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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2.05.15(수) 제4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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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우중은 편애 받았나 최규선 발언으로 튀어나온 의혹…김대중 대통령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우를 봐준 이유는?
“규선이, 대우를 도와주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힘을 발휘했네. 김우중씨 같은 사람 없네.” “그 사람(김우중씨)을 돕게.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 것이네. 나, 도움을 많이 받았네.”
곳곳에 드러나는 특별배려의 흔적들
김대중 대통령의 막내아들 홍걸씨를 등에 업고 여러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최규선씨가 김 대통령에게 들은 얘기라며, 검찰 소환 전 녹음해둔 내용 중 일부다. 최씨의 말에는 김 대통령이 김우중 회장을 적극 감싼 이유를 암시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물론 김 대통령이 김우중씨에게 받은 도움이란 게 정치자금을 뜻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주장은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최씨의 발언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자기의 존재과시를 위해 사실을 과장한 흔적도 일부 엿보인다. 최씨는 97년 말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당선자의 특명으로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방한을 성사시키고, 왈리드로 하여금 대우에 거액을 투자하도록 자신이 주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왈리드의 방한은 97년 12월23일에 이뤄졌지만, 대우 쪽은 이미 그 전부터 왈리드의 투자를 유치해왔다. (주)대우는 97년 9월 말 전환사채 5050만달러어치를 왈리드에게 넘기고 추가투자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옛 대우의 한 임원은 “왈리드와의 거래는 김 회장이 독자적으로 추진해온 일”이라며 “김우중 회장이 왈리드를 만나기 위해 최규선씨에게 부탁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과장은 큰 틀에서 보면 사소한 문제다. 97년 말 대통령 선거 뒤 대우사태가 표면화된 99년 7월까지 정부가 대우의 유동성 위기에 대응해온 과정을 보면, 김 대통령이 김우중씨를 적극 도운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김우중씨 쪽도 정권 초기 김 대통령과의 밀월관계를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김우중씨에 대한 김 대통령의 특별배려는 당선자 시절부터 확연히 눈에 띄었다. 97년 12월 말 김 당선자는 5대 재벌 회장들을 불러 부채비율 200% 달성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은 당시 해외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굳이 귀국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귀국한 김 회장은 김 당선자를 독대했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대우의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하기는커녕 ‘무역흑자 2년 연속 500억달러 달성’이라는 나름의 경제위기 해법을 당선자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복과잉투자 기업들을 5대 재벌이 서로 맞바꿈으로써 해외매각에 따른 국부유출을 막고 실업 발생을 최소화하자는 이른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이후 1년 가까이 이 빅딜에 집착한 것은 김우중씨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배순훈 대우그룹 프랑스 본사 사장이 김대중 정부 첫 내각의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입각한 것이나, 김우중씨가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것도 두 사람 사이의 밀월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우중의 빅딜 제안에 집착
김 대통령은 대우의 자체 구조조정도 적극 지원했다. 김 회장이 대우차를 지엠(GM)에 매각하는 방안(98년 2∼6월)을 추진할 때, 김 대통령은 미국 방문 중 잭 스미스 당시 지엠 회장을 만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대우는 기아차를 인수해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그룹을 회생시키려고 시도(98년 8∼10월)하는 등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구조조정 방안들을 계속 추진했다. 이런 계획이 좌절된 뒤에도 김 회장은 김 대통령에게 매달렸다. 그해 12월7일의 정·재계 간담회를 앞두고 김 회장은 11월29일 청와대로 김 대통령을 방문했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41개의 계열사를 10여개로 줄이고 대우전자와 삼성차를 맞바꾸는 내용의 구조조정 계획을 보고해 사실상 승인을 받았다. 구조조정을 주도하던 금융감독위원회를 제쳐두고 청와대와 직접 담판을 벌인 것이었다. 그해 12월16일에는 베트남 순방에 오른 김 대통령과 하노이 대우호텔 숙소에서 부부동반으로 아침식사를 하기도 했다. 김우중씨의 한 측근은 “당시 조찬에서 김 대통령은 자금난을 덜어달라는 대우의 요청에 대해 강봉균 재경부장관을 불러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99년 초부터 6월 말까지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빅딜 협상 기회를 가진 것도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김 회장의 마지막 시도는 삼성 쪽이 삼성차의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하면서 좌절됐다. 그리고 40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부실을 금융권에 안긴 채 대우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대우와 김우중 회장에 대한 그동안의 배려가 오히려 나라경제에 깊은 주름살만 안겨주고 만 것이었다. 당시 경제관료들은 결국 대우가 쓰러진 것은 정부가 특정재벌을 돕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우 쪽의 설명은 다르다. 김우중씨의 한 측근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친분과 신흥관료들과의 갈등’이란 말로 대우사태의 전개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김대통령이 ‘김우중씨만한 사람 없네’라고 표현한 것은 김 회장이 의리 있게 살아왔다는 말 아니겠느냐”며 “어려울 때 여기저기 도왔겠지”라고 말했다. 정치자금 제공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말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도왔음에도 대우가 결국 해체된 것은 ‘경제철학이 다른’ 경제관료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게 대우 쪽의 주장이다.
