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8월01일 제420호 

북한의 실험 “확 바꾸마”

개혁·개방 가시화로 경제체제 변화 예고… 실리 추구 대세에도 강경파 입김 여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유감표명을 할 것이다. 빠르면 9월에 재개될 7차 장관급회담에서 북쪽 대표단이 김 위원장의 사과 표현이 담긴 서한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이번 교전사태와 관련된 서해의 북한 해군 책임자에 대한 문책도 숙청형식으로 곧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담한 경제개방 조처 이어질 듯

북한 내부 소식에 정통한 기업인 이병희(가명·55)씨는 “북한 당국이 잇달아 내놓는 전향적인 개혁·개방조처들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추가 조처들이 계속 이어질 것같다”고 내다봤다. 지금은 초보적인 수준의 물가·임금 인상 등 가격개혁이 변화를 주도하지만, 조만간 화폐개혁을 비롯해 서구식 외환제도, 주식시장 도입 등 증권·금융제도 측면에서의 대담한 조처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이전부터 정해진 빡빡한 개방 스케줄 때문에 북한 지도부가 서둘러 서해교전 후유증을 없애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북한의 내부 기강이 많이 해이해져 이를 우려하는 보수·수구세력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나마 개혁·개방 시도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이씨는 이미 몇 개월 전에 북한 내 변화들을 예고했고, 실제로 그가 전한 상당수 내용들은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서해교전이 막 불거졌을 때도 그는 북한이 한달 안에 유감표명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는데, 이 말 역시 그대로 들어맞았다. 북한 당국은 서해교전 발생 뒤 한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인 7월26일 유감성명을 내놓았다. 따라서 이번에도 그의 예측이 맞아떨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서해교전 연루자에 대한 문책이 실제 이뤄질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유감표명 수준에 그치지 않고 이들에게 철퇴를 가한다면 이는 예사롭게 볼 대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은 군을 앞세운 선군정치가 지배구조로 자리잡고 있다. 군의 영향력은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에 뻗쳐 있다. 지금의 북한 지도부를 굳건하게 떠받치는 권력기반도 군부다. 따라서 군 관계자가 지난 시절 대남 군사행동과 관련해 문책당한 사례는 거의 없다. 하지만 군 내부적인 일탈행위로 소수그룹이나 개인이 숙청된 사례는 많았다는 게 정보기관 관계자의 귀띔이다. 따라서 이번 서해교전 관련자 문책도 책임을 묻는 형식보다는 군 내부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군부를 더욱 확고히 장악할 수 있는 숙군 차원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남한 정부, 기업, 군 정보 소식통들의 말을 모아보면 북한은 지금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체제는 흔들지 않으면서, 경제·사회체제를 확 바꿔 생존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지도부의 이런 대담한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부 기득권 세력의 지지기반을 넓히면서, 동시에 반발세력에 대한 채찍질을 강화하는 이중전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이런 맥락에서 서해교전이 북한 지도부의 치밀한 계산 아래 이뤄진 것이 아니라면 이번 사태는 거꾸로 내부 강경세력이나 대세를 거스르는 수구·보수 세력에 큰 타격을 입힐 빌미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군 숙군설이 그럴듯하게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서해교전 유감표명은 변화 흐름 반영

이번 서해교전 사태가 발생한 직후 평양 지도부 내부에서도 사후 수습책을 놓고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취할 조처를 했다”는 일부 군 관계자를 두둔하는 쪽과 “사려깊지 못한 행위로 그간 힘들게 쌓아온 대외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고 불평하는 쪽이 날카롭게 대립했다는 것이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솔직히 이번 서해교전사태 직후 북한 군의 추가도발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가 날아들어 크게 긴장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도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분명 이번 서해상에서의 충돌은 일부 세력의 사전계획에 따라 발생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무모한 군사 충돌을 막으려는 움직임과 사후에 서둘러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징후들도 포착됐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 당국은 서해상에서의 군사행위가 남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의 식량지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결과에 대해 가장 격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서둘러 사태를 봉합하려는 모습을 보인 점이나, 유감을 표시하고 남한과 장관급회담을 열자고 먼저 제의한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북한의 이번 공식적인 ‘유감표명’은 복잡한 함의를 띤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서해교전을 계기로 북한 내 대외 협상파와 개혁·개방 세력들이 다시 힘을 얻는 것 같다는 전문가들 분석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런 판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만큼 북한 체제의 진로가 안갯속이라는 얘기다. 바깥에서 보기에 북한은 분명 갈지자걸음을 걷고 있다. 한켠에선 여전히 군사적 모험을 중단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켠에선 문호를 조금씩 열어 한푼의 달러라도 더 유치하려고 혈안이다. 개혁·개방 조처를 취하기 전에 지나치게 뜸을 들이는 게 미덥지는 않지만, 치밀한 계산 아래 체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데는 전문가들도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가 북한 지도부의 뜻대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북한 내 보수의 벽이 여전히 너무나 두껍기 때문이다. 10년 전이나 최근까지 협상파나 개방파로 분류된 수많은 인사들이 강경파의 득세에 밀려 전면에서 사라진 사실도 북한에서 개혁·개방이란 과제가 얼마나 힘겨운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장경제 배우기 열풍… 사상 오염 경계


사진/ 북한은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 등을 따라배우고 있다. 정보통신산업 기지로 조성한 남천강첨단기술봉사회사.


