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7월24일 제419호 

가수·시민·PD의 연대를

기형적인 대중음악판 어떻게 바꾸나…이제부터라도 머리 맞대고 대안 만들어야

가수 안치환, 문화방송 예능국의 스타 PD였던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서태지팬클럽의 회원들이 주축이 된 대중음악판바꾸기위원회의 김기보 방송팀장이 가요계 비리와 해결방안을 두고 머리를 맞댔다. 7월21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시작된 토론은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느라 한 차례 자리를 옮기며 3시간을 훌쩍 넘겼다.

국장급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사진/ 주철환 시민단체와 PD들의 만남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장을 만들어달라고 PD연합회에 요구해야 하고, 그런 만남의 장에 PD들이 바빠서 못 나온다면 직무유기다.


주철환(이하 주) 농사를 잘 지으려면 김매기를 제때 해야 한다. 뽑아야 하는 잡초는 어디에나 있다. 어느 조직이나 상류 10%는 성인군자이지만 하류 10%는 도둑에 가깝다. 내부에서 현업 PD 위에 있는 국장급들이 이걸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왜 누구는 인기 없는데 자주 나올까, 왜 누구는 실력 있는데 자주 안 나올까 의심해봐야 한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문제이긴 하다. 시청률 잘 나올 때는 누가 나오든지 상관 안 한다. 시민단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PD에게 영향력 행사하는 사람들이 파랑주의보를 발동하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안치환(이하 안) 2년 전 평양에 민족통일음악회 하러 (주철환 교수와) 같이 갔을 때, 음반 만드는 건 문제가 아닌데 막상 홍보하려고 하면 아주 막막하다고 했더니 ‘그런 문제가 있었어?’ 하고 이야기하기에 너무 놀랐다. 부장까지 한 사람도 잘 모르는구나 하고. 난 그때만 해도 신물나게 봤고 환멸까지 느끼던 때였다. 그래서 과연 데스크가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까 싶다. 현업 PD가 돈을 받는 게 그 선에서 끝나는 것 같지 않더라. 내가 볼 때는 윗선까지 가는 것 같다.

김기보(이하 김) 문화방송 <시사매거진 2580>에서 음반홍보비(PR비) 문제를 들고 나오자 프로듀서연합회보에서 루머를 사실로 보도했다며 명예훼손으로 문제삼을 수도 있다는 성명이 나왔다. 프로듀서연합회는 증거 나오면 자체 정화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들의 태도만 봐도 방송사 내부에 자정 시스템이 있는지 회의가 간다. 미국·일본의 공중파 방송에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없다. 일본 같은 경우 방송이 아닌 오리콘 차트에서 순위가 매겨져 PD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주 순위 때문에 비리의 온상이 된다라는 논리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김 방송이 대중음악을 독점하는 시스템이 대중음악의 구조를 왜곡한다. 지금같이 중증인 경우에는 극단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공적인, 시민 대표나 가수 대표가 참가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캐스팅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특정 장르나 기획사에 치중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 또 가요 프로그램의 경우 모두 사전녹화 방식으로 제작해야 한다. 그래야 라이브로 제작이 가능하고 시청자가 음악의 질 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주 그렇다면 신인가수는 어떻게 크나?

김 라디오로 가면 된다.

주 ‘백라일티’라는 말이 있는데, TV에 한번 나오는 게 라디오에 백번 나오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라디오 해도 크지 못하는 현실은 어떻게 하나?

김 텔레비전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들이 새로운 흐름을 잡아내지 못하고, 똑같은 메뉴를 반복하고 있어 음악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거다.

주 뮤직 시티즌들이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다. 싫증을 느끼면 주는 걸 그대로 받아먹지 않는다. 자기들의 욕구가 생기면 바꾼다. PD들도 그 정도는 의식하고 제작에 임한다.

판을 내도 홍보가 막막하더라


사진/ 주철환 시민단체와 PD들의 만남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장을 만들어달라고 PD연합회에 요구해야 하고, 그런 만남의 장에 PD들이 바빠서 못 나온다면 직무유기다.


김 대중음악에 대한 취향은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다. 특히 10대는 그럴 수밖에 없다. 가장 손쉬운 매체로 TV에 접근하니까. 초등학교 고학년만 보더라도 10대 팬덤을 사회화 과정처럼 거친다. 그러니 변화하기 힘들다. 네댓개의 대형 기획사가 행사하는 독점적 영향력은 텔레비전말고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중·고등학교 방송국에 이들 기획사에서 CD가 날아온다. 하나의 완결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주 방송3사 예능국장은 한국 대중문화 지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마음을 안 먹는다. 문제가 있는 것 같아도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시민단체에서 실명제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김 그건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어서 힘들 것 같고. 예능국 국장들이 대중문화의 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계의 문제점이다. 클럽, 라디오, 대학방송, 길거리 공연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텔레비전이 온통 권력을 틀어쥐고 있으니까.

