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8월14일 제422호 

떼돈! 집으로…

강남-서울-신도시로 번지는 집값 폭등… 분노한 시민들 투기세력과의 일전 선언


사진/ 서울 강남구 대치동·도곡동의 고층아파트 단지. 강남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사회적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이용호 기자)


벤처회사의 이사 김영석(38·가명)씨는 최근 고교 동창모임에 갔다가 기분이 착잡해졌다. 친구들 사이의 주된 화제는 재테크 방법이었다. 승자는 단연 서울 강남권에 집을 산 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외환위기 직후 집값이 가장 쌀 때 강남구 개포동에 35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했다. 그새 집값은 2억8천만원에서 6억원으로 두배 넘게 올랐다. “주식에 투자했던 친구들은 추풍낙엽이더군요.” 김씨 자신도 벤처주에 투자해 한때 꽤 벌었다 싶었지만 대부분 털어먹은 처지다. 그가 사는 아파트의 전셋값도 4∼5년 전만 해도 1억원을 조금 넘었는데, 집값이 오르면서 두배 가까이 뛰었다. 주식투자로 약간 남긴 돈과 저축한 돈을 모두 전세비용으로 털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세금만 많이 내는 자기 집을 갖느니 차라리 전세가 낫겠다고 생각한 게 결국 오산이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서 몇년치 연봉을 날렸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사회적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8월9일 정부가 내놓은 재건축 억제와 세무조사 등의 대책으로 일시적 제동이 걸린 상태지만, ‘약발’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리라고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의 남은경 간사는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투기를 용인하는 온갖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판에 이런 땜질식 대증요법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 치솟은 집값만으로도 서민들의 마음은 흉흉하다.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는 7월 한달새 1억원이 올랐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몇년치 월급을 한푼 쓰지 않고 모아야 만져볼 수 있는 돈이다. “은마아파트를 모두 팔면 63빌딩 3개를 사고도 남는다”는 말이 오르내릴 정도다. 재건축을 앞둔 녹물이 뚝뚝 묻어나는 낡은 아파트가 국내 최고의 빌딩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것이다. 김씨는 “가만히 앉아서 몇년치 연봉을 날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박탈감을 호소했다.

집값은 집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꾼다. 외환위기와 함께 집값과 전셋값이 안정세를 보이는 동안에는 ‘집을 소유가 아니라 이용의 개념으로 바라보자’는 인식이 확산되는 듯했다. 환란으로 인해 타율적으로 이뤄진 것이지만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고통스러운 시대를 만들겠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약속이 현실로 나타났다. 전세에 살면서 남는 여윳돈을 금융자산으로 굴리는 ‘선진적’ 생활 스타일이 한동안 붐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치솟는 집값은 이런 생각을 철없던 한때의 몽상 정도로 돌려놓고 있다. “역시 무리해서라도 집은 사야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김남근 변호사는 “자칫 예전의 투기 거품이 재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투기까진 아니더라도 투자 대상으로서의 집에 대한 욕구는 이미 일반인들에게까지 폭넓게 확산되었다. 회사원 신용일(37·가명)씨는 요즘 부인에게 심하게 시달리고 있다. 신씨는 2년 전 서울 강북지역의 한 아파트를 사서 입주하자는 부인의 제안을 뿌리쳤다. 24평 아파트가 1억2천만원 정도 하던 때였다. 전세금 9천만원에 은행대출을 받으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신씨는 반대했다. 집값이 하향기조라는 언론보도를 믿은 것이다. 또 세금 등 부가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전세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대출이자도 부담스러웠다.




