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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메이커’의 황혼이 지네 JP 장고 속에 불안하고 초조한 자민련 의원들… 10월 말 고비로 개별 움직임 나올 수도
이회창 아니면 정몽준 저울 중
그러나 기세를 완전히 꺾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다. 나보다 앞선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밀어서 만들었던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 이번에도 힘이 약간 부족한 강자에게 힘을 보태 권력의 일부를 나눠갖겠다는 의지가 여전함을 내비친 것이다.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누는 자민련의 한 의원은 “JP가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의원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추가 정 의원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진단했다. JP는 마지막이 틀림없을 ‘정치흥정’에서 가장 비싼 값을 부르기 위해 지금 골똘한 계산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자산인 자민련 의원들의 동태가 수상쩍다. 그가 계산을 끝내기도 전에 물건이 상해버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자민련 의원들은 요즘 초조하고 불안하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를 내지 못한 상황이니 다음 총선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대선 이후에도 자민련이라는 당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하는 의원은 아무도 없다. ” 언론에 한나라당 입당설이 나돈 한 의원은 “대선판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JP는 기다리라고만 할 뿐이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놨다. 자민련 의원국엔 “언제 의원총회가 열리느냐”는 의원 보좌진들의 문의가 잦아졌다. 의원회관에선 자민련 의원들 2~3명씩이 만나거나 전화를 주고받는 광경이 자주 목격됐다. 한나라당이 의원 서넛의 실명을 거론하며 영입설을 흘리고, 언론이 이를 기사화하면서 자민련은 파장을 앞둔 시장처럼 어수선한 분위기로 빠져들었다. JP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이회창 후보 아니면 정몽준 의원이다. JP와 노무현 후보의 결합은 이미 폐기된 지 오래된 그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원들의 기류가 엇갈린다는 점이다. 한쪽에선 민주당 후단협 의원들과의 연대를 통해 정 의원을 밀자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이 후보쪽과 결합하길 원한다. 그렇다고 JP가 소속 의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민련의 현재 의석은 14석이다. 자의적인 당적이탈이 가능한 지역구 의원 9명의 상황인식과 전망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엇갈렸고, 의견이 비슷하더라도 조금씩 온도차가 났다. 자민련을 둘러싼 정치지형의 변화와 JP의 결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절반이 넘는 5명 이상이 JP와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학원 의원은 JP와 끝까지 행동을 함께하리라는 전망이 높다. 지역구인 부여를 JP로부터 물려받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는 요즘 JP와 가장 깊숙한 얘기를 나누면서 외부교섭 창구역할을 한다.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는 민주당 의원들도 주로 그가 만난다. 그는 “민주당 후단협쪽 사람들과 다양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상황이 너무나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원철희 의원은 아직 뇌물사건 재판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확실한 당론이 정해질 때까지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누룽지 몇 조각 남아도 밥솥째 움직이자?
대전이 지역구인 이양희·이재선 의원은 일단 JP의 결정을 지켜보고 가능하면 함께 움직이자는 쪽이다. 이재선 의원은 “당론을 따르겠다”며 자민련을 ‘밥솥단지’에 비유했다. “솥단지에 누룽지 몇 조각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밥솥째 통째로 움직여야 굶지 않지, 밥알 몇 알갱이만 들고 왔다갔다 해선 쪽박 차기 십상이다.” 자민련 의원들이 어느 쪽으로든 집단적으로 움직이면 힘을 발휘하겠지만 이탈자가 생기면 이도저도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이양희 의원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꺼리며 말을 아끼고 있다. 정우택·정진석 의원도 JP가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섣부르게 행동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JP가 10월 말까지도 선택을 주저하며 머뭇거릴 경우 개별적인 행동에 나서거나 집단적인 의사표출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그동안 정책적·이념적으로 친한나라당적 성향을 보여왔으며, 한나라당의 강창희 최고위원과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정우택 의원은 이 후보와 정몽준 의원 양쪽 모두와 인연이 깊다. 이 후보의 경기고 후배지만, 친형의 친구인 정몽준 의원의 권유를 받고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국민당에서 함께 활동했다.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 추이를 좀더 관망하되 아니다 싶으면 한나라당으로 움직이리라는 관측이 높다. 정진석 의원은 “한나라당쪽과 의미 있는 접촉을 해본 적이 없고, 절대로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민련이라는 틀거리를 유지하면서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민련의 노선과 정책은 한나라당과 같은 방향이며, JP도 이전과 달리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을 비난하지는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되 가능하면 한나라당쪽이 좋다는 속내가 읽힌다. 이완구·오장섭·송광호 의원은 지역구 사정이 한나라당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국회의원이 당을 바꿀 때 가장 깊이 고민하는 문제는 지구당을 넘겨받을 수 있느냐, 다음 총선에서 공천장을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 의원은 지난해 DJP 공조 파기의 주축으로 활동한 이후 한나라당 입당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최근의 입당설 보도에 대해 그는 “아직은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많은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신한국당으로 금배지를 단 그는 97년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를 도와 선거운동을 했다가 현 정부 출범 이후인 98년 5월 자민련에 입당했다. 한나라당이 친정인 셈이다. 그는 지역구(충남 홍성·청양)가 조부영 국회부의장과 겹친다. 16대에선 지역구를 움켜쥐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한나라당으로 옮기더라도 문제가 복잡하다.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인 홍문표씨가 원외지구당을 관리하는 제2사무부총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가고픈 의원들
오장섭 의원은 현재 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고, 건교부 장관도 지냈다. JP에게 빚이 많은 셈이다. 그러나 그의 지역구가 이 후보의 고향인 충남 예산이다. 그의 보좌관은 “지역여론은 하루빨리 한나라당으로 옮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의원도 “자기 지역에서 대통령 나온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느냐.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고민을 내비쳤다. 오 의원은 지난 98년 4월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당적을 여당으로 옮기라는 지역구 여론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그는 “열달이 차야 애가 나오는 법이며, 그 전에 낳으면 미숙아가 된다”고 심경을 나타냈다. 때가 되고 여건이 성숙된 뒤에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송 의원은 정몽준 의원과 함께 국민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지만 지역구인 제천지역의 친한나라당 정서가 고민이다. “관망하고 있다. 먼저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 그는 제천지역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이 제천시장으로 당선된 뒤 위원장직이 공석으로 남아있어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 추이를 좀더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다급한 JP는 의원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정치인들이 소신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일이 있는데 불행한 일이다. 정치는 있는데 정치인은 없다.” 그러나 약발이 예전 같지 않다. 40년 정객 JP의 황혼이 어떻게 저물어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이번 대선을 지켜보는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일 것 같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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