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7월03일 제416호 

이젠 떠나자, 내륙의 품으로!

중앙고속도로가 열어놓은 비경과 명소들… 바람과 물, 숲의 땅에서 여름나기

축제의 6월은 갔다. 마음 한곳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작열하는 햇살은 여전히 뜨겁다. 둥근 축구공에 울고 웃던 마음을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으로 살포시 감싸보자. 역사의 숨결과 사람들의 인정을 낯선 곳에서 새롭게 느껴보자.

<한겨레21>은 지난해 말 완전 개통한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강원도와 경상북도 내륙의 명소들을 다녀왔다.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이곳의 명승지들이 한결 가까워졌다. 춘천에서 대구까지 총연장 280km의 새 길. 6시간 넘던 꼬부랑길이 서너 시간 길이로 가뿐하게 짧아졌다. 새 길은 호수와 강과 산과 문화유적지들을 넘나들며 가로지른다. 길과 함께 열린 바람과 물과 숲의 땅으로 들어가보자. 편집자






길은 시원시원했다. 열어놓은 차창으로 들이닥치는 바람 또한 신선했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대구 방향으로 접어들면서는 차 사이 거리가 몰라보게 넓어졌다. 어떤 구간에선 앞뒤로 차가 오가고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도로가 텅 비다시피했다. 평일이고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 이전이긴 했다. 앞서 지나온 영동고속도로에서 구간 곳곳에 벌여놓은 공사 때문에 시속 20km 아래의 거북이걸음을 했다는 점도 더욱 그런 느낌을 짙게 했을 터다. 숲향내를 담은 산바람도 30도가 넘는 불볕더위를 식혀줬다. 이 정도라면 휴가철로 접어들어도 올 한해만큼은 이 길의 체증을 걱정하진 않아도 되겠다 싶은 기대를 품어봐도 될 것같다. 물론 수도권에서 떠나는 이라면 이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 영동이나 경부고속도로 구간에서의 일시적 막힘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숲 사이의 강을 찾아 떠나다



만종분기점에서 남원주 나들목을 지나니 신림 나들목이 나타났다. 여기서 일단 중앙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요금내는 곳 앞에서 바로 우회전했다. 주천이라 쓰인 표지판을 따라 88번 지방도로로 들어선 것이다. 첫 목표지는 주천강이었다.

굽이굽이마다 전설 한 대목쯤은 갖춰놓고 있는 것이 강원도 영월의 산천이다. 영월군 주천면과 수주면에 걸쳐 있는 주천강(酒泉江) 계곡에 전설이 어찌 없을쏜가. 먼 옛날 주천면 깊은 산골짜기 바위샘에선 물 대신 술이 솟아났단다. 양반이 잔을 대면 맑은 청주를, 천민이 사발을 들이밀면 탁주를 한그득 쏟아부었다. 한 천민이 그만 부아가 났다. 갓 쓰고 양반차림으로 잔을 댔다. 청주가 나오겠지. 그런데 바위샘은 용하게도 속지 않고 탁주를 부었다. 분을 참지 못한 천민은 바위샘을 부숴버렸다. 그 뒤로는 샘자리에서 술 대신 맑은 물만 흐르게 됐다 한다. 두고두고 주당들을 아쉽게 만드는 전설이다. 어쩌자고 분별이 없어야 할 자연마저 그다지도 귀천을 따졌더란 말인가. 맛난 술 대신 아름다운 강이 남아 그나마 길손의 마음을 달래준다.

주천강으로 들어서는 길은 그리 깊지도 얕지도 않았다. 강은 고만고만한 산들 사이로 꼬불꼬불 흘러간다. 푸른 숲 사이로 가끔씩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곳이면 한곳 어김없이 절경이 빚어졌다. 가장 알려진 곳은 역시 요선암과 요선정이다. 주천면 북쪽 수주면에 있다.



