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남성은 신체적으로 여성들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남성들은 타고난 강인한 체질에도 여성보다 훨씬 빨리 삶을 마감한다. 아무리 크고 빠르다 해도 힘의 논리만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신체적으로 연약해 보이는 여성들이 10년 가까이 오래 산다. 우리나라에서 1999년에 태어난 여자아이의 잔여수명은 79.22년으로 남자아이(71.71년)보다 8년가량 수명이 길 것으로 예측된다. 장차 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남자가 23.3%, 여자가 13.0%다. 각종 사고사(외부적 요인)의 확률은 남자가 8.9%로 여자(4.5%)보다 두배가량 높다. 이런 탓에 85살이 넘은 사람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80%에 이른다. 여성들이 신체적으로 남성보다 연약하면서도 남성들보다 장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균수명 8년의 격차는 생물학적 차이

사진/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장수의 기질을 타고났다. 우리나라의 85살 이상 인구에서 여성의 비율이 80%에 육박한다. (박승화 기자)

남녀 사망률의 차이는 복합적인 이유에서 비롯한다. 간단히 말해 남녀의 생리적·유전적 차이에 남성의 나쁜 생활습관이 결합된 탓이다. 선천적 차이에 후천적 습관이 거들면서 틈새가 더욱 벌어지는 것이다. 남성다움은 어쩌면 ‘단명’을 전제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남성이 ‘정소’(精巢)를 거세하면 뇌졸중 발병률이 낮아진다. 거세한 남성에게 여성 호르몬을 투여하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보고도 있다. 고신대학교 의료경영학과 남은우 교수(국제보건학)는 “여성의 장수는 생물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며 사회적·영양학적으로도 여성이 이롭다. 지방질인 여성은 근육질인 남성보다 적은 에너지를 소비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남성이 순식간에 타오르는 장작불이라면 여성은 은은하게 타오르는 숯불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남성의 단명은 생물학적으로 예정된 결과다.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인체에 이로운 구실을 한다. 남성 사망률이 처음으로 치솟는 사춘기에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이 호르몬은 리비도뿐 아니라 공격성과 경쟁심 등에 영향을 끼쳐 남성을 위기로 내몬다. 게다가 악성 콜레스테롤인 저밀도지방단백(LDL) 수치를 높이고 혈당 수치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이로 인해 남성은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심장질환에 시달리기 일쑤다. 뇌졸중이나 중풍 등의 발작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적 기질을 갖는 트랜스젠더 MTF(Male to Female)는 상대적으로 생존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호르몬 치료를 통해 인체에 해로운 남성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인체에 이롭다. 성 호르몬이 남성에겐 독약에 가깝고 여성에겐 보약인 셈이다. 나쁜 LDL은 낮추고, 좋은 HDL은 높여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한다. 에스트로겐은 천연의 산화방지제다. 이 호르몬은 활성산소들이 노화과정에서 인체의 테러리스트 노릇을 하지 않도록 한다.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이 에스트로겐을 복용하면 심장병과 뇌졸중을 막을 수 있고 노인성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에스트로겐을 이용한 알츠하이머병 예방약도 개발되고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혈압이 쉽게 오르지 않고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에 걸릴 위험이 적다. 이는 여성 호르몬이 혈관에 나쁜 콜레스테롤이나 노폐물이 쌓이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생리학적 메커니즘도 생존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한다. 대표적인 게 ‘월경’이다. 월경이 두통이나 요통 등을 동반하고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악화시킨다 해도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 월경은 생명연장의 신비로운 효과를 보인다. 노화와 질병 등에서 여성을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여성들은 월경을 통해 정기적으로 자궁의 혈액을 체외로 내보낸다. 이때 체내의 철 성분이 줄어들어 빈혈증세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인체에 유해한 활성산소를 줄여준다. 자유 라디칼이 증가하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 철 성분의 증가로 혈관 내벽이 손상되면서 체내 세포도 치명상을 입는다. 심장병이나 관상동맥 질환 등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않은 것도 수명을 늘리는 이유로 꼽힌다. 생물은 외부로부터 물질을 섭취해 필요한 구성물질로 바꾸며 생명을 유지한다. 이때 생긴 노폐물은 체외로 배출한다. 여성들은 이런 대사과정이 남성보다 더디게 이뤄진다. 실제로 남성들의 라이프사이클이 여성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이뤄진다. 식사량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몬트리올 맥길대학 시그프라이드 헤카이미 유전학연구실은 활동성이 없는 생명체가 오래 산다는 것을 증명했다. 거의 움직이지 않고 먹지 않으면서 대사를 늦춘 선충류가 일반적인 것보다 5배나 오래 살았다. 자동차의 주행거리가 많을수록 부품 소모가 빨라지는 원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신진대사가 활발하면 인체의 조직과 장기 등 부품도 빠르게 소모된다.

여성들은 염색체에서도 좋은 조건을 타고난다. 성이 결정될 때부터 생존의 무기를 덤으로 얻는다. 성 결정 염색체는 근위축증이나 혈우병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여성은 염색체의 고장을 조기에 수습할 수 있다. 여성이 2개의 X염색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X염색체에 비정상적인 유전자가 있더라도 다른 하나의 염색체로 대응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남성은 하나의 X염색체와 Y염색체가 있다. 하나의 염색체가 불안해도 손쓸 방법이 마땅치 않다. 만일 세포분열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그나마 수리할 여력이 있다. 하지만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노화과정에서라면 질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 게놈의 5% 정도가 X염색체 위에 있다. 그래서 남성은 생존에 더욱 취약하다.

여성의 기질 훼손하지 말아야 오래 산다

과학이 발달해도 그 차이를 원천적으로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수명 간격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들어 선진국의 기대수명은 여성이 71%, 남성이 66%씩 높아졌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동안 여성의 기대수명은 오히려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 흡연과 음주 등 남성들의 나쁜 생활습관을 따라 배운 탓이다. 실제로 여성의 흡연이 일반화되면서 폐암으로 인한 여성 사망률이 20여년 전보다 무려 3배나 높아졌다.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것도 한 이유로 지적된다. 이에 비해 남성의 음주와 흡연 등은 줄어들고 있다. 고려대 보건학과 박종순 연구원은 남성들이 흡연과 음주 등의 주요 사인을 제거하면 평균수명이 남자 89.49, 여자 90.08로 비슷해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남성들이 나쁜 생활습관을 바로잡는다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