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의료원 노사협상에서 있었던 병원쪽의 태도는 장기화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희의료원 지부쪽에 따르면, 지난 8월 중순 사학연금 병원 부담률과 무노동 무임금, 민·형사 책임문제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실무협상에서 급속한 의견 접근을 보았다. 사학연금 문제는 부담률을 재조정하는 대신교원공제 장기급여로 대체하기로 합의하고, 무노동 무임금은 총파업기간 중 30일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한편 지부장과 수석부지부장 2명에 대해 정직 징계를 내리는 것 외에 모든 징계와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병원쪽 실무협상 책임자인 김아무개 사무차장은 문서화를 요구하는 노조쪽 요구에 대해 한사코 '구두약속'을 고집했다. 노조쪽이 "문서를 공개하지 말고 밀봉하자"라거나 "하다못해 녹취록이라도 남기자"고 요구했으나 이 또한 거부했다고 한다. 당시 병원쪽 홍보 유인물인 '파업과 진실'도 "노조가 문서화에 집착하고 있다"며 노조를 비난했다.

그러나 병원쪽은 갑자기 "전혀 합의된 게 없다"고 태도를 바꿨다. 구두약속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형식문제가 갑자기 내용문제로 바뀌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병원쪽 김 사무차장은 <한겨레21>에 "무노동 무임금은 병원이 양보할 테니 징계와 민·형사상 책임 백지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는데도 노조가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쪽은 "징계문제는 병원쪽에서 '선처하겠다'고 포괄적으로 얘기하기에 '선처의 의미가 제로(0)냐'고 확인했고, 사무차장도 '제로'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뒤 병원장은 징계뿐 아니라 모든 합의내용에 대해서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특히 "문서화 문제로 옥신각신할 때 노동부 김원배 기획관리실장이 들어와 '노동부가 문서를 만들어 보관할 수도 있다'고 까지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김 실장은 "노조와 병원장 모두 합의 사실을 인정하고 내게 문서화를 약속했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노조 주장대로 노사가 구두합의를보았으나 병원과 재단쪽 강경파들이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원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