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은 머지않아 ‘100살 청춘’을 보장할 기세다. 태어나서 일정 기간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생명체의 규칙. 그것을 파괴한다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생물시계’(Biological clock)의 작동을 멈추게 하거나 거꾸로 가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회춘시술’로 몸을 통째로 바꾸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러시’가 노화방지 산업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나 가능한 초파리와 선충류 등의 수명연장 효과를 인간에게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 ‘생명체는 왜 늙는가’와 ‘그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생물시계를 조절할 ‘비방’은 인간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전히 공상과학(SF)영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화연구자들은 SF를 찍고 있다

사진/ 아직까지 노화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쥐 실험을 통해 노화 관련 유전자를 연구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이미 노화의 원인에 대한 이론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먼저 예정설은 유전정보에 이미 수록된 프로그램대로 반드시 늙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포가 세포 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고장’을 수선할 능력을 일부 상실한다는 ‘오류축적 이론’이 대표적이다.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유전자 프로그램의 작동이 정지되거나 기능이 떨어져서 늙는다는 ‘유전 프로그램 활성화론’도 있다. 이런 가설은 서로 보완적이다. 오류가 쌓이면서 유전적 프로그램 작동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의 노화이론이 환경설이다(상자기사 참조). 노화연구자들은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생명현상의 엔진과 연료를 업그레이드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화방지제는 각종 ‘윤활유’로 작동을 원할하게 하는 정도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노화이론은 ‘세포 수명 가설’이다. 염색체 끝부분에 매달려 있는 유전자 꼬리 ‘텔로미어’(Telomere)를 주목한 결과다. 미국의 생물학자 레너드 헤이플릭은 30여년 전에 텔로미어가 항상 조금씩 짧아지는 것을 관찰했다. 텔로미어는 마치 구두끈의 끝에 댄 플라스틱 단 구실을 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라는 ‘지하철 패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진다. 대개 평생 100번가량 분열하는 ‘정액권’을 가지고 있다. 일정한 횟수의 정액권을 모두 사용하면 세포가 노화에 접어드는 것으로 추측된다. 텔로미어가 세포의 수명을 판단할 수 있는 일종의 생체시계인 셈이다.

생명체의 주행거리를 보여주는 텔로미어. 만일 세포가 정액권 대신 ‘프리패스’를 가지고 있다면 노화를 극복하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노화연구자들은 텔로미어라는 생명현상의 퓨즈를 마모시키는 화학적 연소를 차단하려고 한다. 세포분열을 해도 텔로미어가 소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텔로미어의 연소와 관련된 물질(효소)을 찾아내기도 했다. 바로 ‘텔로머라제’(telomerase)이다. 텔로머라제는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는다. 예컨대 생식세포(정자와 난자)는 텔로머라제를 생성, 분열할 때 끝이 짧아지지 않는다. 일부 노화연구자들은 모든 세포의 텔로머라제 생성을 도모하면 세포가 노화하는 것을 막을 것으로 예측한다. 각종 호르몬으로 노화를 지연한다는 것도 텔로미어 가설을 따르고 있다.

정말로 호르몬이 텔로미어 복구에 기여하는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모든 세포가 똑같은 노화경로를 밟지 않기 때문이다. 뇌 근육세포만 해도 분열을 하지 않는데도 노화과정을 밟는다. 게다가 호르몬이 생리적 기능을 활성화하면서 생리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규명되지 않았다. 분자 수준의 유전자를 얼마든지 손상시킨다는 지적이 단적인 예다. 텔로머라제가 반드시 인체에 이로운 것도 아니다. 텔로머라제는 생식세포는 물론 혈액세포가 될 근원세포, 암세포 등에서도 발견된다. 노화를 늦추려다가 오히려 건강한 세포마저 끝없이 분열하는 암세포로 바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만일 텔로머라제를 없애면 노화가 오는 대신 암세포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동물실험에서 텔로머라제를 없앴을 때 노화와 암이 동시에 나타나 텔로미어 이론은 최근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텔로머라제의 기능을 처음부터 다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세포의 대사를 느리게 하는 방법도 노화방지에 적용된다. 세포가 영양분을 섭취해 이용하는 과정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대사과정이 더디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포분열 수가 줄어들고 반대로 생존기간은 늘어난다. 실제로 열량 섭취율이 정상치보다 30% 낮은 쥐는 수명이 30∼40% 연장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동물에게 열량 섭취를 제한하면 가장 먼저 체온이 섭씨 1℃도 정도 내려간다. 체온이 내려가면 대사활동이 둔화되고 음식물의 분해속도도 느려진다. 적게 먹은 만큼 음식물의 연소활동 역시 감소하는 것이다. 적게 먹어야 오래 산다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이 같은 실험 결과를 사람에 그대로 적용하면 생명연장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하루에 1400㎈ 정도만 섭취하면 수명을 30년이나 연장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열량 섭취율의 절반 아래로 줄여야 한다. 음식물 섭취 부족을 만회하려면 생명체는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 먼저 생체작동 시스템을 성장 위주(growth mode)에서 생존 위주(survival mode)로 바꿔야 한다. 열량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활동을 자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겨우 생존할 정도의 열량만으로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명 유전자에 수천개의 유전자 개입

사진/ 채식 위주의 식단은 인체의 '분자 깡패'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다. (박승화 기자)

최근 유전학자들은 노화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수명 유전자’를 찾고 있다. 이미 사람의 노화를 유도하는 몇몇 유전자의 염색체 위치를 알아내기도 했다. 정상으로 태어났다가 20대 이후에 급격히 노화가 이뤄져 심장병, 동맥경화증 등으로 죽는 ‘워너 증후군‘(Warner’s syndrome), 비슷한 증상의 질병으로 좀더 일찍 노화가 진행되는 ‘프로게린’(progerin) 등은 노화 관련 유전자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런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아내 정상적인 사람에서 없애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찾기만 한다면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 넘지 못할 산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동물실험에서 밝혀진 수명 유전자들의 구실은 미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간 유전체 지도가 완성된 지금,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다. 인간 유전자 하나하나의 기능을 따지려면 앞으로 몇십년이 걸릴지 모른다. 설령 하나하나의 기능이 밝혀진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체내에 쌓이는 모든 손상을 막거나 수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노화와 관련된 생명현상만 해도 단지 유전자가 결합돼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설령 단지 몇개의 유전자가 노화과정을 지휘한다고 해도 이를 보조하는 유전자는 수천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럴진대 동물실험에서 몇몇 시계 유전자를 찾았다는 기사에 호들갑떨 필요는 없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