한전 직원들 사이에 엇갈린 희비

오판이었다고 깨닫는 데는 딱 6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초 다시 알아본 집값은 1억5천만원이었다. 전셋값도 1억3천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지금 그 아파트 가격은 1억9천만원이다. 신씨는 “7천만원이 허공에 사라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전세조차 갈 곳이 없어졌다. 그가 쥔 돈으로 아파트는 감히 꿈꾸기 어렵다. 그는 결국 작은 빌라로 옮겼다. 주거환경은 한 급 떨어졌지만, 전세금은 9500만원으로 오히려 올랐다. 그동안 저축한 돈을 모두 합쳐봐야 앞으로도 아파트는 전세조차 불가능하다. 신씨는 “순간의 판단착오로 돈 날리고 아내에게 탄압받는 처지가 됐다”며 자조섞인 웃음을 지었다.

신씨는 이 일을 계기로 집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신씨의 부인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라도 빨리 사서 기회를 봐야 한다”고 그를 다그치고 있다. 신씨 스스로도 “정말 이대로는 영영 변두리로 전세를 도는 신세를 못 면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집이 최고의 축재수단이라는 믿음에 더 이상 회의를 품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다.



한국전력 직원들 사이에선 요즘 집값 폭등에 따른 본사와 지방 근무자 간 희비가 엇갈린 사연이 단골 화젯거리다. 강남구 삼성동의 본사 주변에 집을 마련한 상당수 본사 직원들과 지방 직원들 간에 결과적으로 엄청난 자산가치의 차이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직원 김아무개(35)씨는 “지방 근무를 하면 사택이 제공돼 주거비용도 없고 물가도 싸 돈을 모을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재산을 늘린 건 본사 근무자들”이라고 말했다.

은행 융자라도 받아 악착같이 본사 근처에 집을 마련한 이들은 수억원의 자산가치 상승을 누린 반면, 지방에 내려간 이들은 여유로운 생활조건에도 불구하고 재산형성에는 상대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특히 외환위기 직후 퇴직금 중간정산을 한 돈으로 회사 주위에 아파트를 장만한 사람들은 싱글벙글인 반면, 주식투자를 하거나 지방에 내려간 이들은 대부분 쓰린 속만 달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폭등이 낳는 문제는 재테크의 실패에 따른 좌절감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집값 폭등은 필연적으로 전셋값을 자극하면서 서민들을 한층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몰아가고 있다. 그들이 느끼는 건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라 절대적 위기감이다.

강남 담합에 강북은 분노


사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집은 최고의 축재수단인가. 서울의 한 부동산 밀집지역.(이용호 기자)


집값 급등세가 강남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주도하는 쪽은 역시 강남이다. 강남에서 집값이 뛰면 강북으로 번지고 다시 새도시로 퍼져나간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서민들이 사는 강북의 무주택자들은 박탈감을 넘어 분노마저 느낀다. 강남 아파트 단지 부녀회가 반상회를 열어 아파트값을 조직적으로 담합하고, 부동산중개업소와 다시 결탁해 집값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집값 폭등세가 강남에 그치면 모르지만, 결국 강북까지 번지면서 애먼 피해를 당하는 양상이다.

회사원 안아무개(35)씨는 지난해 아파트에서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1998년 그는 강남구 삼성동의 한 25평형 아파트에서 7천만원에 전세를 살았다. 2년 만에 전세금은 1억3천만원으로 뛰어올랐다. 결국 아파트 뒤쪽의 빌라를 얻어야 했다. 24평 빌라 전세도 1억원이나 했다. 그는 직장생활 7년 동안 저축한 돈을 고스란히 오른 전셋값에 보태야 했다. 지금 그가 떠난 아파트의 전셋값은 1억8천만원을 오르내린다. 안씨는 “이제 강남에서 아파트 전세사는 건 꿈도 못 꿀 일이 됐다. 여기 전세가 만료되면 어디 외곽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남권은 분양가도 엄청나 정상적인 회사 생활로는 집 마련이 불가능해졌다. 다시 경제위기가 와서 집값이 폭락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진/ 7월 한달새 1억원이 오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은마아파트를 모두 팔면 63빌딩 3개를 사고도 남는다”는 말이 오르내릴 정도다. (이용호 기자)