요선암은 법흥리 계곡과 두산리 계곡에서 각각 흐르던 물이 합쳐져 주천면 쪽으로 휘돌아 흘러가는 접점이다. 갑자기 넓어지며 뒤틀린 강폭을 온통 가로질러 수백개의 만질만질한 화강암 바위들이 군락을 이뤘다. 요선암의 풍광은 바로 옆 천길 절벽에 자리잡은 요선정에서 내려봐야 제 맛이 난다. 1913년 인근 주민들이 계를 부어 만들었다. 정자 옆 고려시대 만들어진 거대한 마애석불 뒤로 돌아가면 아찔한 절벽이다. 회색 바위 위로 푸른 강물이 넘실대는 모습이 경이롭기 그지없다. ‘아’ 하는 감탄도 잠깐, 현기증에 다리가 떨려와 돌아서고 말았다. 요선암을 경계로 나뉜 마을 이름은 각각 무릉리와 도원리. 도연명이 밟았던 무릉도원이 예 있었던 게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요선암 물색은 진한 녹색이었다. 물이 너무 녹색을 띤 건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요선정 아래 미륵사의 한 50대 보살님은 “물이 마른 데다 축사며 가든이 잔뜩 들어서서 그렇다”고 했다. 이곳에서 한참 올라간 법흥리 계곡만은 물이 많지도 않았지만 흐리지도 않고 깨끗했다.

노을지는 호수, 그 황홀한 장관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남하하는 여정은 어느덧 청풍호반으로 이어졌다. 다시 신림 나들목으로 들어와 남제천 나들목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나들목에서 82번 국도를 타고 우회전해 금성면에서 597번 지방도를 탔다. 5분가량 달렸을까. 길 오른쪽으로 호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푸르른 물색은 이후 2시간 가까이 쉼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막 호수에 접어들었다고 느낀 순간 너무나도 기묘한 형상이 시각을 자극했다. 거대한 기암괴석 바위산(금월봉)이 갑자기 돌출한 것이다. 토석채취 공사 도중 발견된 것이라는데, 주위 경관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마치 거대한 할리우드 세트장을 보는 듯한 이물감이 들었다. 그래도 발굴회사 쪽은 금강산 1만2천봉의 축소판이라며 주차장까지 마련해놓고 사람들을 끌고 있다.

청풍호는 충주호를 제천 쪽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워낙 거대한 호수라서 충주·단양·제천에 두루 걸쳐있다 보니,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청풍호 끝자락을 가로지르는 청풍대교에 도착할 무렵 어느새 해는 호수 너머 산 뒤쪽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청풍교 입구 쪽에 잠시 차를 멈추고 낙조를 지켜본다. 해가 마지막으로 물 표면에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어놓았다. 그 불기둥을 가르며 마지막 유람선이 떠가고 있었다.

청풍대교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다리를 건너 597번 도로를 계속 타면 청풍문화재단지에 들러볼 수 있다. 다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655번 도로를 타고 아름다운 호숫가의 풍광을 감상하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쪽을 택했다. 옥순대교에 이르러 마침내 호수는 한 자락의 끝을 드러냈다. 돌산과 바위 안에서 호수는 삼면이 갇히고 말았다. 그 호수 안에는 다시 기암절벽의 그림자가 담겨 떠다니고 있었다. 다리 위로는 10분이 넘도록 차 한대 사람 한명 지나지 않았다. 촛대처럼 생긴 바위봉우리 옆으로 하얀 새 한 마리만이 유유히 날아오를 뿐이었다.

중앙고속도로는 역대 고속도로 공사구간 가운데서도 첫손가락 꼽히는 난공사의 결과물이다. 첩첩한 산자락을 터널로 관통했고, 강과 계곡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다. 공사기간 12년, 공사비는 다른 도로보다 훨씬 많은 3조6800억원이다. 단양과 풍기를 연결하는 죽령터널은 4.6k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이 터널이 뚫리며 단양과 풍기는 불과 10분 거리로 가까워졌다. 이전까진 기차도 빙빙 돌아가는 죽령재를 2시간 가까이 차로 오르내려야 했다. 그러나 너무 들떠 과속하면 안 된다. 대구 쪽 출구로 나서자마자 감시카메라가 버티고 선 게 눈에 들어왔다.

산과 계곡은 절을 둘러싸고

풍기 나들목에서 나와 5번 국도를 잠시 거쳐 36번 국도로 들어섰다. 청량산도립공원과 불영계곡이 다 이 길을 따라 있다. 먼저 불영계곡을 향했다. 2시간가량 울진 쪽으로 쉼없이 갔다. 영주시내가 나왔다 사라지고 봉화의 아기자기한 산골 풍경이 양 옆으로 펼쳐졌다. 울진에 들어서자 갑자기 골짜기가 깊어졌다. 이윽고 불영사 표지판이 나오자 다시금 장관이다. 도로 아래로 수백길 낭떠러지가 깊게 패어 있었다. 물은 수백만년의 시간 동안 돌산의 약한 부분만을 파고들어 산허리를 돌아가는 거대한 바위 계곡을 만들어냈다. 인간은 그 계곡 위로 얕게 아스팔트를 깔아 이렇게 여름 쉴 곳을 찾아 굴러다니고 있다.

