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의 응원스타가 되려 했던 태극인공기 원피스 여성의 수난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아저씨, 나 되게 혼란스러워요. 태어나서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예요. 학교 다니면서 툭하면 들은 잔소리가 통일해야 된다는 소리구요. 텔레비전 틀어도 툭하면 통일, 통일이었구요. 아저씨는 통일 싫어해요?”
“나도 통일을 원한다. 분단을 빨리 끝내야 돼.”
“그렇죠. 아저씨 소원도 통일이잖아요. 바로 그게 혼란스럽다는 거예요. 나는 통일을 외친 죄밖에 없는데 왜 잡혀와서 아저씨한테 취조받아야 하냐구요.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네가 아무 잘못도 안 했다고? 정말 미쳐버리겠군. 야, 이년아 너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난리가 났다. 인터넷이 네년 얘기로 완전히 도배됐어.”
“그래요? 그럼 나 뜬 거예요? 뜬 거 맞죠?”
“아우, 환장하겠군. 야, 이년아, 더 이상 헛소리하지 말구, 불어.”
“뭘요?” “누가 사주시켰어?” “뭘요?”
“아, 이년 시치미떼는 거 보쇼. 네년 원피스 말이야.”
“아, 그거요, 순전히 창의력인데. 저 머리 되게 좋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냐면, 사실은 표절이었어요.”
“좋아, 이제야 바른말을 하는군. 그래 어떤 놈이야? 네 아빠야? 학교 선생이야?”
“아뇨, 저번에 월드컵 때요, 그때 삼지창인가 들고 이상요란한 복장해가지고 카메라에 늘 잡히던 애 있었잖아요.”
“걔, 이름은 모르지만 나도 알아. 걔 월드컵 때문에 완전 떴더라.”
“바로 그거예요. 난 그걸 모방했다고요. 나도 스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인공기를 구하느라고 여간 애먹은 게 아니에요. 난 잘 몰랐는데 인공기는 북한에만 있다면서요? 이해가 잘 안 돼요. 여중생들 장잡차로 치어죽인 미국놈들 성조기, 우리나라를 36년간이나 지배했다는 일본놈들 일장기, 다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왜 한겨레 한 핏줄이라는 북한 인공기는 그렇게 구하기가 어려운지….”
“이년, 너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우리 남한과 북한은 한 하늘에서 함께 살 수가 없는 적이야 적. 북한 국기 인공기는 적기야 적기. 그 적기가 어떻게 남한에서 돌아다닐 수 있단 말이냐?”
“북한이 적이에요?” “그럼 적이지, 적.”
“이상하네. 그럼 왜 적하고 통일하라고 하지.”
“이년이 똑똑한 거야, 멍청한 거야. 종잡을 수가 없네. 그래서 어떤 놈한테 샀어. 인공기 너한테 판 놈 죽었다. 그 장사꾼놈은 국가보안법으로다가 그냥 옭아매가지고 콩밥을 한 삼십년은 먹여야….”
“인터넷에서 구했어요. 역시 인터넷은 위대해요. 뭐든지 구할 수 있어요.”
“통일을 막으려면 그놈의 인터넷부터 없애야 된다니까.”
“아저씨, 통일되는 거 원치 않죠?”
“아니라니까. 나도 통일 원한다니까. 내 십팔번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니까.”
“아닌 것 같아. 아무튼 인터넷에서 구했어요. 그 다음엔 간단하죠. 우리 대한민국의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를 가지고 원피스를 만들었어요. 깃발도 만들었죠. 통일은 남한과 북한이 합쳐서 다시 한 나라가 되자는 거잖아요?”
“누가 아니래.”
“그래서 제가 태극인공기도 만들고 태극인공 원피스도 만든 거라구요. 사실 인공기하고 태극기를 이어 붙인 것뿐이죠. 남한땅, 북한땅이 도로 합쳐지라는 통일염원을 담아. 태극인공, 이름 끝내주죠? 히히, 실은 통일염원보다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요새는 무조건 튀고 봐야 된다니까요. 드디어 아시안게임이 시작되었죠. 그리고 오늘 북한과 남한의 축구경기가 있었죠. 왜 하필이면 축구경기에 갔냐구요? 아, 그걸 몰라서 물으세요. 축구가 짱이잖아요. 이왕이면 사람이 제일 많은 데 가야 스타가 되잖아요. 다들 한반도기만 흔들고 있더라구요. 그때 내가 짠 하고 나타나서, 태극인공 원피스를 입고 말이지요, 양손에는 태극인공기를 하나씩 들고 막 흔들었다는 거죠. 한반도 만세, 통일 만세 막 소리를 질러대면서. 그러자 응원단들이 응원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는 거예요. 그러더니 다 같이 저를 따라서 한반도 만세, 통일 만세 하더라구요. 어쩐지 모든 카메라 플래시들이 저한테만 터지는 것 같았어요. 아니나다를까 대형 화면을 보니까 저더라구요. 나는 이제 완전히 뜬다. CF 들어온다. 이러고 좋아하는데. 갑자기 정신이 없더라구요. 정신차려 보니까, 아저씨한테 취조받고 있네요. 왜 잡혀왔는지 이해도 못하겠구.”
