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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한 마리 몰고 가세요∼ 애견열풍 속 관련산업 폭발적 팽창… 독신남녀·분가노인 늘면서 어른들이 주고객으로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이호준(31)씨는 지난 5월 말 우연히 인근 애견매장에 들렀다가 마음에 드는 개를 발견했다. 눈 위에서 썰매 끄는 데 사용됐던 알래스카 맬러뮤트로, 생후 4개월 된 암컷이었다. 평소 개를 좋아했던 데다 여자친구와 회사 동료 등 주위 사람들이 애견을 키우는 모습을 봐온 터라 180만원이란 거금을 주고 맬러뮤트를 사들였다. 가정에서 키우기엔 부담스러운 대형견이라 걱정도 됐지만 이웃에 개 키우는 집들이 많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갖고 결정했다.
이제는 눈치 안 보고 키운다
“180만원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요. 하지만 개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에요. 새로운 가족을 한명 들인다고 생각하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닙니다.” 이씨는 새로 사들인 맬러뮤트를 주저 없이 가족이라고 얘기했다. 사람과 다름없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이다. 이씨가 개에게 쏟는 정성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일 빗질을 해주고, 간식 주고, 놀아주고, 양재천변으로 산책도 나간다. 어머니 또한 혼자 적적하게 지내던 차에 맬러뮤트가 반갑기 그지없다는 표정이다. 지난해 같이 살던 형이 결혼해 분가한 뒤 적적했던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성남에서 혼자 사는 이영란(33)씨는 개에 대한 애정이 훨씬 각별하다. 지난 5월 요크셔테리어 수컷을 100만원 주고 사들인 뒤 애지중지하면서 키우고 있다. “혼자 생활한 지 5년 됐는데 여기저기서 키우는 것 보니까 나도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산책을 하더라도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좋잖아요.” 개 때문에 1주일에 3∼4번이던 저녁 약속도 1번으로 줄였다. 같이 안 놀아주면 의기소침해하는 ‘희동이’가 안쓰러워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털에 윤기가 나도록 하는 액을 발라주고, 귀 청소해주고, 이도 닦아준다. 밥맛이 없어 먹는 게 시원치 않으면 튜브 형태로 된 영양제를 먹인다. 아이 한명 키우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만약 결혼할 남자가 개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요? 그럼 남자를 버려야지요. 호호.” 이들뿐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웬만한 사람은 애견을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 특히 아파트촌 인근 공원이나 개천변에는 저녁 때가 되면 애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넘쳐난다. 재롱피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도 강아지 한 마리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애견이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아파트 안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몇년 전만 해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눈치보는 사람이 없다. 키우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또 애견에 대한 관리가 세심해진 것도 아파트촌에서의 애견 확산에 일조했다. 이영란씨는 “예전과 달리 관리를 잘하기 때문에 이웃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별로 없고 눈치볼 일도 없다”고 말했다. 애견을 둘러싼 환경과 풍속도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강아지 가격, 1년새 50% 뛰어
이처럼 애견 열풍이 부는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방송사들의 애견 프로그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와우동물천하> <주주클럽> 등 애견과 관련된 고정 프로가 생겨나고 토크쇼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이 애견을 안고 출연하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일반인들의 수요 증가를 부채질했다. 가수 핑클과 베이비복스는 올해 애견협회 행사에 포스터 모델로 나서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방송이 촉발시킨 애견 열풍의 뒤에는 그에 걸맞은 사회적 변화가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독신 남녀와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노인들이 증가했고, 이들의 관심이 애견에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분당, 일산 등 신도시에서는 나이 지긋한 50∼60대가 애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최근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 대신 개를 기르는 신혼부부들도 있다. 서울 충무로 세일애견 주시탁 사장은 “최근 고객들 가운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신혼부부가 많다”고 전했다. 한국애견협회 최지용 이사는 “애견산업은 대체로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면서 크게 성장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한국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접근하면서 애견산업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애견을 찾는 계층도 자연스럽게 어린이에서 어른들로 바뀌고 있다. 예전처럼 아이들이 졸라서 사주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외로움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애견을 기르는 것이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애들 키우는 데 바쁜 사람들은 개 키우기 힘들어요. 아파트 안에서 제대로 키우려면 애 하나 더 키우는 것과 같은 정성이 필요하거든요.”
“강아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양적 확대 못지않게 질적인 변화의 움직임도 나타난다. 그동안 높은 폐사율 등으로 불신을 받아온 충무로 애견시장이 위생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애견시장에서 가장 먼저 고급화의 기치를 들고 나선 업체는 서울 대치동에 있는 ‘위니도기’다. “강아지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를 내걸고 지난 2월 출범한 이 회사는 LG화재에 애완견지킴이보험을 들어 판매(분양) 뒤 최장 1년까지 애견의 품질을 보증하는 판매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판매 뒤 3개월 이내에 질병이 발생하거나 1년 이내에 일반사고로 사망한 때는 동종의 애완견으로 100% 보상해준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홍역·장염·곰팡이성피부병 등 10여종의 검사를 마친 뒤 ○○○용 마이크로칩을 삽입한 상태에서 판매한다. 물론 품질을 보증하는 만큼 가격은 약간 비싸다. 이는 물론 충무로로 대표되던 기존 애견시장에 대한 불신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분양할 때 3개월 이상 면역성이 형성된 애견을 분양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30∼50일의 애견을 분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게다가 예방접종 등 위생관리 미비 등으로 판매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리는 등 높은 폐사율을 보여왔다. 위니도기와 보험계약을 맺은 LG화재 박정구 대리는 “2000년 말 동물보험을 상품으로 내놨으나 애견 폐사율이 너무 높아 2∼3달 만에 중단해버렸다”며 “당시 사고율이 300∼400%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사고율 300∼400%는 들어오는 보험료 수입에 비해 애견의 질병이나 사망으로 인해 나가는 보험금이 3∼4배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니도기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를 내걸고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고급화 전략을 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니도기는 단지 위생관리 강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애견의 탄생에서 장례까지 전 과정을 책임진다.
예방접종 맞아야 판매 가능
이러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충무로 애견시장에도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번식장→경매장→애견센터로 이어지는 유통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경매장에서의 위생관리가 강화되는 추세다. 경매장은 생후 30∼50일 된 강아지를 소매상인 애견센터에 공급하는 도매상 역할을 하는 곳. 이전에는 아무 개나 데려다놓고 경매를 했으나 올해부터는 기본적인 예방주사를 맞힌 개들만 경매에 부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애견에 대한 이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과거에 마당에 풀어놓고 대충 키우던 방식을 생각한다면 아예 개를 키우지 말라는 것이다. 애견협회 최지용 이사는 “중요한 것은 얼마짜리 개를 사느냐가 아니라 산 뒤에 어떻게 키우느냐”라면서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가족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일정한 훈련과 위생관리는 물론 산책과 놀아주기 등 자기 생활의 일부를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행에 따른 충동적인 구매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개에 대한 애정과 정성어린 보살핌이 뒤따르지 않으면 없으면 시작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얘기다. 이는 최 이사만의 충고가 아니다. “양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애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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