계곡은 깊을수록 아름답다. 물은 깎아지른 절벽 또는 바위와 어우러질 때 더욱 빛난다. 혼자서는 아무리 깊고 푸르러도 아름답다는 탄성까지 자아내진 못한다. 불영사 앞뒤로 계곡의 길이는 15km에 이른다. 다행히 깊고 아름다운 곳엔 출입구를 만들어두지 않았다. 다만 차댈 곳과 전망대를 몇곳 만들어 조망, 곧 새처럼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했다. 불영사 앞 계곡엔 목책과 철제 펜스로 경계를 지었다. 다른 곳은 워낙 깊어 사람들이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발이라도 담그고 싶다면 야트막한 개울가 자갈밭이 좋겠다. 불영사 주차장 앞 주인아저씨는 “깊은 곳을 열어놓으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고 가도 치우지 못한다”며 “얕은 곳에 텐트치고 지내는 건 괜찮다”고 말했다.

불영사는 주차장에 차를 두고 산길을 따라 10여분쯤 걸어가면 나온다. 숲을 지나 계곡을 거치며 서늘해진 바람이 뜨거운 한낮의 열기를 맞춤하게 식혀준다.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원래 구룡사로 불리다 절 근처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경내 연못에 비친다고 해 불영사(佛影寺)로 바뀌었다. 대웅보전(보물 1201호)과 웅진전(보물 730호), 후불탱화(보물 1272호) 등 빼어난 사적이 여럿 남아 있다.

깊고 그윽한 청량산에 올라



봉화 청량산은 깊고 그윽했다. 입구와 안쪽의 등산로 시작 지점에 주차장이 있다. 일단 주차장을 벗어나면 왼쪽에 가파른 비탈길이 기다리고 있다. ‘차량 절대 오르지 못함’ 표지판을 따라 약 30분을 걸어 올라가면 청량사가 나온다. 인근 주유소 직원은 “비탈길 중간지점까진 시멘트 포장이 돼 있으니 운전에 자신 있다면 한번 올라가보라”고 했다. 그 말을 권유 아닌 경고로 알아들었어야 할 것을. 60도로 기울어 산허리를 휘휘 도는 길을 지프도 아닌 승용차로 올라가느라 간이 다 졸아들 지경이었다. 한대밖에 지나가지 못할 길이라 중간에서 차를 돌릴 수도 없었다. 그러고도 중간부터는 비포장길을 쉬엄쉬엄 걸어올라가야 했다.

절의 터는 참 좁디좁았다. 좁은 공간 탓에 계단논처럼 층층이 땅을 다져 촘촘히 필요한 건물들을 지어올렸다고 한다. 침목을 대 만든 절입구 계단을 올라서다 보면 범종각 옆쪽으로 샘물이 하나 있어 나그네를 반긴다. 지붕에서 이어진 대나무 관에서 맑고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한숨 돌리고 고개 들어보니 비로소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감동이 밀려왔다. 거대한 열두개의 바위 봉우리들이 주위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다. 그 한가운데 외롭게 자리잡은 자그만 터 위에 절은 어렵사리 꼭꼭 숨어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본사에서 10분 거리에 응진전이 있다. 오솔길을 따라 그리로 가노라면 전망대격인 어풍대가 나온다. 절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바위 봉우리와 어우러진 절의 아름다움은 이곳에서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절 왼쪽 봉우리부터 산그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천천히 검은 그림자가 하나둘 봉우리들을 덮어가고 있었다.

어풍대 가는 길목에 오산당이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사위를 친히 가르치던 곳이라고 한다. 오산당 옆 ‘산꾼의 집’에는 청량산의 예인 이대실(59)씨가 산다. 지난 1990년 가족과 전 재산을 모두 산 아래 두고 홀로 이곳에 올라와 벌써 12년째다. 중학교 때 산을 타기 시작해 그동안 2천여 산봉우리를 섭렵했고, 해외원정만 27번을 다녀왔다. 등산을 시작하며 처음 올랐던 청량산의 매력에 끌려 폐허가 된 나무집을 혼자 힘으로 고쳐짓다시피 했다. “혼자서 80kg짜리 쌀포대를 지고 48번이나 산길을 오르내렸다”고 그는 돌이켰다. 이곳에 오기 전엔 경북 영양에서 제일 큰 예식장을 경영했다. 그걸 부인과 자녀들에게 다 물려주고 왔단다. 집 앞을 오가는 이들은 누구나 그가 만든 9가지 약초차를 마실 수 있다. 물론 공짜다. 입산 뒤 도예를 공부해 지금은 당당히 작가로 인정받는다. 산처럼, 바람처럼 그는 늘 그곳에 서 있을 모양이다.

