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6월05일 제412호 

현대차 2세 승계 비밀작전

현대모비스가 회장 외아들 최대주주인 부품회사 흡수… 투자금 수십배 수익 마술적 재테크


사진/ (박승화 기자)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외아들 의선(현대차 전무)씨에게 현대차 그룹을 넘겨주기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재벌 총수들이 자식에게 재산을 대물림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재벌 총수가 아니라면 쓸 수 없는 현란한 재테크 수법이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룹 총수가 별다른 세금부담 없이 재산을 자식에게 넘겨주는 것이 손바닥 뒤집듯 쉽다는 것을 현대차 그룹이 다시 한번 증명하려 한다.

정의선씨 본텍 지분 철저히 숨겨

지난 5월30일 외국인 투자가들은 증권거래소 시장에서 현대차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 주식을 93억원어치나 팔아치웠다. 이로 인해 현대모비스 주가는 2만2500원으로 전날보다 12%나 폭락했다. 지난 4월24일의 연중 최고치 3만5600원에 비하면 그 사이 36.8%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동안 종합주가지수 하락률 10.9%와 비교하면 대폭락이다. 도대체 현대차 그룹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지난 4월17일 현대모비스가 증권거래소에 공시한 내용에 그 해답의 실마리가 숨어 있다.

“당사는 전자사업(자동차 부품) 강화를 위해 본텍 등을 대상으로 인수·합병 등을 다방면으로 검토하였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습니다.”

시장에 나돌던 현대모비스의 본텍 흡수합병설에 대해 현대모비스 쪽은 당시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합병을 추진 중임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실제 본텍 직원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현대모비스에 나가 두 회사의 합병작업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하반기 중, 이르면 6월에는 본텍을 흡수합병할 예정”이라고 합병계획을 최근 공식 확인했다. 바로 여기에 현대차 2세 승계작업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본텍은 지난 97년 기아자동차 부도유예 협약 당시 부도처리된 기아전자가 2000년 4월 이름을 바꾼 회사로, 카오디오와 자동차 전장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인 현대모비스가 본텍을 인수·합병하는 것은 얼핏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지난 98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할 때부터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를 자동차 종합부품업체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에게 두 회사의 합병은 다른 의미가 있다. 의선씨에게 현대차 그룹을 넘겨주는 첫 단추를 꿰는 일이기 때문이다. 본텍의 최대주주는 의선씨다. 합병을 통해 의선씨는 현대차 그룹의 지주회사인 모비스의 2대주주로 등장하게 된다.

감자·증자로 본텍 주식가치 높여


사진/ 현대자동차 정의선 전무(왼쪽)와 김동진 사장. 정몽구 회장이 김동진씨를 사장 자리에 앉힌 것도 경영승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현대차 그룹은 의선씨가 본텍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철저히 숨겨왔다. 비상장사기 때문에 이를 공시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본텍이 지난 3월 공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당사의 주식은 기아차가 39%, 한국로지텍이 30%, 그리고 개인주주가 30%를 갖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본텍의 실질적 지배주주인 이 ‘개인주주’가 누구인지에 대해 현대차와 기아차는 입을 다물었다. 현대차 그룹이 숨기고 싶어한 이 ‘개인주주’가 의선씨다. 본텍의 또 다른 대주주인 한국로지텍도 의선씨가 주인이다. 의선씨가 60%, 몽구 회장이 40%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회사 쪽은 밝혔다. 본텍은 의선씨의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그런 본텍을 흡수합병하는 것은 잘 짜인 각본이 실행되는 것이다. 현대차 그룹은 의선씨에게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넘겨주기 위해 이미 지난해부터 치밀하게 작업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자본금이 100억원이던 본텍은 지난해 1월 200 대 1로 무상감자를 실시해 자본금을 5천만원으로 줄였다. 그리고 이어 지난해 11월20일 의선씨와 한국로지텍 등에 49억5천만원어치의 주식을 액면가로 발행해 넘겨줬다.


사진/ 현대차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가 되면서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큰 폭으로 올랐다. 그러나 본텍과의 합병설이 나돌면서 4월 말부터 급락했다.

감자와 증자 과정은 상식에 어긋난다. 지난 2000년 말 본텍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자본총계는 36억6천여만원이다. 납입자본금이 100억원이기 때문에 64억원의 결손을 보전하기 위해 감자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신규 유상증자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면 3 대 1 감자로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200 대 1로 감자한 것은 의선씨에게 싼값에 본텍 지분을 넘겨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대규모 감자를 실시해 주식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의선씨는 15억원으로 개인지분 30%를 챙겼다. 증자과정에서 가만히 앉아 엄청난 이익도 봤다.

감자 직후 본텍의 주당 순자산은 3만6천원가량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의선씨와 한국로지텍 등이 액면가로 신주를 인수한 뒤인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본텍의 주당 순자산은 2만2300원. 의선씨는 5천원에 주식을 샀으므로, 불과 한달 만에 순자산가치가 4배로 뛴 셈이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의선씨가 본텍의 대주주가 된 지 불과 6개월이 지난 현재 본텍의 주식가치는 훨씬 더 높아져 있다. 현대차 그룹이 본텍의 카오디오를 기아차에 납품하게 함으로써 수익성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연간 40억원에 가까운 경상이익을 내는 회사의 자본금이 50억원에 불과해 주당순이익이 엄청나게 높다. 한국투자신탁증권 송연선 애널리스트는 “본텍의 주당 순자산가치는 2만2376원이지만, 유가증권 인수업무 규정을 준용한 본텍의 본질가치는 주당 20만2950원가량에 이른다”고 말했다. 상장 때 기준가격이 되는 본질가치로 보면 액면가 5천원짜리가 어느새 20만원대로, 즉 40배나 뛴 것이다.

물론 이는 시장에서 당장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와 본텍이 합병을 하면 시장가치로 따져도 의선씨는 애초 투자금의 20배가량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송 애널리스트는 “본질가치로 따져 두 회사가 합병하면 본텍 주주들은 주식 1주당 현대모비스 주식 4.08주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병비율은 앞으로 실사를 거쳐 조정되겠지만, 이런 비율로 합병이 이뤄진다면 의선씨가 본텍에 투자한 15억원은 앞으로 300억원어치의 현대모비스 지분으로 바뀌게 된다. 의선씨가 15억원을 투자해 6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로지텍이 받을 주식까지 합하면 투자수익은 더 늘어난다.

합병하면 2대 주주로 떠올라

현대모비스의 본텍 합병은 의선씨의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의선씨가 현대차 그룹 경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주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의선씨는 본텍의 대주주(30%)인 한국로지텍의 지분 60%도 갖고 있다. 따라서 로지텍이 합병 뒤 받는 지분과 자신이 갖고 있던 본텍의 지분을 합하면 합병 뒤 현대모비스의 의결권 2.7%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개인으로는 8%를 가진 정몽구 회장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그동안 의선씨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경영에 참가해오긴 했지만, 지분은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 그룹 지배구조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 5월30일 외국인들이 현대모비스 주식을 대거 처분한 것은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며 “한국 주식시장의 주가가 실적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것도 상당부분은 이 같은 낡은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부가 재벌개혁에 그 많은 노력을 쏟았음에도, 재벌의 행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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