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윤군참모총장 시절의 길형보 사장. 군의 수뇌부 출신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의 사장이 됐다면 문제가 정말 없을까.

지난해 10월, 육군 참모총장으로 재직하던 길형보(육군 대장)씨는 군 인사에서 합참의장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이미 대장으로 3군사령관에 이어 육군총장을 거친 몸이라 “대장 보직은 3차례 연임하지 않는다”는 군 인사의 불문율이 걸림돌이었다. 역시 길 총장은 합참의장에 오르지 못하고 10월12일 전역한다. 그로부터 불과 열흘 만인 10월22일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주주총회를 열어 임인택 전 사장이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빈 사장 자리에 길씨를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전역에 따른 보상 성격의 자리찾아주기라는 뒷말이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장 인사, 정부 눈치만 봤다

실제로 한국항공 직원들은 당시 후임 사장이 누가 될지 정부 눈치만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사기업체라고는 해도,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종합기계의 지분 28%가 산업은행의 관리 아래 있었고, 산업은행이 별도로 16%의 지분을 가진 상황에서 주주사들이 신임 사장을 독자적으로 선임할 수 있다고는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항공 관계자는 “신임 사장 인사는 청와대와 산자부의 통보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다는 얘기다. 이런 낙하산 인사는 처음부터 심각한 법 위반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공직자윤리법이 퇴임 공직자의 영리사기업체 취업을 엄격히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직급 또는 직무분야에 종사했던 공무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 동안은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나 협회에 취업할 수 없다” 며 “다만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법 시행령 32조는 “소속하였던 부서의 업무라 함은… (부서장의) 상급 지위에 있던 자는 직제, 정관, 규정 또는 직무상 지휘 감독하는 부서의 업무를 말한다”고 넓게 규정하고, 밀접한 관련성의 범위에 대해서도 “기타 업무의 처리방법에 따라 기업체의 재산상의 권리에 직접적인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업무(32조2항7)”를 포함시켜 매우 넓게 해석하고 있다. 길 전 총장이 군 전역 열흘 만에 한국항공 사장으로 곧바로 취업한 것은 이런 규정에 비춰볼 때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이었을까?

한국항공은 항공기 부품 및 완제품을 생산해 육군과 공군 등에 납품하는 대표적인 방위산업체이고 길 사장은 군의 수뇌부였다. 상식적으로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보기는 무리다. 하지만 공직자윤리법에 그런 취업제한 규정이 있다는 것은 당시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은 (취업회사와 과거 종사한 공직의) 업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 “취업개시 ‘15일 전’까지 퇴직당시 소속기관장을 거쳐 취업승인신청서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34조1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길 사장은 전역 열흘 만에 한국항공 사장에 선임됐다. 처음부터 법적 절차를 이행할 준비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뒷날 복잡한 사태로 이어졌다.

윤리위에 승인신청을 하긴 했으나…

국방부 감사실 관계자는 “길 사장이 취업 뒤인 10월29일 뒤늦게 한국항공이 취업제한 대상인지를 육군본부에 질의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길 사장은 11월14일 국방부를 거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정식으로 취업승인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취업승인신청서를 냈다는 사실은 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직자윤리법은 “업무관련성이 있는 회사에 취업할 경우”에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승인신청을 받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길 사장이 육군총장으로 재임할 때의 업무가 한국항공과 관련성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취업승인신청을 애초 낼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길 사장은 취업 15일 전 취업승인을 신청하도록 한 규정도 이미 어겼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해버렸다. 참여연대 이재명 부장은 “최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윤리위의 심의명단에서 길 사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심의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행정자치부 윤리과 관계자는 “업무관련성 여부는 소속 행정기관의 장이 판단하면 되는 문제”라며 취업승인신청서를 냈는지 여부를 얼버무렸다. 어떻게 된 것일까?

국방부 관계자는 “분명히 취업승인신청을 냈으나 공직자윤리위가 신청서를 되돌려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취업한 사람이므로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처리하라’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 뒤 국방부는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국방부는 “법에 따라 처리하라는 회신의 의미를 놓고 면밀히 검토한 결과 두 가지 처리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회사에 해임요구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업무관련성이 없으면 취업가능 대상이라고 통보하면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길 사장이 법을 위반했다면 해임은 물론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하지만 국방부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방부는 “밀접한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보고 12월12일 길 사장에게 한국항공은 취업가능 대상이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취업승인신청 자체가 애초 필요없던 일로 바뀐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취업승인신청을 내기는 했지만, 신청서에도 밀접한 업무관련성은 없다는 의견을 덧붙였다”며 “다만 윤리위의 판단을 받아보기 위해 신청서를 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는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길 사장이 육군 참모총장으로 재직할 때) 한국항공과 관련성을 따질 필요가 있는 업무는 크게 경-정찰헬기(BO-105)사업, 무인정찰기(UAV)사업, 다목적헬기(KMH)사업 등 세 가지다. 그러나 무인정찰기사업은 93년 8월에 착수했으므로 길 사장의 재직 중 업무와는 무관하다. 다목적헬기사업은 합참에서 합동참모회의를 거쳐 군 소요를 결정한 것으로 간접관련은 있으나 직접관련은 없다. 경-정찰헬기는 97년 11월에 기종이 결정돼 추진한 사업으로 길 사장이 육참총장 재직 때 시제기 2대에 대한 수락시험 등을 실시했다. 그러나 수락시험은 국방부 산하기관인 국방품질관리소 주관으로 실시했으며 육군교육사령부 위임으로 최초 운용능력 평가를 확인했으므로 결제선상에 있지 않았다.”

관련성은 있되 ‘밀접한 관련성’은 없다?

국방부 관계자는 “업무관련성은 ‘밀접한’ 것이어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 경-정찰헬기는 관련성은 있더라도 ‘밀접한’ 관련은 없었다고 보았다”고 강조했다. ‘밀접한 업무관련성’이 있는지를 최종 판단한 사람들은 길형보 전 육군참모총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방부 사람들이었다. 그 판단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길 사장의 한국항공 사장 취임이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성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