유교문화의 전통이 숨쉬고 있다



산과 절과 작별하고 이윽고 발길은 안동으로 이어진다. 안동은 꼬장꼬장한 영남 유생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다. 영남권 유교문화가 이곳에서 활짝 피어났다. 안동지역 곳곳에 자리잡은 서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퇴계 선생이 창건한 도산서원이다. 서안동 나들목에서 34번국도로 나와 다시 35번국도로 갈아타고 청량산 쪽으로 달려가다 보면 표지판이 나온다. 도산서원 앞은 낙동강이 살짝 굽어 흐르며 배후에 꽤 널찍한 들판을 이루어놓았다. 퇴계는 서원 앞 길가에 천광운영대를 만들어두고 학문에 정진하는 가운데서도 늘 그 풍광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다졌다고 한다. 퇴계가 머물던 방은 결코 넓지 않다. 사람 한명 몸을 뉘였다 앉기에 부족함이 없을 딱 그만큼이다. 그가 추구했던 이상은 현실의 풍랑 속에 그 의미가 얼마나 바램 없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몸이 살아 실천했던 꼿꼿한 기풍은 건물의 남은 자태에 여전히 배어 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것이 후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쓸어내린다.

다시 길은 하회마을로 향했다. 서안동 나들목에서 34번국도를 타고 예천 쪽으로 간다. 도산서원 가는 길의 반대쪽이다. 가다가 안교사거리에서 916번 지방도로를 만나 타고가면 된다. 곳곳에 표지판이 있다.

하회마을은 이름 그대로 강(河)이 돌아나가는(回) 마을이다. 물돌이동이다. 하회마을을 감싸고 한 바퀴 돌아흐른 낙동강물이 다시 반대쪽 마을까지 한 바퀴 더 돌아서 빠져나간다. 전체적으론 태극형상을 그리며 흐른다. 풍산유씨 집성촌으로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 등 많은 관료와 학자를 배출했다. 입장료 1600원을 내고 들어간 마을의 모습은 영락없이 조선조 옛 모습 그대로다. 북촌댁과 남촌댁 등 유수한 양반가문의 솟을대문 기와집은 물론 옛 상민들의 초가집도 그대로 남아 있다. 민속촌과 다른 점은 이곳에선 사람들이 지금도 직접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옛 모습으로 분장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지금 그대로 현대의 삶을 산다. 다만 고가와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69호) 등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면면히 지켜오고 있다. 5∼10월 매주 토·일요일 오후 3시에 별신굿 탈놀이 공연도 벌어진다.

그러나 하회마을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하회마을 쪽이 아니라 강 건너편 부용대다. 하회마을 쪽에서 보면 강 건너편에 홀로 돌출한 퇴적암 절벽이다. 이곳에선 태극자를 그리는 낙동강의 들고 남을 빠짐없이 볼 수 있다. 916번도로를 예천방향으로 3∼4분 가다 파출소 앞에서 일직가는 5번도로로 바꿔탄다. 제방을 지나 좌회전해 화천서원 앞에서 산길을 올라가면 된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하회마을을 찾는 사람들 중 이곳을 들르는 이는 손꼽을 정도다.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이 한눈에



하회마을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방문 이래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최근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마을은 집집이 방 한두칸을 민박용으로 내놓고 있다. 민속기념품을 파는 가게나 헛제사밥이나 전통차 등 우리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도 여럿이다. 하지만 홍수 때의 낙동강 급류만큼이나 빠른 변화의 물살을 온전히 비켜가진 못한 듯하다. 2천여명의 졸업생을 낸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는 지난 91년 문을 닫았다. 한 주민은 “집집마다 노인 한두분만 남아 있기는 이곳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부용대 위에선 지금은 건물마저 사라진 옛 초등학교 터의 휑한 모습이 전통가옥들 사이로 선명하게 들어왔다.

다시 길을 떠나 곧게 뻗은 중앙고속도로에 올랐다. 차창 유리를 통해 쏟아지는 여름 햇살이 여전히 강렬했다. 곧 반소매 팔등이 따갑게 달아왔다. 자외선 차단크림을 잊지 말고 챙겨갈 일이다.

글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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