 7년 전 특구 개발 당시 일이 떠올라 상념에 잠겼다. 2003년 봄 신의주는 속으로 들끓고 있었다. 1년 안에 의주와 정주 등으로 이주하라는 통보를 받은 30만명의 인민들은 정든 땅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2004년까지 평북도청은 정주로, 신의주시 시청사는 남신의주로, 신발공장 등은 영천으로 옮겼고, 공무원과 관련 업체 종업원들은 모두 직장과 함께 신의주를 떠났다. 리종남씨는 2004년 봄 젊고 유능한 기술자·기업인 등 30만명과 함께 신의주에 들어왔다. 그는 경제개방에 대비해 홍콩에서 세계은행(IBRD)의 국제금융기법과 무역업무 연수를 한 신의주특구 일꾼으로 뽑혀 신의주의 새 주민이 되었다. 리종남씨는 그해 봄 특구 건설이 한창인 신의주 거리에서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났다. 신의주 밖으로 나가게 된 그 친구는 건설현장의 일꾼들이 마시던 코카콜라병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낮게 중얼거렸다. “조선작가동맹의 김명익 시인은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상징되는 ‘코카콜라’와 식량난으로 고통받던 96년부터 2000년까지의 ‘고난의 행군’을 엮어 이런 시를 지었지. ‘(식량난으로) 우리는 이렇게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서양의 코카콜라는 얻어마시지 않았다/ 시뻘건 흙탕물을 마실지언정 제 나라 물을 마시었다’ 난 이게 혁명하는 사람의 기개라고 생각해. 그런데 이제 신의주에서는 애들도 마실 물 대신 코카콜라를 찾기 시작했다니까.”
양빈, 10년 계획으로 인프라 확충
양빈 초대 장관은 2004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제조업과 정유시설, 중공업을 유치하기 위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제외한 모든 시설을 철거하고 약 132㎢의 새로운 신의주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특구는 항만과 도시지역 등 두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10억달러는 항만시설 개선,2억달러는 랑터우 공항 개선사업 등 15억달러가 인프라 개선에 들어갔다. 북-일 수교 교섭과정에서 경제협력방식으로 풀기로 한 일본의 식민지배 과거 청산에 따라 들어오기 시작한 약 100억달러가 큰 구실을 했다. 일본 자금이 그야말로 터진 봇물처럼 들어왔다. 처음엔 ‘사기꾼’ 시비에 오르기도 한 초대 장관인 양빈은 화교 자본을 끌어들여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나섰다.부족한 전력은 일단 중국의 단둥에서 구입했으며, 2005년 신의주 자체 발전소가 완공되어 전력문제는 해결됐다. 양빈 초대 장관은 신의주 개발 때 중국 쑤저우를 개발한 싱가포르 화교자본의 ‘9통1평’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9통은 전기·용수·열·가스·상수·하수·배수·통신·도로이고, 1평은 평평하게 다진 땅이다. 입주 전 산업기반시설을 미리 닦아 공장이 들어선 뒤 다시 땅을 파는 헛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리종남씨가 이런 상념에 잠긴 사이 버스는 신의주 중심부에 있는 51층짜리 만상호텔에 도착했다.이 호텔은 90년대 북한의 나진선봉지대에 호텔을 지은 적이 있는 홍콩 엠페러 그룹이 지었다. 늦은 저녁을 먹은 뒤 리종남씨는 만상호텔 임상옥룸에서 열린 미국 투자방문단 투자설명회에 참석했다.한국 기업인 투자설명회라면 만상이란 호텔 이름과 임상옥이란 방 이름이 소설 <상도>에서 나왔다고 설명했겠지만 미국인들이라 그냥 넘어갔다.
‘뒷돈’ 없는 고객 중심 마인드 확고
“신의주에서는 외국기업이 현지법인을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투자상담회가 시작되자 대뜸 미국인들의 구체적인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달 안에 가능합니다. 특구관리위원회에는 법인을 세울 때 일체의 관여 없이 자체적으로 심사하고 처리하죠. 투자업체들이 일일이 해당 행정기관들을 쫓아다닐 필요 없이 특구에서 한꺼번에 해결합니다. 관리위에는 저 같은 투자코디네이터가 있어 투자와 관련한 모든 일을 처리하며 ‘뒷돈’이 전혀 없습니다. 관리위 모든 직원들은 2년마다 3개월 동안 싱가포르 등 외국에 가서 공개행정·신속행정 업무 연수를 받아요. 투자코디네이터인 저는 공무원이지만 투자 유치실적에 따라 급여가 달라집니다. 저에겐 외국투자기업이 고객인 셈이죠.” 리종남씨는 자신 있고 구체적으로 답변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어떻습니까?” “특구 개발 초기에는 단위별로 일할 사람을 단체로 공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노동자와 개별계약합니다. 1년이나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 계약해지가 가능하고, 능력과 실적에 따라 차등 임금 지급도 가능합니다. 임금 수준은 업종이나 숙련도별로 차이가 있지만, 같은 기술수준 노동자를 중국과 견주면 70∼80% 수준입니다. 이들은 북한에서 엄선된 인력이라 지식이나 기술 수준은 아주 높습니다.” 계속 질문과 답은 이어졌다. “특구 현황과 현재 입주한 기업들의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신의주특구는 7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31%, 공업생산량의 연평균 증가율은 40%였습니다. 이는 중국 선전이 개방 이후 이룬 발전속도와 거의 비슷합니다. 신의주는 중국의 서부 대개발 바람을 타고 동북아와 중국 서부와 동북부 시장을 겨냥한 서방자본의 발판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산업구성도 초기 싼값의 임금을 이용한 경공업 위주였다면 이제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개발 등 첨단과학기술 위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경의선을 통해 올라온 한국과 일본의 수출 물량이 신의주에서 중국으로 갑니다.이 물류 기능에서 파생되는 경제규모만 해도 엄청납니다.”
중국 선전·상하이가 부럽지 않다
“북한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나요?” 느닷없는 질문에 리정남씨는 속으로 ‘국제정세의 흐름을 저렇게 모를까’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친절히 설명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 초기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정상교역관계(NTR)대우를 받는 국가들에게 적용되는 관세보다 최소 2배에서 10배 이상까지 높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했지요. 이 관세는 사실상 수출금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3년 가을 대량파괴무기(WMD) 문제 등의 현안 일괄타결 방식에 대한 북·미 합의가 이뤄지고, 2005년부터 북한은 다른 나라와 같은 관세를 적용받아 미국 수출에 전혀 문제가 없어졌습니다.” 밤 11시 투자상담설명회가 끝났다. 내일은 미국인들과 현장 기업 방문에 나설 계획이다. 리종남씨는 머리를 식히러 호텔 밖으로 나섰다. 저 멀리서 압록강이 말 없이 흐르고 있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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