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8월2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 후보 아들 병역의혹과 관련해 병적기록표를 확대복사해 해명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해온 김대업(41)씨가 지난 7월31일 서울지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섰다. 김씨는 그동안 몇몇 언론과 산발적인 인터뷰를 했지만 공식 기자회견은 처음이었다. ‘탁월한 병역비리 전문가’에서 ‘정치공작에 동원된 파렴치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김씨의 주장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한인옥씨가 관계자에게 금품 건넸다”

김씨의 입에선 충격적인 폭로가 튀어나왔다.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가 아들의 병역면제 과정에 연루됐으며, 증거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회견 내내 “확실한 물증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하고 있다, 진술이 증거 아니냐”는 주장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날도 “한나라당이 증인과 접촉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증거자료를 내놓을 수 없다. 특검이 설치되거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증거자료 일체를 제출하겠다”며 물증 제시를 요구하는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피해갔다.

김씨는 이어 8월2일 ‘에스비에스 전망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연씨 병역면제를 위해 한인옥 여사가 관계자에게 1천만원 이상의 금품을 건넸다”며 “91년 면제 과정, 은폐대책회의와 관련한 녹음테이프 4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파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김씨의 기자회견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은 격렬했다. 남경필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정권의 정치공작 전문가들이 김대업이라는 사기전문가를 회유한 다음, 허위사실을 날조하고 중상모략으로 우리 후보를 음해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공작에 착수한 것으로 보고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격한 반응은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한다. 대선을 앞두고 폭발성 있는 폭로가 잇따르고 있지만, 정작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김씨가 제기하는 의혹은 크게 네 가지다.

의혹 1 은폐 대책회의는 열렸는가

사진/ 거짓 사기꾼인가, 진실의 파수꾼인가? 7월31일 서울지검에서첫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김대업씨. (Ohmynews)

올 1월 초 뇌물수수 혐의로 긴급 체포된 김길부 전 병무청장에게서 들었다는 이른바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가 있다. 김씨는 “김 전 청장으로부터 ‘97년 7월 국회에서 병역면제 논란이 일자 이 후보 측근 인사들과 친인척, 병무청·국방부 고위간부 등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단둘이 있을 때 얘기를 들었으나, 김 전 청장이 변호사 접견 뒤 이 같은 진술을 번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씨가 언급하고 있는 ‘대책회의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며, “터무니없는 주장만 반복하지 말고 입증할 만한 증거를 대라”고 반박한다. 들었다는 사람과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상반된 진술 이외에 아직까지 제3의 진술이나 물증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검찰수사에서 가려야 할 대목이다.

의혹 2 신검부표는 언제 파기했나

신검부표 파기시점에 대한 논란은 좀더 구체적이다. 김씨는 “은폐 대책회의와 함께 이석희 당시 국세청 차장과 이 후보의 동생 회성씨, 전태준 당시 의무사령관 등이 공모해 신검부표 파기를 공모했다”며 “의무사령부의 지시로 국군춘천병원에서 실제 파기작업이 이뤄진 시점은 97년 8월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표 파기 당사자인 장복용씨는 “윗선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보존연한도 지난데다 병원이 이사를 가게 돼 96년 11월 소각했다”고 반박했다. 장씨는 “당시 의무사령부 인사처장이던 김아무개 대령이 부표 파기시점을 94년 말로 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는 주장도 했다. 전태준 전 의무사령관 등 ‘공모’ 의혹을 받고 있는 관련자들도 “이미 파기된 부표를 어떻게 또 파기하느냐”며 김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지난 8월2일 <한겨레21>과 만나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병역비리 수사팀에 몸담고 있을 때 춘천병원 관계자로부터 ‘97년 여름 국회에서 논란이 일자 의무사령부에서 정연씨 신검부표를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와 팩스로 보냈다'는 증언을 들었으며, 이를 녹취해뒀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은폐대책회의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다. 그러나 김씨는 녹취록 등 증거물은 공개하지 않았다.

의혹 3 정연씨 기록표는 조작됐나

정연씨의 병적기록표 자체가 조작됐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97년 7월 은폐 대책회의가 열린 뒤 공개되기 전까지 병무청 고위인사가 이를 사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나중에 공개된 병적기록표를 보면, 사진과 철인이 없는 등 여러 곳에서 조작된 흔적이 역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병무청 관계자는 “만약 조작을 했다면 흔적이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하지 그렇게 허술하게 조작했겠느냐”고 반박한다. “병적기록표가 허술하다는 점이 역으로 조작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인 셈”이라는 것이다.

병적기록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한나라당은 8월2일 오전 당사에서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해명을 시도했다. 당 국방위원장인 박세환 의원은 “102 보충대 입대 뒤 춘천병원에서 면제판정을 받은 장정들의 병적기록표 역시 정연씨의 병적기록표와 대부분 동일하게 작성됐다”며 “병무청의 병적기록표 양식과 관리가 일관되지 않은 관리부실을 두고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김씨의 재반박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그는 “신검 담당자가 아니면 군 출신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병적기록부를 일반인을 상대로 공개하는 것은 정치쇼에 불과하다”며 “그렇게 자신 있다면, 텔레비전 토론회를 열어 병적기록표 조작 여부를 가려보자”고 응수했다.

의혹 4 한인옥 연루설 사실인가

김씨가 7월31일 기자회견에서 새롭게 제기한 ‘한인옥씨 연루설’이다. 김씨는 “98년부터 병역비리 수사팀에 합류한 뒤 관련자들에게서 다양한 진술을 확보했다”며 “99년 수사 과정에서 한씨가 브로커를 통해 정연씨 병역문제를 해결했다는 증언을 확보했으나, 당시엔 공소시효가 지나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이 후보를 포함해 한나라당 의원 등 5명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 소송도 제기했다.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섬에 따라 어쨌든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사건을 대검에 배당하라는 한나라당의 요구와 달리 서울지검특수1부에 배당하면서 경남 진주 출신인 김경수 부부장에게 주임검사를 맡겼다. 호남 출신 부장에 영남 출신 부부장을 앉힘으로써 한나라당의 검사 출신지 시비를 희석시킨 셈이다.

일단 검찰은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서울지검은 8월3일 김길부 전 병무청장 등 관련자 10여명을 출국금지하고, 병적기록표 원부 등 관련 기록을 넘겨줄 것을 병무청쪽에 공식 요청했다. 조만간 김대업씨의 소환조사계획도 밝혔다. 당분간 서울지검 특수1부에 국민과 정치권의 이목이 쏠릴 전망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