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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단일화, 뜨거운 충돌! 97년 DJP의 타당성을 함께 역설한 이론가 황태연과 강준만의 지상 논쟁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의원의 후보단일화 문제를 놓고 당대의 이론가와 논객이 뜨겁게 맞붙었다. <한겨레21>은 명분 없는 단일화보다는 노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와 평화·개혁세력이 힘을 합쳐 후보단일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외치는 황태연 교수(동국대 정치학)의 기고를 함께 싣는다. 97년 15대 대선 때 두 사람은 같은 편에서 DJP연대의 타당성을 역설했다. 황 교수는 DJP 후보단일화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대선을 앞두고 펴낸 <지역패권의 나라>에서 그는 ‘내부식민지론’의 시각으로 JP와의 연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한국 사회를 ‘경상도 재벌자본주의’로, 다른 5개 지역(제주·전라·충청·경기·강원)을 ‘내부식민지’로 각각 규정한 뒤, ‘패권적 지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적 지역연합’은 진보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논리는 DJ가 대선 캠페인의 핵심 구호로 내세운 ‘지역등권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비슷한 무렵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유시민씨가 <’97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통해 DJ가 아닌 제3의 후보를 내세워야만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DJP연합은 자민련 지지자의 과반이 김대중 후보를 찍을 때만 의미가 있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역효과를 낳을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강 교수는 <인물과사상 2>를 통해 유씨의 논지를 비판하며 황 교수를 ‘지원사격’했다. 강 교수는 “JP가 집권의 한 축을 차지하고 3당통합 때와 달리 ‘팽’당하지 않을 공약을 그 누가 봐도 믿을 수 있게끔 제시하는데 왜 충청표가 이탈하겠느냐. 유씨의 제3후보론은 정말 바보 같은 소리”라고 몰아붙였다. 강 교수는 95년 <김대중 죽이기>에서 DJ와 지역문제에 대한 도발적 논쟁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강·황 두 교수는 이론전선에서 탄탄한 연대를 맺은 셈이었다. 5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의 행보는 그때와 판이하게 엇갈린다. 강 교수는 노무현 후보 지지론을 펴고 있고, 황 교수는 노 후보와 정 의원의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며 사실상 정 의원으로 기운 모양새다. 두 사람의 논쟁을 통해 5년 동안 다른 길을 걸어온 ‘생각의 차이’를 확인해본다.
‘뺄셈정치’를 할 것인가
황태연 교수의 후보단일화 지지론 작은 절차적 정당성과 색깔에 집착하는 건 평화·개혁세력의 소멸을 부른다
노무현과 정몽준은 대국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이 선택 자체가 풀기 어려운 난제는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1987년 민주화 세력은 적전분열로 정권교체의 역사적 찬스를 망가뜨려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이 적전분열은 다 이긴 대선에서 ‘자책골’을 넣는 우매의 극치였다. 반대로 1997년 민주화 세력은 10년 전 실책을 곱씹으며 자민련과의 큰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협상을 통해 마침내 호남·충청지역 유권자를 연합하는 후보단일화에 성공하고 수도권 전역에서 완승하여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하였다. 따라서 지금은 평화·개혁세력들에게 난해한 선택이 아니라, 1987년의 패배를 반복할 것이냐 아니면 1997년 같은 승리를 다시 맛볼 것이냐 하는 단순한 선택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화 세력들이 작은 이익에 사로잡혀 소탐대실(小貪大失)한 1987년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1997년의 성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또 ‘평화·개혁세력의 헤게모니’ 요구만 충족되면 가급적 많은 세력을 끌어모아 ‘국민통합세력’으로 올라서야 한다. 평화·개혁세력을 싫어하는 세력은 절로 반대편에 설 것이고, 평화·개혁세력을 좋아하는 중립·보수세력과 기타 기회주의 세력들은 평화·개혁세력의 헤게모니를 승인하고 이쪽에 붙을 것이다.
JP 비난하는 건 정치적 자책골
자기 색깔에 집착해 JP를 비난하여 충청도와의 지역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정치적 자책골이다. 가령 영국 노동당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가운데 한 지역을 잃으면 집권과는 인연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정치세력으로서 소멸한다. 서유럽의 여타 개혁정당의 ‘지정학적’ 처지는 영국 노동당과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지정학상 민주당은 충청도를 잃으면 수도권에서 대패하여 이른바 ‘호남당’으로 전락해 아예 권력과는 인연이 없어진다. 따라서 충청도를 잃을 위험을 자초하는 ‘뺄셈정치’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수십년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눈물지은 호남을 다시 고립시켜 냉전·수구세력들에게 무자비하게 보복당하게 만들 무책임한 정치다. 이런 '뺄셈정치'는 대선패배는 말할 것도 없고 다음 총선에서 ‘정치세력’으로서의 평화·개혁세력의 소멸을 가져올 것이다. 이런 정도는 호남인과 충청인들이라면 모두 “몸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주변세력이 냉전·수구 진영으로 투항을 거듭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독야청청이라도 하기 위해 ‘뺄셈정치’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선거국면에서는 반드시 ‘덧셈정치’에 능해야 한다. 이런 능력이 없는 후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지 말고 정치를 그만두는 게 낫다. 평화개혁과 냉전회귀의 민족사적 갈림길에서 평화·개혁세력은 자민련까지 아우르려는 따뜻한 ‘덧셈정치’로 단일대오를 이루어 준엄한 민심에 화답해야 한다. 군왕도 민심을 잃으면 옥좌를 내놓아야 했고 대통령도 지지기반을 잃으면 하야했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절차적 정당성과 자기 색깔에 사로잡혀 후보직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1997년 당시 후보직을 던졌던 JP의 내공만도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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