북한과 오랫동안 경협을 벌여온 남한 기업인들에게는 언론매체를 통해 쏟아져나오는 가격혁명 소식 등이 크게 놀랍지 않아 보인다. 기업인 권오기(가명·45)씨. 그는 11년째 북한의 기업인들과 핵심 경제정책 브레인들을 만나왔다. 물론 그 사이 파트너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애초는 그냥 사업협의 목적으로 만나왔으나 언제부턴가 사업은 뒷전이고 자문역할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부터 북한 관료들은 경제회생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왔다는 게 권씨의 설명이다. 대기업 종합상사와 해외 근무 경험이 많은 그로서도 대답하기 곤란할 정도의 깊이 있고 어려운 질문을 북한 경제관료들이 던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전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문서적들을 보내달라는 요구가 쏟아진 때도 이 즈음이다.

북한 경제관료들은 그 뒤에도 쉼없이 필요한 책과 자료들을 그에게 요청했다. 이들과 빈번한 접촉과정에서 언제부턴가 그는 북한이 자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랄 만한 개혁·개방 실험을 착착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문제는 뚜껑을 여는 시기였다. 북한의 경제관료들은 개혁·개방 보따리들을 바로 풀어놓을 수가 없었다. 서로 상대방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잘못 나섰다가는 자본주의 사상에 오염됐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권씨는 술자리에 가서야 북한 내 경제엘리트들의 절절한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경제엘리트들은 웬만한 발언을 해도 면피할 수 있는 핵심 권력층에 끼지 못했다. 경제회생에 필요한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선뜻 내놓지 못했다. 지금도 이런 분위기는 여전하다고 권씨는 귀띔한다. 따라서 그는 북한에서의 개혁·개방 추진과 성패 여부는 오직 최고 통치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핵심 측근 몇몇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실제 경제개혁을 주도했다가 실패해 행방이 묘연한 인물들은 적지 않다. 첫 희생자는 91년에 경제특구로 지정한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에서 나왔다. 경제특구 설치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개방 시도로 평가받았다. 북한이 이곳에 처음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요소를 상당히 도입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사회주의권 몰락을 지켜보면서 초조감을 이기지 못해 한쪽 귀퉁이에 경제특구를 세웠으나, 외국자본은 이곳을 철저히 외면했다. 91년부터 경제특구 외자유치를 담당한 경제관료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전 세계를 돌며 투자유치를 호소했으나 반응는 냉담했다. 단지 일본 조총련계 기업이나, 홍콩, 유럽의 몇몇 기업이 북한과의 이런저런 인연을 감안해 투자했으나 북한 지도부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성과였다. 그 뒤 나진·선봉경제특구를 제안한 많은 경제관료들은 공식석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한동안 어느 누구도 경제특구와 관련한 얘기를 끄집어내지 못했다.

“경제특구 실패 경험 되풀이 않는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나진·선봉경제특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김일성 주석이 유훈으로 남긴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쓰든 나진·선봉을 일으켜세워야 했던 것이다. 나진·선봉경제특구의 실패로 신의주와 남포의 추가 개방임박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대개 소문으로 그쳤다. 북한이 선뜻 다른 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지 못한 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계속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는 어떻게든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실패한 경제특구에만 목을 매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했다. 북한은 남한 기업인들을 비롯해 평소 안면이 있는 중국, 동남아시아, 러시아 등지의 기업인들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아이디어 부족에 목말라 있었다. 북한이 어떤 조처를 취하면 외국인들이 믿고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는 주문들을 쏟아냈다. 특히 북한 지도부에는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러시아의 체제전환 성공 경험들이 귀에 솔깃하게 들어왔다. 비슷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도입해 오늘날의 경제적 부를 누리면서, 체제 안정을 유지하는 그들을 내심 부러워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중국 상하이의 첨단산업단지를 방문하고, 러시아 체제 변화의 현장을 무려 한달이 넘게 직접 둘러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북한은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남한의 근대화를 일궈내는 데 기관차노릇을 한 새마을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른바 개발독재형 경제발전 전략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다만 체제전환 과정에서 불거져나온 각종 부패와 비리, 매춘 등 자본주의 병폐만은 눈에 거슬렸다. 어설픈 가격혁명이 공급부족 현상과 맞물려 인플레를 불러와 대혼란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최근 실질적으로 부분적이나마 시장경제 요소들을 도입하고도,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실제 북한은 몇 가지 과감한 개혁 조처를 취하면서도 가까운 시일 안에 중앙 통제의 끈을 놓을 전망은 거의 없어 보인다.

새마을운동 관심… 체제 변화까지는 요원

이런 맥락에서 7월26일 김정일 위원장이 자강도 현지 기업소들을 돌아보면서 한 발언들은 눈길을 끈다.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가장 큰 실리를 얻게 하는 것이 우리 당이 내세우는 사회주의 경제관리 완성의 기본 방향이다.” “주체적인 계획경제관리원칙을 철저히 관철하며 국가의 중앙집권적·통일적 지도를 확고히 보장하면서 아래 단위의 창발성을 높이 발양시켜야 한다.”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을 고수하되, 민간부문에서는 ‘실리’와 ‘창발성’도모에 역점을 두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취한 가격 및 임금체계의 개혁, 환율의 현실화, 경제 주체의 책임성 강화 등도 온통 실리보장과 생산성 강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북한의 잇단 개혁·개방 조처가 체제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앞으로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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