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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2.06.12(수) 제4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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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화를 즐겨라! 젊음 유지한다는 호르몬의 생명연장 효과 미미… 장수신화 깨뜨리고 성공적 노화에 다가서야
중소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박아무개(45)씨. 그는 ‘시간의 선물’이라는 노화도 대처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중늙은이의 기력을 가지고 있었다. 팔굽혀펴기 다섯번이 힘겨웠고, 하는 일 없이도 감당하기 힘든 피로를 느꼈다. 지금은 2년 전의 그가 아니다. 팔굽혀펴기 30번은 식은 죽 먹기로 한다. 부부생활도 두렵지 않다. 미국의 노화방지 클리닉을 소개한 방송 프로그램이 출발점이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전화도 몇 차례 걸었다. 마침 서울지부가 설립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종합노화테스트에서 그의 생물학적 나이는 무려 70살이 넘었다. 곧바로 ‘청춘의 샘물’이라고 하는 종합 호르몬 요법을 처방받았다.
근력 강화해도 노화는 막을 수 없어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알약으로 된 호르몬제를 복용한다. 샤워를 마치면 남성 호르몬을 겨드랑이에 바른다. 성장 호르몬은 자신이 직접 주사를 놓는다. 국내에 수입이 금지된 약품도 있었다. 수소문 끝에 ‘자가 치료용’으로 수입을 허가받았다. 호르몬제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말도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실제로 아직까지 특별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때로 주위 사람이 피로를 호소하면 주저 없이 호르몬 요법을 추천할 정도다. 그는 호르몬제가 체력을 길러주면서 생체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믿는다. 노화를 방지한다는 제품들은 정말로 생명을 연장해주는 것일까? 일부에서는 첨단의학의 성과로 노화방지와 활력증진, 성인병 예방 등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노화를 인간의 힘으로 제어하려는 팜스프링스장수의학연구소 연구자들을 만난다면, 생체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노화방지 클리닉에서는 호르몬 요법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10년 정도 젊게 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각종 호르몬이 ‘현대판 불로초’로 거듭난 셈이다. 물론 호르몬 검사비 100여만원에 6개월 프로그램 참가비 1800만원을 ‘젊음의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호르몬 요법은 지속적으로 치료받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치료를 중단하면 복용기간의 절반쯤 지난 뒤 이전의 생물학적 나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노화방지 클리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은 150여명이나 된다. 1년에 4천만원 가까운 비용이 드는 프로그램의 주요 고객은 40, 50대 장년층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수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내 건강보조식품 시장은 1조원을 웃돈다. 노화방지제가 황금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호르몬 요법은 세대를 초월해 시장을 넓히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족해지는 여러 호르몬을 20살 수준에 맞게 보충하는 것이다. 종합 호르몬 요법의 특허가 있는 팜스프링스장수의학연구소는 DHEA, 프레그네놀론,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 갑상선 호르몬, 멜라토닌, 인체성장 호르몬(HGH) 등 8가지 호르몬을 사용한다. 가장 강력한 효능을 발휘하는 것은 HGH. 인체라는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 노릇을 하는 호르몬이다. 고가의 호르몬으로 저성장증 어린이들에게 주로 투여하던 HGH는 근래에 유전공학적으로 대량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제약업체들이 HGH의 수요처를 넓히기 위해 노화방지제로 둔갑시켰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이미 갖가지 노화방지제가 젊음을 붙들려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호르몬 요법은 물론 피부 근육을 되살리는 보톡스 주사, 침과 전극을 이용해 자율신경을 자극하는 ‘동서협진’(東西協診) 등도 인기를 누린다. ‘안티 에이징’(anti-ageing)이 거대산업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가 몸을 가꾸는 시기로 비누·향수 제품이 인기였다면, 1990년대는 각종 건강식품이 호황을 누렸다. 이제는 노화를 지연시키는 제품이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화 관련제품이 각광받는 ‘테마산업’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지구촌이 노령인구로 뒤덮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생물학적 나이 둘러싼 오해와 진실
노화에 대한 두려움은 세대를 초월해 모든 사람을 짓누른다.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꺼림칙하다 못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노화방지 클리닉은 온갖 첨단기법으로 나이를 짓누른다. 컴퓨터는 생물학적 기능이 마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프로 보여주며 ‘위협’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컴퓨터 테스트에서 혈액검사, 호르몬 레벨검사, 근력검사 등을 한다.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으로선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언론은 ‘호르몬 치료를 왜 망설이냐’, ‘회춘수술을 받으셨나요’ 하며 호들갑을 떤다. ‘젊음의 욕망’과 ‘회춘 산업’의 환상적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다. 얼마 전 30대 중반의 회사원 김아무개씨는 노화방지 클리닉에 다녀왔다. 피로가 회복되지 않고 건강에 자신을 잃어가는 때문이었다. 