“너 진짜 왜 잡혀왔는지 몰라. 넌 신문도 안 보고 살았니? 뉴스도 안 봤어? 아시안게임 이거 시작하기 한두달 전에 난리났었잖아. 인공기를 게양하니 마니.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나라 국기를, 단지 북한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지 인공기라는 이유만으로, 걸고 마니 그 난리였어. 공식적인 장소에서도 인공기를 못 걸겠다고 뻗댄 게 우리 한국 정부와 언론이란 말야. 그런 판국에 너는 경기장에서 인공기를 휘둘렀단 말이야. 네가 한 짓거리는 이 나라를 뒤집어놨단 말이야. 분명히 국가는 말했어. 아시안게임 때, 경기장에서는 한반도기만 쓰라고. 자기 나라 응원온 북한 응원단한테도 한반도기 쓰라고 하는 판인데,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인공기를 휘둘러?”
“제가 휘두른 건 인공기가 아니고 태극인공긴데요. 그리고 아저씨 나 진짜로 몰랐어요. 뉴스도 안 보고 신문도 안 본단 말이에요. 고등학생이 언제 그런 거 봐요. 난 그냥 축구 보고 스트레스도 풀구 스타도 돼보려고 그런 것뿐인데…. 그런데 저 같은 생각 아무나 할 수 있잖아요? 저 같은 애들이 한둘이겠어요. 우리는 스타가 되고 싶다구요. 아시안게임 끝나려면 멀었는데, 또 저처럼 태극인공기 들고 응원하는 애들 나오면 다 잡아넣을 거예요? 그럼 북한 응원하는 사람들도 다 처넣어야겠네. 깃발 흔드는 거나, 응원하는 거나, 그게 그거니까. 저번에 어떤 사람은 서울에 공연왔던 북한 여배우 팬 사이트도 만들고 그랬던데 그런 건 괜찮고, 깃발 휘두른 거 안 괜찮고, 뭐 그래요?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앙앙앙!”
“야! 야! 야! 왜 울어 네가 뭘 잘했다구. 이 청소년아. 생각을 좀 해봐. 너도 서해교전은 알 거 아니야. 우리 국군이 공산당한테 총 맞아 죽었다 이거야. 그런 일을 당했는데 너 같은 게 인공기를 휘두르면 국민들이 열 받어 안 받어?”
“난 진짜로 어지러워요. 서해교전 저도 아는데요, 그 다음에 북한 사람들 떼거지로 서울에 와서 공연하고 그랬잖아요. 우리 한국 아저씨들이 북한에 가서 경수론가 뭔가도 설치하고 있구요. 글구 북한 사람들 아시안게임에 참가한다고 되게 좋아했잖아요. 미워할 때는 언제고 환영할 때는 또 언제래요. 아저씨도 청소년 입장에서 생각을 좀 해보시라고요. 안 헛갈리나. 대체 통일을 하자는 거래요, 말자는 거래요?”
“뭐가 헛갈려. 남북교류는 남북교류고, 전쟁은 전쟁이야.”
“그럼 깃발은 깃발일 뿐이잖아요. 태극기는 태극기고 인공기는 인공기잖아요. 아무튼 통일은 돼야 되는 거라면서요. 그건 확실하죠?”
“그건 그래. 야! 이 아저씨는 통일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 누가 너한테 인공기 휘두르라고 사주했냐 말이야?”
“난 그냥, 스타가 되고 싶었다니까요!”
“그년은 또 뭐야? 너도 인공기 휘둘렀어? 뭐, 성조기에다가 장갑차를 박아가지고 조기를 만들었어? 그걸 왜 남북 농구하는 데서 휘둘러? 뭐, 그냥 튀려고 그랬다고. 이거, 돌겠구만. 뭐? 미국 대사관에서 난리가 났다고?”
“아저씨들 큰일났네. 아시안게임 끝나려면 멀었는데. 히히. 그러기에 못하게 할 것 못하게 해야죠. 학교 규칙도 안 지키는 우리 청소년들이 축제 규칙을 지킬라나 몰라. 어른들이 참 이상해. 축제를 하자면서, 말도 안 되는 규칙 잔뜩 만들어놔. 축제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김종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