주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이상론이 아닌가.

안 우리 음악 현실 자체가 밑에서 치고 올라올 만큼 토양이 풍부하지 않다. 음악하는 사람들 자체도 질적 생산력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뮤지션이나 소비자까지 총체적으로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시대적 상황이라는 운이 따르기는 했지만 나는 방송 시스템과는 다르게 성장했다.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그만한 뮤지션도 부재하다. 그게 음악인으로 열받는 현실이다.

주 98년에 ‘21세기 대중문화 대장정’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대중음악편에서 기보씨가 이야기한 거 다 나왔다. 유소년 축구처럼 하부부터 튼튼해야 한다는 거. 그렇게 되면 더 바랄 나위 없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걸 느꼈다. 캐스팅위원회를 조직하자는 이야기는 공허하다. 그럼 PD는 단순한 기능인이 되라는 말인가?

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음악 PD와 매니저 간에 대등한 인간적 관계가 될 수 없다. 들어보면 정말 가관이다. 내 경우에 3집을 한 대형 음반사에서 홍보했는데 수익의 대부분이 홍보비로 들어가 따졌더니 자기네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룸살롱에 집어주는 돈, 골프치고 노름해서 잃어주는 돈 등등. 4집의 경우에 홍보를 거의 안 했지만 다행히 자생적으로 떠서 음반이 많이 나갔다. 그랬더니 PD들이 매니저에게 뭐 없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더라. 절망적인 현실이다. 그래서 제작자이자 가수인 나로서는 음반 작업이 끝나면 그때부터 미친다. 음반을 살리려면 홍보해야 하고, 홍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게 뻔하니 자괴감이 아주 심하다. 지긋지긋하다. 대안적인 게 없다.

주 휴∼.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스타가 이렇게 직접 솔직하게 대놓고 이야기하니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답답해진다.

안 개인적인 바람은 내 노래가 음악적인 힘이 있어서 그것으로 인정받고 나아가서 나의 자생력을 유지할 수 있는 뮤지션이 됐으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방송이 신곡의 상당수를 일정한 기간 동안 틀어주고 대중들이 선호하는 인기곡을 추려내는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

김 텔레비전이라는 사회적 공기를 4, 5대 기획사가 점유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문제다. 이걸 줄이는 방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FM 라디오의 경우만 해도 음악의 절대적 비중이 너무 작다. 토크식 프로가 전면에 나서고 음악 전문 프로그램도 뒤로 밀리고.

주 청취자의 욕구에 부응하다 보니 그런 현상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중도 각성이 필요하다


사진/ 안치환 음악하는 사람은 엔터테이너가 될 것인가, 뮤지션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진정한 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야 구조를 바꿀 힘이 생긴다.


안그걸 즐기는 사람도 많다. 이건 누구의 책임인가. 모든 것이 방송사의 책임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중에게도 책임이 있다.

주 <보고 또 보고>라는 일일 드라마가 연장 방송하면서 제작진이 엄청 비난받았는데 시청률은 50%를 넘었다. 그런데도 시청자에 대해서 반성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건 어떻게 봐야 하나. 대중을 무시할 수 없다. 대중의 주체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김 햄버거의 예를 들어보자. 맥도널드가 해피밀 전략을 편다. 어릴 적부터 맛을 길들여 다른 걸 먹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10대들이 다양한 음악 장르를 접할 수 없다.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그런데 10대들 가운데 장르가 편중돼 있다고 생각한다는 비율이 54%나 됐다.

주 방송 권력을 해체하거나 분산하라는 것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낭만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공허하게 다가온다. 캐스팅위원회를 만들면 거기에 누가 들어가나? 시민단체? 그러면 그곳에는 전횡이 생기지 않을 것 같은가. ‘방송의 3권분립’에 대한 책을 쓸 예정인데, 방송3사 사장들이 모여서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합의해서 음악 프로그램을 개혁하는 게 효과면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하다. 방송사 생리상 명령만 내리면 누구도 반대 안 한다. 그런 합의 없이 한 방송사만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시청률이 떨어질 테고, 그러면 PD들이 무기력증에 빠진다. 사장들은 여전히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 <이소라의 프로포즈>나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사전 녹화에 의한 라이브 프로그램만 남기고, PD에게 권력을 주는 프라임 시간대의 음악 프로그램은 모두 없애야 한다.

안 라이브 프로그램을 잔뜩 만든다면 누가 나올까? 라이브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나? 라이브 프로그램을 만들더라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의 문제도 갑갑하다.