몇 가지 테스트에 따른 생물학적 나이는 자신의 주민등록증에 나타난 나이보다 무려 15살이나 많았다. 흡연으로 폐활량이 줄어들고, 기억력이 감퇴된 탓이었다. 하지만 노화방지제 사용을 권유받으면서 상술에 놀아나는 것은 아닌지 찜찜했다. 누구나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노화라 해도 인위적인 방법으로 막는 게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은 것이다. 답은 무엇인가? 인간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한다는 사람들은 노화가 하나의 질병일 뿐이라고 말한다. 팜스프링스 서울 클리닉 정누시아 원장도 그렇게 믿고 있다. “노화는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생물학적 재앙이 아니다. 텔로미어 가설에 바탕을 둔 종합 호르몬 요법으로 세포를 재생하는 게 가능하다. 과다 복용하면 여드름이 생기거나 전립선 비대 등이 나타날 수 있지만 중증의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호르몬 처방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근력이 강화되고 피부의 탄력이 되살아나면서 생체기능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나아가 성인병을 예방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머지않아 약물로 노화를 지연시키는 ‘수명 판매’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값비싼 의약품을 구입하지 않고도 생물학적 나이를 회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올바른 식생활과 꾸준한 운동은 현대판 불로초보다도 탁월한 효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노화연구자들은 인간 수명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목표는 뚜렷하다. 노화의 근원을 차단하는 것. 현재 시판되는 노화방지제는 생명연장 연구의 직접적인 산물은 아니다. 몇 가지 가설에서 나온 단서에 기초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생명현상의 본질에 다가서기보다는 외곽을 강화하는 방식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각종 불치병을 정복해 생명연장을 꾀하는 사람도 있다.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대로 작동하던 조직과 기관이라는 소프트웨어들이 오작동하는 것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잘못돼 하드웨어가 망가지는 것을 막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현대의학도 아직까지 손상되면 죽음에 이르는 뇌와 심장·폐·간·신장 등을 재생하지는 못한다. 설령 장기이식을 받더라도 모든 질병을 이긴다는 것과 노화를 정복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까지 만성적 질환에 대한 의학적 진보가 이루어졌음에도 노화를 차단하지 못하는 게 이를 증명한다.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대략 25∼ 27살을 정점으로 생물학적 기능이 차츰 떨어진다. 이것을 인위적으로 복원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희의료원 노인건강클리닉 원장원 교수는 “노화의 수수께끼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연장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화방지제가 생체 기능을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총체적인 인체의 부실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노화방지제가 ‘생명연장의 연금술’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많은 연구자들은 과학의 힘으로 노화를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 그것도 극단적으로 수명을 늘려 ‘100살 청춘’을 이루는 것을 거의 신념으로 받아들인다. 노화연구자들은 동물실험의 모델을 인간에 적용하려고 한다. 미국 어빈 캘리포니아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마이클 로즈는 생존력이 매우 강한 초파리 무리를 만들었다. 특별한 방법으로 초파리의 수명을 늘린 것이다. 그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선택적 번식’을 흉내냈다. 알을 늦게 낳는 과일파리 암컷들만 선택해 대를 이어가도록 했다. 우생학적으로 모계를 고른 것이다. 그렇게 10여 세대에 걸쳐 모계를 이어간 뒤 태어난 초파리는 야생의 것보다 2, 3배 정도 수명이 길었다. 생명연장의 ‘비밀의 문’이 열리는 듯했다. 만일 초파리 실험을 사람에 적용하면 ‘장수인간’을 만들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폐경기가 가장 늦은 여성들을 검증해 모계로 선택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 탁월한 모계를 선택해 10세대(250여년) 정도 지나면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장수혈통의 인간이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험실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다. 사람을 실험실에 가둬놓고 200년 이상을 실험해서 결과물을 얻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노화에 관한 수많은 가설이 나왔지만, 노화연구는 여지껏 출발점을 맴돌고 있다. 노화과정을 저지할 수 있다는 어떤 기술이나 도구도 인간에 통하지 않는다. 늙는 사람들은 무수한 가설을 뒤로 하고 아쉽게 생을 마감하게 할 뿐이다. 아주 서서히 노화현상이 진행되기에 교통사고를 대비하듯 한다고 해서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주름지는 피부, 쑤셔대는 관절, 가물가물한 기억력 등을 식생활 개선이나 운동, 호르몬 처방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윤활유를 넣어 젊게 보이도록 할 뿐이다. 생명체의 분자적 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고려대 의대 조경환 교수(가정의학)는 “지금까지 나온 노화방지제에 대한 장기적인 추적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노화는 정상적인 생물학적 과정이기에 인위적인 개입은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다만 병적 노화를 규명해 예방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화와 죽음을 비정상적 신체활동으로 여기기보다는 인간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기본적인 건강을 챙기라는 권고다. 그것이 성공적인 노화에 이르는 길이다.
