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7월24일 제419호 

음악으로 승부? 꿈도 꾸지 마!

국내 아티스트의 살 길을 고민하는 박강원씨의 돌아보기도 싫은 기억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원뮤직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박강원(38)씨가 대중음악과 질긴 인연을 맺은 건 80년대 중반이던 대학교 2년 때다. 록을 즐겨듣던 그는 ‘MBC DJ 콘테스트’를 통해 DJ 생활을 시작했다. 때론 라디오 방송의 초대 손님으로, 때론 ‘다운타운’의 DJ로 대학시절을 보낸 뒤, 대학선배인 성시완씨와 함께 ‘시원레코드’를 시작했다. 그 이듬해인 1991년,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음반박람회인 미뎀을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나름대로 우리 대중음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음반 비즈니스만 놓고 봐도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후진적이라는 걸 너무나 쉽게 확인했다. 자극받은 그는 93년에 원뮤직을 직접 차려 음반제작에 뛰어들었다. 독일의 헤비메탈 전문 프로덕션의 제안으로 당시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들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 <몬스터스 프롬 이스트>(동양에서 온 괴물들)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실은 신통치 않았다. 국내 아티스트가 살길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함께 작업했던 인연으로 밴드 ‘블랙신드롬’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다.

PD의 노예가 되버린 매니저

운이 따른 걸까, 블랙신드롬이 일을 냈다. 1996년, 새 앨범 <짜라투스투라>가 국내 최초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정식 라이선스로 발매됐다. 일간지들이 대서특필했다. 이어 홍콩에서 열리는 ‘미뎀 아시아97’이 마련하는 ‘아시아 록 나이트’에 한국 대표로 뽑히는 등 해외에서 먼저 실력을 인정받았다. 문제는 국내 홍보였다. 마침 한 대형 음반사에서 “가능성이 보인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들의 ‘노하우’대로 일이 진행됐다. 방송 쪽에 ‘정통’한 매니저를 따로 고용하고, 그가 이렇게 저렇게 써야 할 홍보비 3천만원을 건네야 했다. 박씨에게는 엄청난 거액이었지만 “이렇게 하는거다, 이 정도는 아주 작은 금액이다”라는 말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효과는 있었다. 라디오 방송 횟수가 늘고, 텔레비전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에도 올랐다. 적자를 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들과 결별하고 직접 홍보 전선에 나서기로 했다. 사하라, 모비딕 등 소속 밴드의 수를 늘렸고, 잇따라 새 앨범을 만들었다.

하지만 잘 나가는 PD와 긴밀한 선을 대놓은 매니저의 세계로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었다. 다른 매니저들처럼 방송사 복도에서 오가는 PD들과 얼굴이라도 익히려 애썼지만, 부르르 떨릴 정도의 당혹감과 모욕감만 돌아왔다. 새 앨범 나왔습니다, 하고 가져다주면 보지도 않고 휙 집어던지는 게 예사였다. 누군가의 소개로 가요순위 프로그램 PD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눈치였다. 가격이 정해져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돈을 곁들이지 않고 음악만으로 승부하는 건 올려다보기도 힘든 철벽을 향해 맨몸으로 달려드는 격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턱대고 아무한테나 돈을 받는 건 아니었다. PD들과 술자리에 낄 정도가 되면 “이만큼 친해졌구나” 하고 진정 뿌듯해하는 게 매니저의 세계였다. PD의 출장이나 휴가 때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고, PD가 집안의 대소사에 관한 심부름까지 시키는 사이가 되면 그 매니저는 정상에 오른 자로서 비로소 대접받는 풍토였다. 돈을 줄 수 있는 ‘자격’ 있는 매니저는 따로 있었다. 더욱 희한한 건, 방송사에서 자신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PD가 상갓집 같은 방송사 바깥에서 만나면 다정스레 말을 주고받는 ‘정상인’이 되는 게 아닌가. 끔찍했다. <짜라투스투라> 이후 7장의 가요 앨범을 만들었지만 모조리 쓴맛을 봐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가 터졌다. 가요 쪽은 이제 그만 접기로 했다.

근본적으로 빠꿔야 한다

자금이 바닥난 그는 한동안 집을 사무실 삼아 일하면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99년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음악박람회 ‘팝콤’에 국내 최초로 발을 내디디면서 수습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미뎀 등을 돌아다니며 괜찮은 앨범을 수입해서 파는 일을 주업으로 삼았다. 올해에는 미뎀 조직위에서 인정해주는 한국대표로 정식 계약을 하게 됐다. 또 모처럼 획기적인 음반을 발매하게 됐다. 록계의 거물인 카마인 어피스가 주도하는 <기타 제우스> 시리즈의 한국판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기타 제우스 코리아>는 카마인 어피스가 모은 해외 뮤지션들의 연주와 보컬에 국내의 내로라 하는 기타리스트가 참여함으로써 만들어졌다. 직배사 EMI와 국내외 배급 계약을 맺는 등 오랜만에 원기돋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가요계 비리 사건이 터졌다. 검찰이 결사적으로 달려든다. 이를 지켜보는 그가 모질게 말한다.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는 소용없다. 방송의 시녀에 불과한 가요계, 그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는 달라질 게 없다. 현재로서는 대리인을 둬 돈을 뿌리든가 내가 직접 돈을 갖다주지 않고는 새 음반을 대중에게 제대로 홍보할 방법이 없다. 공연의 활성화든 뭐든 (대중에게 접근할) 다른 길이 생겨야 시스템이 달라진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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