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9월18일 제427호 

천심의 외침 ‘부정부패 척결’

차기 대통령을 향한 유권자의 요구는 부정부패 척결·빈부격차 완화·경제성장


사진/ 유권자들이 차기 대통령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부정부패 척결이다.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이정용 기자)


역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대통령. 그의 임기말은 초라하다. 취임식 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심은 ‘화합의 나무’는 여전히 푸른빛을 발하건만 김 대통령이 지역감정 완화에 기여했다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비리척결을 목놓아 외쳤지만 두 아들이 오히려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구속됐다.

국민은 이제 12월 대선을 기다린다. 다음 대통령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한겨레21>이 그 속내를 엿봤다. 제16대 대통령을 향한 유권자의 요구는 크게 3가지로 집약됐다. 부정부패 척결, 빈부격차 완화, 경제성장이다. “다음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과제”를 묻는 질문에 24.6%(246명)가 부정부패 척결, 23.2%(232명)가 빈부격차 완화, 20.4%(204명)가 경제성장을 1순위 해결 과제로 꼽았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이런 결과엔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천심이 담겨 있다. 우선 국민 다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상에 진저리를 낸다는 것이 새삼 확인됐다. ‘잘 나가는’ 사람들의 몸뚱어리에서 온통 “구린내만 진동한다”는 사실. 그 절망적 현실을 다시 한번 절감한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에게 무엇보다 부정부패의 더러운 싹을 잘라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부패 척결은 이회창, 빈부격차는 노무현

빈부격차 완화가 2번째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꼽힌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는 진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잇따른 집값·전셋값 폭등 현상 속에서 가진 자의 오만과 없는 자들의 좌절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다. 유권자들이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지난 세기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핵심 코드인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분배정의 실현쪽으로 급속히 관심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유권자들은 아직도 두 가지를 떨어뜨려놓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해결과제 1, 2순위를 합산 집계한 결과 부정부패 척결은 47.3%로 단연 우위를 차지했다. 반면 경제성장(41.9%) 욕구는 빈부격차 해소(40.5%)를 약간 앞질렀다. 유권자의 속마음을 굳이 말한다면 지속적인 성장 속에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대통령, 이른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줄 유능한 사냥꾼’을 원하는 것이다.

반면 김대중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국정수행 핵심 과제로 부여잡은 정치개혁(12.6%), 지역갈등 해소(9.9%), 남북문제 평화적 해결(7.5%)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사진/ 국가비전 중간보고에 참석한 노무현 후보. (이정용 기자)


여기에도 유권자들의 복잡한 심리가 반영돼 있다. 먼저 이들 3개 과제가 최고 지도자 몇몇이 역량을 집중한다고 만족스럽게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 비관론이 투영돼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초반부터 고비용정치 청산, 동진정책에 강력한 드리이브를 걸었지만, 그 결실은 뚜렷하지 않다. 그나마 남북문제는 가시적인 성과가 엿보였다. 하지만 그 공과를 놓고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논란을 끊이지 않는다. 지역갈등 해소가 낮게 평가받은 것은 DJP 연합 세력이 집권하면서 그동안 지역갈등의 피해자로 권력 주변부에만 맴돌던 호남과 충청의 소외의식이 어느 정도 해소된 탓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거론되는 후보들 가운데 누가 이런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최대 관심사인 부정부패 척결 능력은 이회창 후보가 가장 후한 점수를 받았다. “어떤 후보가 부정부패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8.4%가 이 후보를 선택했다. 그동안 ‘부패정권 심판론’을 주창하며 김대중 정부에 맞선 이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9월12일 선거대책위원회 발족식에서도 “취임 1년 안에 김대중 정부가 남겨놓은 부패와 절망을 말끔히 씻어내겠다”며 올 대선에서 부패청산의 주체로 평가받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 후보도 24.9%로 비교적 후한 평가를 받았고, 정몽준(18.5%), 권영길(5.2%) 두 후보는 상대적으로 큰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정몽준, 남북문제·경제성장에서 후한 점수

빈부격차 완화 능력은 노무현 후보가 확실한 우위를 인정받았다. 응답자의 30.5%가 그를 “빈부격차 완화를 잘할 수 있는 후보”로 꼽았다. 정몽준(18.6%), 이회창(18.5%) 후보는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2위를 다퉜지만, 노 후보와 10%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정치개혁 능력에서 이회창(29.1%) 후보가 노무현 후보(24.9%)보다 훨씬 후한 평가를 받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회창 후보가 줄기차게 ‘3김식 정치 타파’를 외치면서 이슈를 선점한 반면, 새 정치의 주역처럼 떠오른 노 후보는 별로 신선한 행보를 보여주지 못한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은 최근 정치개혁을 주창하며 신당창당을 모색 중인 정몽준 후보에 대해서도 썩 미덥지 않은 눈치다. 정 후보가 정치개혁을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전체의 18.5%에 그쳤다.

정 후보는 오히려 남북문제 평화적 해결(40.8%), 경제성장(37.2%), 지역갈등 해소(33.4%) 능력에서 다른 후보들을 앞섰다. △생애 종반부를 대북사업을 통한 남북화해 진전에 불살랐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이라는 뒷배경 △현대중공업을 직접 경영한 기업인이라는 이력 △지역색이 옅은 정치인이라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권영길 후보는 빈부격차 완화, 부패척결, 지역갈등 해소, 정치개혁, 남북문제 해결, 경제성장 등 6개 항목에서 모두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정책으로 보면 가장 앞선 평가를 받을법한 그에 대한 평가가 물론 문제해결 능력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사표방지 심리와 낮은 인지도가 능력 평가에도 그대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