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책사로 활약한 딕 모리스는 선거전략을 다룬 책 <신군주론>에서 네거티브 전략보다는 포지티브 전략을 쓰라고 충고한다. 그의 충고대로 아칸소의 촌뜨기 빌 클린턴은 1992년 걸프전의 영웅으로 떠오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맞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정책구호를 내걸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미국 얘기다.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떨어진 것은 두 아들의 병역문제에 대한 상대 후보들의 네거티브 공세가 결정적이었다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네거티브 전략도 사실에 근거할 때는 엄연히 정상적인 선거운동의 한 방법이다. 병역이나 납세 등 공적인 문제에 대해 사실을 적시해 공격하는 것까지 나무랄 수 없다는 얘기다. 선관위에서 후보의 전과와 병역 등을 공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선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각 후보 진영의 책사들은 선거전략 수립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다. 지지 후보의 약점을 찾아내 방패를 만들고, 상대 후보의 약점이 뭔지를 들춰내 공격의 창을 벼리기 위해서다. 각종 첨단 여론조사 기법까지 총동원한다. 한 후보 진영은 이미 소규모 집단 인터뷰(FGI)를 10차례 이상 실시해 자신과 상대의 강·약점을 파악했다.

<한겨레21>은 여론조사를 통해 거론되는 주요 대선 후보들의 약점이 뭔지를 알아봤다. 응답자들이 편견 없이 대답할 수 있도록 아무런 보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후보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무엇이냐”고 주관식으로 물었다. 복수 응답도 허용했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자유응답식 질문’(open ended question)이다.

아들을 어찌하오리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아킬레스건은 뭘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아들들의 병역비리”였다. 37.9%(379명)가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대답은 부친의 친일 의혹(4.8%)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간혹 이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지만 최근 본격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아닌데도 응답률이 높은 것이 조금 뜻밖이다. 공교롭게도 이 후보의 약점 1, 2위가 각각 아들과 아버지의 문제다. 한나라당이 수많은 반론과 방어논리를 내세웠지만 아들들의 병역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한마디로 ‘제가’(齊家)도 못하면서 어찌 ‘치국’(治國)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15대 때 뒷덜미를 낚아챈 아들의 병역문제에 이어 이번엔 아버지 문제까지 이 후보를 괴롭힐 조짐이다.

유권자들이 이 후보 아들들의 병역면제 과정을 석연찮게 생각하는 것은 병적기록표 의혹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 부정면제라는 심증을 굳혀간다는 얘기다. 반면 김도술씨의 오락가락 진술 등 이를 반박하는 쪽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한 셈이다. 이 문제는 이번 대선 최대의 쟁점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가장 앞서가는 후보의 가장 약한 고리에 상대 후보들의 화력이 집중될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한나라당이 이 문제에 사생결단식으로 매달리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후보의 약점으로 지적된 문제들을 한 테두리에 묶어봤더니 부정부패와 비리문제(37.9%) 부정직과 신뢰 부족(5.6%) 보수적(2.8%) 귀족적(2.8) 등으로 모아졌다. 민주당이 이 후보를 공격할 때 단골메뉴로 사용해온 ‘속좁음’과 ‘협량’(狹量), ‘독선적이고 포용력 부족’ 등에 대한 지적은 1.1%에 지나지 않았다. 추진력 부족을 지적하는 응답(1.5%)도 적었다. 큰 덩어리는 아니지만 이 후보의 캐릭터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지적들도 나왔다. △급진적(1.0%) △친미성향(1.2%) △기존 정치인과 다르지 않다(1.2%) △시끄럽다(1.1%) △지역감정 해소에 도움이 안 됨(1.1%) 등. 이 밖에 그 수는 적지만 △정통성 부족 △신선감 부족 △사고력 부족 △겸손함 부족 △책임감 부족 △언론탄압 △약한 체력 등을 지적한 사람들도 있었다.

당 하나 제대로 장악 못하면서 무슨 대통령?

