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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2.05.15(수) 제4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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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의형제? 얼굴마담? 마침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김홍걸…받은 돈의 대가성 논란에 종지부 찍을 듯
돈거래 사실을 시인하는 데 정확히 한달이 걸렸다. 그의 말을 근거로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기억을 떠올리는 데” 한달이나 걸린 셈이다. “처음에는 돈 받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소 친하게 지내온 최규선씨로부터 ‘문제 있는 돈’이라는 생각 없이 3억원가량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 돈을 통장에 집어넣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다.”(5월9일 청와대 관계자가 전한 김홍걸씨의 말) “(용돈을 줬다는) 최규선씨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 최씨와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다.”(4월9일 청와대가 전한 김홍걸씨의 말)
이권청탁 정황증거 포착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아들 홍걸씨의 뒤늦은 자복은 숱한 의혹을 덜어주기는커녕 더 큰 의혹을 낳았다. ‘돈을 얼마나 많이 받았으면 3억원 받은 사실을 잊을 수 있을까’, ‘아직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사실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등등. 더구나 홍걸씨가 최씨한테 건네받은 3억원은 현금이 아닌 100만원권 수표 300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흔한 돈세탁 한번 하지 않은 채 수표로 받은 돈을 통장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다는 얘기다. ‘꼬리표’가 붙은 돈도 대통령 아들이 받아쓰면 추적당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성격이 소심한 것으로 알려진 홍걸씨가 돈거래에서만큼은 의외로 대범했다는 건 대통령 아들의 ‘권력가 의식’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홍걸씨의 귀국으로 그의 ‘건망증’도 종지부를 찍을까. 검찰은 홍걸씨를 늦어도 19일 안에 부를 방침을 세워놓았다. 검찰은 지금까지 홍걸씨가 최규선씨에게서 최소한 28억여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돈 가운데 최씨가 지난 2000년부터 코스닥업체인 ㄷ사와 ㅅ건설에서 관급공사 수주와 아파트 건립 관련 로비 명목으로 받아 홍걸씨에게 건넨 11억원이 대가성이 있는 돈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짓고, 이 돈이 이권개입의 대가인지 등을 조사해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이 홍걸씨에게 적용할 것으로 보이는 혐의는 ‘알선수재’다. 사실상 대통령 셋째아들을 돈을 노리고 이권에 개입한 ‘브로커’로 규정하는 셈이다. 금품수수 사실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홍걸씨가 쓸 수 있는 방어전략은 “이권이 걸린 돈인 줄 모르고 받았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삼 관심을 끄는 것은 홍걸씨와 최규선씨의 정확한 관계다. 홍걸씨와 최씨는 아무 명목 없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인가. 최규선씨도 한동안 ‘의형제론’ 전략을 구사해왔다. “홍걸씨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에 아무런 명목이나 대가 없이 용돈으로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검찰 수사에서 최씨가 기업인들을 만나는 자리에 홍걸씨가 동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두 사람의 주장은 인정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최씨에게 금품을 준 업체 관계자들이 “홍걸씨에게 가는 줄 알고 최씨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해 홍걸씨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홍걸씨 쪽이 다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최규선 얼굴마담론’ 정도다. 대부분 업체 관계자들은 검찰에서 “홍걸씨는 입을 다문 채 자리만 지켰고 최씨가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규선씨 비리의혹을 처음 폭로한 천호영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씨가 홍걸씨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만났고, 만나면 90도로 절하고, 헤어질 때는 차 타는 데까지 따라가 꼬박꼬박 절을 했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홍걸씨를 깍듯이 모셔 얼굴마담 노릇을 하게 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홍걸씨가 받은 돈의 대가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설령 최씨가 홍걸씨에게 그 돈이 누구한테서 어떤 명목으로 나왔는지 밝히지 않았더라도 홍걸씨로서는 최씨와 어울리면서 대가성이 있는 돈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검찰은 최씨가 10여명의 기업체 대표를 한곳에 불러 홍걸씨에게 차례로 소개하며 이권청탁 등을 유도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홍걸씨가 최씨의 이권청탁에 동조한 명백한 정황증거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타이거풀스 의혹도 관심
홍걸씨가 타이거풀스의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에 개입했는지 여부가 밝혀질지도 관심거리다. 홍걸씨는 동서 황인돈씨를 통해 차명으로 이 회사 주식 1만3천주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00년 7월 홍걸씨가 유상부 포스코 회장과 만난 뒤 포스코가 시중가보다 두배 가까이 비싸게 이 회사 주식 20만주를 사들인데다, 최씨는 그 대가로 타이거풀스 송재빈 대표에게서 24억원을 받았다. 특히 포스코는 그해 9월 타이거풀스와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경쟁을 벌이던 한국전자복권 컨소시엄에 참여했다가 갑자기 탈퇴해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현직 대통령 아들 구속사건은 김현철씨 구속을 통해 국민에게 웬만큼 학습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 아들이 브로커 노릇을 했거나, 사기꾼의 얼굴마담 노릇을 해서 구속되는 것의 의미는 5년 전과 사뭇 다르다. 홍걸씨는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서 호화주택을 구입하고 고급 승용차를 굴리는 것에 대한 따가운 비판에도 낯간지러운 변명만 거듭하다 번번이 거짓말로 들통났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어린 시절과 사춘기의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너에게 본의 아닌 못할 일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80년 12월 홍걸씨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홍걸씨는 어려서 아버지의 납치와 수감, 사형선고 등을 보고 자라며 소심하고 자폐적인 성격을 갖게 됐고, 김 대통령과 이희호씨는 그런 아들을 측은하게 여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순진한 홍걸씨가 사기꾼 최규선에게 당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대통령 아들의 탈선은 철부지의 실수로 치부될 수 없는 엄청난 일이다. 그의 귀국이 비로소 진실을 밝히는 걸음이기를 바라며 국민은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선 홍걸씨를 착잡하게 바라볼 것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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