‘대우 죽이기’는 정말 있었는가
김우중씨의 측근들이 최근 작성한 <대우죽이기의 실체-시간별 일지>라는 자료에 따르면, 김 회장과 경제관료들 간의 갈등은 98년 2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유종근 전북지사(당시 대통령 특별고문)과 김 회장의 설전이 그 시발이다. 외환위기의 책임이 재벌의 중복과잉투자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김 회장은 “정부의 무분별한 외환시장 자유화에 더 책임이 있다”고 반박했던 것이다. 그해 4월 강봉균 당시 경제수석과 김 회장 간의 설전은 경제관료들과 김 회장 간에 완전한 결별의 계기였다고 대우 쪽은 주장한다. “4월 어느 날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무역흑자 500억달러 달성방안의 실무협의를 위해 강봉균 수석이 힐튼호텔의 김 회장 집무실로 찾아왔다. 김 회장은 무역흑자 달성을 위해서는 사치성 소비재 수입을 정부가 적극 막고,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수출업체에 대한 수출지원 금융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강 수석이 ‘세상이 바뀌었는데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느냐’며 딴전을 피우자, 김 회장은 ‘강 수석, 당신이 뭐 하러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 당신이 비키면 다른 사람이라도 와서 일이나 하지’라고 호통을 쳤다. 강 수석은 감정이 상해 예정된 저녁식사도 하지 않고 돌아가버렸다.” 이후 경제관료들은 치밀한 계획 아래 대우를 해체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왔다는 것이다. 대우 해체가 ‘대우 죽이기’라는 주장은 어디까지나 김우중씨 쪽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대우의 몰락은 누가 해체를 의도해서가 아니라, 과다한 부채에 대한 부담이 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우처리가 지연됨으로써 국가적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대우 처리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계열사들이 지분과 채무보증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많은 사전작업이 필요했다”고 술회했다. 애초부터 조속한 처리가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아차 인수, 삼성차와의 빅딜 협상 등 김 회장의 구상이 실제 계속 시도된 것을 보면 정부 쪽이 대우 처리에 대한 일관된 시나리오를 갖지 못한 채, 김 대통령과 담판을 벌인 김 회장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녔다는 해석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해외도피도 권력의 도움이 있어야
대우의 운명은 삼성과의 자동차-전자 빅딜이 무산된 뒤 김 회장이 99년 8월26일 워크아웃 신청서에 결국 서명함으로써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김 회장은 그해 9월16일 김포공항을 빠져나가 해외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세계 역사상 최대규모의 부실사고를 낸 기업인이 유유히 출국한 것도 권력핵심부와 사전 교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대우의 전 임원은 “정부 쪽에서 조용히 나가 있으면 2∼3개 계열사는 챙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암시를 줬다”며 “그 뒤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 측근들은 그 이유를 대우사태를 불러일으킨 정책실패 책임 논란과, 김 회장을 처벌하려 할 경우 정치자금 폭로가 두려워서라고 설명한다. 정치자금은 은밀한 거래의 특성 때문에 그것이 사실 그대로 드러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우 관계자들도 “김 회장이 야당시절의 김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댔다면 당시 여당 쪽에는 더 많이 주지 않았겠느냐”며, 정치자금 문제는 정치권 모두와 거래하기 위해 흘리는 것임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최씨의 발언은 두고두고 논란거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김 대통령이 김우중 회장에게 받은 어떤 도움 때문에 대우 처리과정에서 실기를 했다면, 그로 인한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서도 김 대통령에게 상당한 ‘역사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정남구 기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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