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나라당은 병역문제에 초강경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기자)

“병역문제는 우리가 단 한점도 내줄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다. 여기서 밀리면 김대업씨 주장이 기정사실화된다. 확실히 뿌리를 뽑을 수밖에 없다.”(이회창 후보의 한 참모)

병역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는 단호함을 넘어 사생결단에 가깝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면제를 둘러싼 의혹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기꾼·공작정치 내세워 조기진압 기대

한나라당은 김대업씨의 기자회견과 고소로 검찰수사가 임박하자 ‘돌격개시’ 신호를 올렸다. 목표는 김대업씨와 민주당이었고, 검찰쪽에도 견제구를 날렸다. 김씨와 민주당에 대한 맞고소로 대응하면서 검찰을 항의방문해 사건을 서울지검 특수1부가 아닌 대검에 배당하라고 몰아친 것이다. 남경필 대변인은 김씨를 사기꾼으로 몰면서도 라디오에 출연해 직접 김씨와 맞대결을 펼치기까지 했다. 전례없는 일이었다. 대변인실은 김씨와 민주당을 공박하는 논평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검찰 항의방문에 함석재 법사위원장이 앞장서는 등 지도부와 의원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병역면제 문제가 쟁점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집요하게 이 문제를 파고들 때도 맞받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전면대응은 아니었다. 잘해봤자 본전이요, 잘못하면 큰 손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에서 병역문제가 나올 때마다 97년 대선패배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그동안 김대업씨에 대해 형사소송이 아닌 민사소송만 제기한 것도 검찰수사가 착수돼 이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는 것을 막아보자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은 돌연 태도를 바꿔 초강경 대응으로 나섰을까. 이 후보의 한 참모는 “이번에 제기된 문제는 도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책임의 문제”라며 “민주당의 공세가 심상치 않아 잘못하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이미 지난 97년 대선 때 심판을 받아 이 후보의 지지율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이 아무리 공세를 펼쳐도 약발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병역면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주장은 새로운 차원의 문제제기다. 병역면제 때보다 폭발성이 더욱 큰 문제다. 한나라당으로선 이 문제를 초기에 제압하지 않을 경우 사태를 걷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대응전략은 간명하다. 김씨는 ‘사기꾼’으로 몰고, 민주당의 공세는 ‘공작정치’로 규정하는 것이다. 남경필 대변인은 김씨와 방송대결을 마친 뒤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대업씨에 대해 사기꾼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민주당이 공작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뒤 재지 않고 전방위적 공세를 펼치다 보니 무리수도 나오고 있다. 8월1일 대검을 항의방문한 김용균 의원은 “특수1부장에 대해선 출신지역에 대한 내부 검토가 있어야 한다”며 사실상 병역비리 수사를 맡고 있는 박영관 특수1부장이 목포 출신임을 지목했다. 한나라당 법률구조단장인 김 의원은 지난 6월에도 “특정 지역 판사들이 선거재판을 맡아 사법부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걱정스럽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김 의원이 좀 오버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함석재 의원이 검찰 항의방문에 참여한 것도 비난여론이 높다. 검찰에 대한 압력으로 비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한나라당이 검찰의 사건 배당에까지 관여하느냐”며 비난했다. 자민련과 민주노동당도 “떳떳하다면 검찰수사에 맡기라”며 한나라당을 나무랐다.

민주당은 병역문제를 끝까지 물고늘어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화갑 대표는 “김대업씨 외에도 생생한 증언을 할 사람이 있다”며 한발 더 나아갔다. 특히 한나라당의 검찰 항의방문을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까지 장악하려는 시도’로 부각시키며 쟁점화했다. 딱 걸렸다는 태도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