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8월21일 제423호 

당신도 떨고 있나요?

김대업 테이프에 병역비리자 수두룩… 현역 정치인·군장성 등 추가 공개 예정


사진/ 김대업씨 테이프가 병역비리와 관련된 고위층을 향하고 있다. 그는 당사자들의 진술이 녹음된 테이프를 20여개나 가지고 있다. (이정용 기자)


김도술 전 국군수도병원 주임원사의 진술이라는 녹음테이프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역공방을 재점화하는 데 성공한 전 의무부사관 출신 김대업씨가 또 한 차례의 빅뱅을 예고하고 있다. 현역 정치인과 군장성, 군기관들의 병역비리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추가로 공개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김씨 녹음테이프의 파괴력은 정연씨 경우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8월18일 공개된 녹취록은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직접적이다. ‘했다더라’ 수준이 아니라, “내가 누구한테 돈을 받아 누구를 통해 청탁했다”는 식이다. 일반적인 병역비리 사건에서 직접 당사자의 이런 진술은 결정적인 증거능력을 갖는다. 병역 브로커가 처벌을 감수하고 하는 진술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나머지 녹음테이프도 비슷하다고 얘기했다. 정치권과 군장성 출신 등 고위층 인사들이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관련자 직접 진술… 고위층 20여명 포함

현재 김씨가 해외에 보관 중인 녹음테이프는 모두 20여개로 녹음 분량은 250∼300분가량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로 99년 군검찰의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하면서 조사내용을 볼펜형 녹음기로 녹음한 뒤 그때그때 녹음테이프로 옮겨놓은 것이다. 김씨는 “김도술씨 같은 의무부사관들·군의관·의정장교·군무원 등 20∼30명의 고위층 관련 진술이 20여개 테이프에 조각조각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정치인 관련 진술은 그 내용을 별도로 정리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김대업씨 2차 폭로의 희생양(?)이 될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김씨가 그동안 기자회견이나 방송출연 등을 통해 밝힌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우선 그 대상은 여야의 현역 정치인 15명과 군장성 4∼5명으로 압축된다. 정치인은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많아 12명이고, 자민련 2명, 민주당 1명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씨는 “이 중 4명은 시효가 아직 남아 있다”고 밝혀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사실이라면 공개와 함께 공식수사와 처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주장하는 연루자들이 누구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누구인지를 짐작할 만한 얘기들을 몇 차례 해서,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되는 수준이다. 우선 김씨는 8월 초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검을 방문해 “사건을 대검 중수부가 직접 수사하라”고 주장했을 때, 곧바로 “항의방문 의원 가운데 3명이 병역비리에 연루돼 있다”며 역공을 펼쳤다. 그는 나중에 이들 의원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했다.

또 김대업씨가 공개한 녹취록에도 이와 관련한 단서가 들어 있다. 우선 정부 고위관리를 지낸 나아무개씨의 비리의혹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녹취록 앞부분을 보면 김대업씨가 “그리고 저번에 이야기한 것 중에 나○○ 아들 것은 정확히 얼마 받았어요”라고 묻자, 김도술씨가 “1500만원 받아서 처리했잖아요”라고 대답하는 대목이 나온다. 김도술씨는 이어 “저번에 1300만에서 1500만원 적혀 있는데 금액이 왜 이렇게 다르냐”고 추궁하자 “보통 중간에 소개한 사람이 100∼200… 내가 받아서 줄 수도 있고”라고 설명한다. 김도술씨가 나씨쪽에서 1500만원을 받아 청탁을 처리해주고 소개자에게 일부를 건넨 셈이다. 나씨 건의 경우 이미 김도술씨가 자술서를 써놓고 다시 조사를 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99년 병역비리 합동수사본부 수사팀장을 맡았던 이명현 중령도 중요한 증언을 했다. “김도술씨는 워낙 거물이어서 우리의 중점 수사대상이었는데,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99년 1월 중순 군의관들이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군의관들 진술을 토대로 강하게 추궁하자 딱 두건을 시인했다.”

누구도 그의 폭로를 막을 수 없다

이 중령이 말하는 두건은 나씨와 서아무개 의원 건이다. 그러나 김도술씨 진술 내용을 조사해보자 모두 시효가 지난 것이었다는 게 이 중령의 설명이다. 실제 서 의원의 아들은 88년 면제판정을 받았고, 나씨의 경우도 면제판정이 90년 이전에 이뤄진 것이어서, 모두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 서 의원 건은 김대업씨가 공개한 녹취록에 이어지는 뒤쪽 대화에서 돈의 액수와 청탁과정이 자세히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김도술씨 조사내용 녹음이라는 녹음테이프 내용 중 정연씨 관련까지만 잘라서 검찰에 제출했고, 이어지는 진술내용도 조만간 낼 계획이라고 한다.

김대업씨가 제출한 녹취록상의 마지막 문장도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녹취록 마지막 부분은 “한인옥씨가 확실해요”라고 김대업씨가 묻고, 김도술씨가 “예”라고 대답한 뒤, 김대업씨가 다시 “그리고 육군본부에 있는 중장…” 하는 대목에서 끝난다. 김대업씨가 곧 제출할 녹취록에 육군 중장의 비리내용이 담겨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김대업씨 주장에 따르면, 이 육군 중장은 김아무개씨다. 김대업씨는 “김 장군을 포함한 4∼5명의 장성이 신검과 의병전역 관련 비리에 연루됐다는 진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녹음테이프가 정치권뿐 아니라 군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씨 자신과 주변인물들의 말을 들어보면, 김씨는 지난 99년 말∼2000년 초에도 정치인 등 공직자들의 병역비리를 폭로하려고 했었다. 김씨는 당시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하면서 주요 군의관과 군무원들 조사를 도맡다시피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직자 관련 비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흐지부지되자, 양심선언을 해서라도 수사를 재개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씨는 지금 가지고 있는 녹음테이프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한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려다, 반부패국민연대가 또 다른 고위층 비리명단을 입수해 검찰에 수사의뢰하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보면 김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돼온 것이며, 2차 폭로도 불발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김씨는 모두들 이미 꺼진 불이라고 생각했던 병역비리 수사를 재개시키기 위해 가장 민감한 대목인 이회창 후보 관련 의혹을 제기해놓고 뒤이어 정치권과 군 등 고위층 비리를 폭로하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김대업씨의 녹음테이프는 대선 직전의 정국을 또 한 차례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

정광섭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2부 iguass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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