결혼 3년차의 오성완(32·가명·회사원)씨는 지난해 말 경기도 일산의 화정신도시로 전세를 옮겼다. 원래 강남구 역삼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전세를 살았다. 아이가 생기면서 좀더 넓은 집을 구하려 했지만, 강남권에서는 도저히 갈 곳이 없었다. 지금 있는 화정의 21평 아파트도 전세자금 1500만원을 대출받아서 겨우 입주할 수 있었다. 그는 요즘 아파트값 폭등 소식에 벌써부터 걱정이 많다. 전셋값이 어느새 7400만원에서 8천만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무리 절약해도 뻔한 월급으론 1천만원 이상 저축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빚을 더 낼 수도 없고, 전셋값이 조금만 더 오르면 다음엔 더 먼 외곽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겠네요.” 오씨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는데, 전세살이조차 불안에 떨며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집값 폭등에 맞서는 네티즌들

집값 폭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서민들만 짊어지는 게 아니다. 김남근 변호사는 “지금까지 부동산 투기 시점과 노사쟁의가 활발했던 시점이 일치해왔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거품은 정상적 노동 임금으로는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어 결국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극심한 노사분규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부동산 거품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 활성화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김 변호사는 “주거비용을 보전해주기 위한 임금인상과 토지가격 인상에 따라 기업비용이 올라갈뿐더러, 당연히 투자의욕도 떨어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남은경 간사는 “지금처럼 집값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이 용인되면 너나 없이 부동산 하나 잡아서 평생 먹고살려고 하지 누가 애써 일해 돈을 벌려고 하겠느냐”고 우려했다.

집값 폭등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반발 움직임은 벌써부터 확산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한번에 수천만원씩 오르는 집값이 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을 한계상황으로 몰고 있다. 노동계의 총력을 모아 해결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금을 아무리 올려봤자 수백만원인 상황에서 집값 폭등은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 다수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부유세라도 매겨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공공주택 공급을 대폭 늘려 집값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의 힘으로 도를 넘는 집값 거품을 터뜨리자는 사이버 모임도 생겨나 광범위한 호응을 얻고 있다. ‘아파트값 내리기 모임’(이하 아내모, cafe.daum.net/downapt)은 지난 4월 개설된 뒤 넉달 만에 회원 수가 1200여명에 이르렀다. ‘아내모’는 아파트값 폭등이 서민의 삶을 악화시키고 빈부격차를 심화한다며 투기세력과의 일전을 선언했다. 아내모 황현창(32) 대표는 “정부가 그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 투기를 용인하는 바람에 집값이 급등해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이 극도로 악화될 처지에 놓였다. 더 늦기 전에 단기적인 세무조사 등 투기방지 대책은 물론 부동산 보유세제와 누진 양도세제 도입 등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범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집값 잡는 후보가 대통령 될 것”


사진/ 지난 2월 서울 중계동의 한 아파트모델하우스에서 ‘떳다방’을 단속하는 국세청 부동산투기대책반. 부동산 투기는 경제 활성화의 적이다. (한겨레 서경선 기자)


16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양치는 목장을 만들기 위해 소작농을 내쫓던 영국 엔클로저 운동의 광풍을 두고 “어진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비판했다. 지난 90년과 91년 한국에선 폭등한 전셋값을 견디다 못해 20여명의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즐거운 나의 집’이 가족을 잡아먹는 상황에 맞서 전 국민적 저항이 들끓었다. 당시 안기부는 “계층 갈등의 증폭으로 혁명적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계했고, 노태우 정권은 아파트 200만호 건설과 종합토지세 도입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또다시 집이 문제다. 김남근 변호사는 “집을 시장에 맡겨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내버려둬선 안 되며,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바라봐야 한다”고 정책적 대응을 촉구했다. 황현창 대표는 “오는 대통령 선거에선 집값을 잡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가 국민적 지지를 획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만과 분노, 경고는 이미 위험수위를 위협하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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