병적 노화예방에 초점 맞춰야 한다
그렇다고 인간의 최대 수명이 불가항력적인 생물학적 한계는 아니다. 선진국은 지난 20세기 동안 평균수명이 49살에서 76살 안팎으로 크게 늘어났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2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남녀 평균수명은 33.7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75.5살로 무려 42년이나 늘어났다. 이렇듯 평균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공중위생과 건강보건의 향상과 의료기술이 뒷받침된 까닭이다. 지금도 의학의 혁명적인 발전이 이뤄지고 생활방식이 개선되고 있다. 이로 인해 치명적인 질병에 의한 사망률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관절염이나 시각과 청각 상실, 골다공증, 치매처럼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병 역시 병증 발현과 진행이 지연될 것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줄기세포’에 의한 ‘재생의학’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전해도 노화를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많은 노화연구자들의 의견이다. 비타민 섭취를 늘리고 호르몬을 투여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평균수명 100살 운운하는 것은 상업적 논리에 충실한 장밋빛 전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노화는 마땅한 제동장치를 갖추지 않은 상태로 ‘주행 중’이다.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노인생화학)는 “수많은 생체들이 작용하면서 이뤄지는 노화를 한알의 약으로 중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노화연구는 인간의 생명연장을 목표로 할 게 아니라 활동에 제약받지 않으며 노년을 보내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말하며 “비생산적인 수명연장은 개인적으로 불행할 야기할 수 있다. 적절한 영양과 운동이 동반되지 않는 장수는 오히려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지구상에는 자기 집단의 수가 증가하면 자살을 통해 전체를 보전하는 생명체도 있다. 어떤 생명체는 일생 동안 단 한번 교배해 자손을 생성한 뒤 자식의 먹이가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이 생명연장의 술수를 부리지 않는 것은 비단 인간보다 하등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 약한 개체가 죽어 자리를 비워줘야 새로운 개체들이 출연한다. 후세들은 다시 새로운 생태적 변화에 대처하면서 종을 유지해 나간다.
장수는 생태계 파괴… 생명은 경외의 대상
그런 의미에서 세종대학교 황성빈 교수(분자생물학)의 지적은 새겨둘 만하다. “인간은 유전자의 연속성, 물질의 순환이라는 형태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과도한 생명연장을 꿈꾼다면 지구 생태계에서 종의 평형이 깨져 생태학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 노화를 인위적으로 조절한다 해도 절대수명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다른 질병을 유발해 병상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생명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어야 한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노화란 젊은 시절의 원기 왕성함에 대한 대가를 노년에 치르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노화에 대한 연구는 수명연장이 아니라 갖가지 퇴행성 질병을 지연시키거나 예방해 삶의 질을 높이는 구실을 해야 할 것이다. 생명체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자연선택’이라는 흐름을 바꾸려는 것이 유전자의 속성을 무시한 오만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물론 아직까지 노화를 지연해 생명을 연장하는 묘약은 없다. 청춘을 보장한다는 약물도 인체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활성화할 뿐이다. 그럼에도 생명연장이라는 수식어로 젊음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게 문제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름다운 선택일 수 있다.
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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