유권자들은 노무현 후보의 최대 약점으로 자질 부족(5.7%)을 꼽았다. 다음은 경험 부족(5.2%)이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될 만한 ‘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밖에 민주당 소속이어서(4.2%) 일관성 부족(3.8%) 의사 표현이 신중하지 않아서(3.7%)라는 응답이 많이 나왔다. 비슷한 대답들을 한 범주로 엮어봤더니 △추진력과 리더십 부족(14%) △과격하고 안정감이 없다(6.9%) △경험과 경륜 부족(6.1%) △민주당 문제(5.2%) △부정직과 신뢰 부족(2.9%) 등으로 요약됐다. 그동안 언론에서 노 후보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한 안정감 부족이나 언행상의 문제보다는 리더십 부족을 더 큰 문제로 지적한 것이다. 이는 민주당 안에서 후보 교체론 등 노 후보의 지위가 크게 흔들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당이 내란으로 지리멸렬해진 책임을 노 후보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당내 갈등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대통령 타령이냐. 대통령 되려면 당내 지도력부터 보여줘라”는 식이다. 재보선과 지방선거 참패로 노 후보의 지위가 흔들리자 반노파는 이를 근거로 “거봐라, 노무현으로는 안 된다”고 떠벌렸다. 그 결과 당내 갈등은 더욱 커졌고 이는 다시 노 후보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노 후보쪽에선 그 책임을 반노파에 돌리지만 유권자들은 어쨌든 노 후보의 리더십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노 후보 진영이 ‘디지털 시대의 디지털 리더십’을 이번 선거에서 내세울 핵심 주제어로 정해 리더십을 강조하는 것도 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경선 과정에서 이인제 의원이 노 후보를 공격한 △급진적이고 좌파적이어서라는 주장은 1.5%에 지나지 않았다. 이 밖에 △기존 정치인과 다를 바 없어서(1.3%) △외모가 맘에 안 들어서(1.1%) △남을 헐뜯어서(1.1%) △출마가 시기상조여서(1.0%) 등의 대답이 나왔다. 적은 수지만 △학력이 부족해서 △건방져서 △계획성이 없어서 △국민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아서 △이기적이어서 △정치적 깊이가 없어서 △대외적인 인식 부족 △주변에 인물이 없어서 등의 대답도 나왔다. 서민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싫다는 응답도 있었다.

대통령은 축구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정몽준 의원의 최대 약점은 경험 부족(11.5%)으로 지적됐다. 다음은 기업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다(6.5%) 월드컵 덕을 보려 한다(6.5%) 등이었다. ‘기업인이나 축구인 정몽준’이라면 몰라도 ‘대통령 정몽준’은 ‘글쎄요’라는 것이다. 정 의원의 약점을 큰 틀에서 묶어봤더니 △경험과 경륜 부족(18.3%) △재벌 2세(12.5%) △자질 부족(6.5%) 등으로 모아졌다. 그동안 언론에선 정 후보의 최대 약점으로 재벌 2세라는 점을 꼽았다. 그가 출마 선언을 앞두고 현대중공업 지분의 중립적 처리방침을 언론에 내비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그의 문제점으로 경험 부족을 꼽는 유권자들이 더 많이 나온 것이다. 정 의원이 기업인과 체육인으로서는 나름의 위치에 올라섰지만, 유권자들은 이런 경험만으로 대통령이 될 만한 충분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되려면 좀더 폭넓은 경험을 쌓으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사실 정 의원은 4선의 원내경험을 쌓았다. 이회창 후보나 노무현 후보보다 선수가 높다. 하지만 무소속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적 중량감이 떨어져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정 의원은 특별한 행정경험을 쌓지 못했다. 공직경험이 화려한 이회창 후보나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노무현 후보에 견줘 정 의원의 행정겸험 부족은 더욱 두드러진다. 정 의원은 이런 점을 의식해 외교부 장관 등 장관직에 상당한 애착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축구팀의 빛나는 월드컵 성적이 정 의원 지지율 상승의 기폭제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유권자들은 이제 대통령을 노리는 정 의원에게 월드컵 덕을 보려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월드컵 기간엔 ‘축구당’이니 ‘축구대통령’이니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지만 현실 정치판에선 축구와 정치의 연결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다. 창당작업을 서두르지만 아직도 무소속인 정 의원에게 정치권의 지지기반 부족은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다. 그런데 정당의 문제를 지적한 응답자는 1.0%에 지나지 않았다. 이 밖에 △시기 상조(2.0%) △정치와 경영을 모두 하려 한다(1.0%) 등의 대답이 나왔다. 적은 수지만 △판단이 느리다 △맥이 없어 보인다 △카리스마 부족 △추진력 부족 △외모가 맘에 안 들어서 △쇼맨십이 강해서 △소문이 안 좋다 △양보하는 마음이 없다 등의 지적도 눈에 띈다.

유권자들은 정 의원의 문제점으로 39개 항목을 지적했다. 이 후보(57개)나 노 후보(59개)보다 훨씬 적다. 이 후보와 노 후보는 여러 검증 과정에서 약점과 단점이 노출됐지만, 정 의원은 아직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 의원의 갈 길이 아직 멀다.

후보의 싫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응답은 정 의원(23.1%)이 가장 많았고, 노 후보 18.1%, 이 후보 12.6%의 순이었다. 이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 비토그룹 조사결과와 같은 흐름이다. 이 후보에 대한 거부율이 31.1%에 이른 반면, 노 후보(12.1%)나 정 의원(7.7%)은 낮게 나왔다. 전반적으로 이 후보에 대한 강한 비토그룹이 많고, 정 의원은 상대적으로 비토그룹이 적다는 얘기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이화주 기자/한겨레 여론조사팀hol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