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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엉킨 북미, 술술 풀리나 북한 개혁조처에 따라 관계개선 청신호… 핵·미사일 등 핵심현안 포괄 타결 모색
대담한 경제실험에 특사로 화답
북한은 10여년 전부터 미국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때마다 관계개선 조건으로 경제제재부터 풀어달라고 요구해왔다. 핵 협상이든, 미사일 협상이든, 4자회담 자리든 가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경제난을 타개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북한의 속내를 일찌감치 간파한 미국 정부는 ‘경제제재’라는 칼자루를 쉽게 놓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이 핵 동결을 약속한 뒤인 95년에 1단계, 2000년에는 미사일 재발사 금지조건으로 2단계 경제제재 완화조처를 찔끔찔끔 취했다. 이때 민간차원의 교역과 투자 제한은 상당부분 풀리게 됐다. 기업들은 북한산 원자재를 비롯한 대부분의 상품을 미국 시장에 수입할 수 있게 됐고, 미국산 소비재와 금융서비스를 북한에 수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정작 북한 시장에 관심을 쏟는 미국 기업은 얼마 되지 않았다. 북한 시장이 다른 곳보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딴 데 있었다. 미 행정부는 북한을 여전히 테러지원국, 핵과 미사일 기술확산국, 인권침해국이라는 족쇄를 채워 제재를 완전히 풀지 않았던 것이다. 대표적인 게 국제금융기관의 대북차관 제공 반대, 미국 내 북한 자산 동결, 첨단기술 수출의 엄격한 규제 따위였다. 행정부가 깔아놓은 지뢰밭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까지 굳이 북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 기업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북한이 외자를 유치해 질 좋고 싼 제품을 만들어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에 내다팔 수 없었다. 북한산에 매긴 높은 수입관세 때문이었다. 당장 경쟁 상대가 될 중국산에 견줘도 공정한 게임을 치를 수가 없었다. “가령 중국산 의류제품은 관세율이 4.2∼27.8%라면, 북한산은 45∼90%, 전자제품은 중국산이 0∼5%에 머무나 북한산은 35%, 신발은 중국산이 9%, 북한산은 20∼34.5%에 이른다. 중국은 최혜국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김삼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북한실 과장의 설명이다. 미국은 쌍무간 무역협정을 맺지 않았거나,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는 이처럼 고율의 관세를 매긴다. 설령 어렵사리 북한에 진출한 기업이라도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미 행정부의 우려사항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부 관리들은 북한 군부 손에 들어가 군사력 강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만한 소지가 있는 제품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따라서 미국 기업들은 행정부 인사들을 안심시키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실린 피터 헤이스 노틸러스연구소 소장의 경험담은 북한 사업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북한에서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1996년부터 풍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손을 대왔다. “북한에서 사업을 하려는 미국인은 누구나 최소한의 기술이라도 북한 군부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겠다는 보증부터 정부에 해야 한다. 북한 당국은 미 행정부 관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력이 특정 마을에만 머물도록 고안된 송배전망을 새로 깔았다. 또 북한 주민들이 이 풍력을 최종적으로 어디에 쓰는지까지 조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주제넘은 짓이었다.” 북한 당국의 절망감은 갈수록 깊어졌다. 미국과의 어정쩡한 관계개선은 경제 재건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미국 기업의 고난… 베트남식 경제교류
미국 기업이 베트남 시장에 보인 관심은 북한과는 매우 달랐다. 1990년 전후로 미국 기업들은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모이’의 시행으로 느리지만 착실한 경제성장을 거듭하던 베트남에 상당한 투자매력을 느꼈다. 베트남의 산유 잠재력과 경제개혁 조처 및 구조조정도 맘에 들었다. 따라서 이들은 베트남 시장을 경쟁국에게 먼저 빼앗길지 모른다는 조바심에서 미국 정부에 전면적 경제제재 조처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때마침 베트남 당국도 미국과의 비정상적인 관계로 말미암은 경제성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참이었다. 베트남은 미국으로부터 최혜국대우(MFN) 지위 및 경제원조의 획득과 차관도입 등이 절실했을 뿐 아니라 다른 서방 자본주의국들로부터 외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이러저런 요구들을 받아들여야만 가능했다. 베트남 정부는 애초 관계개선 조건으로 미국에 지나칠 만큼 고집스럽게 전쟁 배상과 전후 복구원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과의 수교에 열중할 뿐 베트남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애간장이 타는 쪽은 베트남이었다. 경제난 타개가 시급한 베트남은 결국 내건 조건들을 철회하고 관계정상화를 요구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먼저 전쟁포로 및 실종미군 문제에 성의를 보이면 경제제재를 풀겠다는 뜻을 전했고, 베트남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클린턴 행정부를 만족시켰다. 마침내 1993년 7월, 클린턴은 미국이 더 이상 베트남에 대한 국제금융기구들의 원조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12월에는 미국 기업들이 국제금융기구 지원의 베트남 사회간접자본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끔 허용했다. 이는 하노이 당국에 다방면의 차관 획득의 길을 열어줬을 뿐 아니라, 경제부흥의 결정적인 단초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 뒤 1995년 1월 연락사무소가 설치돼고 6개월 만에 문패가 대사관으로 바뀌었다. 1975년 월남 패망 뒤 잃어버린 미국 자산에 대한 청구권·인권문제 등의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었으나 이미 두 나라 간 경제교류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 현안들이 양국 수교를 가로막지는 못했다. 미·베 사례는 북·미 관계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베트남처럼 경제난 타개를 위해 관계개선이 다급한 쪽은 북한이고, 미국의 부시 정부가 먼저 서두를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 시장이 베트남만큼 매력적이어서 미국의 기업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북한과 관계개선을 하라고 압력을 넣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북·미 간 현안은 가짓수가 더 많고 복잡미묘하다.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재래식 병력의 후방 배치, 테러·인권 문제 등 겹겹이 쌓여 있다. 하지만 낙관적 측면도 보인다.
수교 이전에 경제제재 풀릴 수도
다행히 북한은 미 행정부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미군 유해 송환에 적극 협력해왔다. 최근에는 미 행정부가 관계개선 조건으로 줄곧 요구해온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착수했다. 동북아시아 최대 우방인 일본과 한국도 북한과 굳게 손잡은 상황이라 과거와 달리 따로 놀기가 멋쩍었는지 부시 정부가 대통령 특사 파견까지 결정했다. 어느 때보다 북·미 간 관계개선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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