주 립싱크하는 댄스그룹은 무조건 나오지 말라고? ‘가창력 있는 가수만이 가수다’라는 시대는 아니다. 광의의 가수라는 게 생겼다. 그건 독이 아니다. 그게 주류가 되니까 문제라는 거지. 예능PD 뽑을 때 애초부터 전문성 있고 양식 있는 사람들 채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환경이라는 것은 햇볕과 양분과 수분들이 같이 있어야 한다. 결국 연대를 해야 한다. 내부의 양식 있는 사람과 실력 있는 가수들, 바깥의 시민들이 함께. 또 윗사람의 감시와 외부에서 조언, 견제가 어우러져 즐거운 행보가 이뤄지면 좋겠다. 쉬운 일은 아니다.

김 입장은 다 나온 것 같다. 내부의 자정 시스템은 붕괴된 상태고, PD에게 절대적 권리가 주어진 상황이 근원적인 문제니까 방송에 집중돼 있는 권력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영화계의 경우, 시민과 영화인이 모여 정부를 향해 지원책을 요구한다. 음악계에는 노력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행동은 없었다. 주체는 뮤지션과 팬들이 맡되 정부의 적극적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 연제협 사태 때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한 가수들이 정말 노예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할 때다. 뮤지션들도 행동과 사고가 정치적이 돼야 한다. 팬들도 각성해야 한다. 세금으로 내는 문예진흥기금의 일부가 라이브 공연장을 확대하는 데 쓰여야 한다.

안 공연할 때마다 문예진흥기금을 낸다. 이것이 대중음악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건 문제다.

주 라이브 공연장 간다고 모두 뜨는 건 아니다. 이럴 수는 있다. 안치환 같은 가수 밑으로 들어가 공연장에서 오프닝 공연하면서 서서히 자신을 알리는….

안 딸아이가 재능이 있다면서 가수를 시키고 싶어하는 분이 공연 때마다 찾아와 조언을 구하기에 책을 많이 읽히라고 이야기했다.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그런데 이 아이가 지금 유명가수를 여럿 키운 한 기획사에 가서 몇년째 있는데 아직 음반을 낼 엄두조차 못 낸다. 그 뒤에 아버지를 만나보니 가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생리와 비리를 다 알고 답답해하더라.

시민단체와 PD와의 만남 정례화



김 대중들이 엔터테이너를 원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다는 신화도 있는데 국민 가운데 라이브 공연을 경험한 사람은 극소수다. 붉은악마 응원 때 다들 놀고 싶어서 나왔지만 나는 너무 재미없었다. 음악이 없어서. 그래서 트럭 몇대를 빌려 홍대 쪽 뮤지션 불러서 5시간 가까이 거리공연을 벌이니까 반응이 너무 좋았다. 들어보면 좋아한다.

주 모인 곳에 가서 하는 것과 모이게 하는 것은 다르다.

안 방송 프로그램 중에 ‘게릴라 콘서트’라는 게 있는데 엉뚱한 의미로 쓰인다. U2처럼 어떤 장소에서 갑자기 공연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거기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잡혀가고 하는 게 게릴라 콘서트인데. 사람들은 라이브 공연에 시간과 돈과 애정을 바쳐서 오는 거고 뮤지션은 조명과 음향, 사운드 등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는 것인데, 방송의 그런 활동은 공연문화를 죽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대중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지금 대중을 이야기할 때 10대를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다른 세대의 책임은 이야기할 수 없는가.

주 세대로 보면 어쩔 수 없다. 나도 중·고생 때 즐겨듣던, 그래서 친근한 70∼80년대 음악을 좋아한다. 결국 10대들이 음악에 대한 충성도가 강한 집단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뮤직 시티즌은 20살이 되면 시민권을 반납한다.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음악의 질에 대해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김 대중들은 제 값을 주고 음악을 듣고, 또 뮤지션에게 좋은 음악을 요구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주 기보씨와 같은 시민단체와 PD들의 만남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자발적으로 연구해서 많은 국내외 자료를 갖고 있는데 그냥 사장시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걸 유의미한 정보로 만들기 위한 장을 만들어달라고 PD연합회에 요구해야 하고, 그런 만남의 장에 PD들이 바빠서 못 나온다면 직무유기다. 엄청나게 중요한 걸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발짝씩 나아가야지….

안 음악하는 사람은 엔터테이너가 될 것인가, 뮤지션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두 부류는 질적으로 다르다. 철학적으로 중심을 가진 사람이 돼야 곡을 만들 수 있는데, 그런 걸 키울 토양이 아니다. 그 토양을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들은 구체적이면서도 피상적이다. 진정한 뮤지션으로 라이브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면서 진정한 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야 구조를 바꿀 힘이 생긴다.

정리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사진 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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