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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2.05.08(수) 제4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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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성정치와 그 적들! 견고한 돈과 조직의 장벽…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은 왜 남성들만의 잔치인가
“엄마, 남자도 이제 총리를 할 수 있나요?” 영국의 전 총리인 대처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 영국의 한 꼬마가 엄마에게 물어봤다는 말이다. 대처 전 총리의 재임기간이 12년(1979∼90)이었으니, 이 꼬마는 태어날 때부터 여성총리만 봐온 셈이다. 정치인이라는 자리는 본업을 넘어 이렇게 상징효과가 크다. 대처 총리가 여성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여성정치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까닭은 그가 유럽의 첫 여성총리이자 가장 오랫동안 총리직을 수행했다는 ‘존재 그 자체’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비례대표 여성 할당에도 반발
세상은 바뀌어 여성정치인이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선 시대가 됐다. 여성정치인이 어떤 정치를 하느냐가 관건인 오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의 정치참여’, ‘여성의 정치진입’이라는 낡은 화두를 붙잡고 허덕이고 있다. 2002년 대한민국의 정치계는 여전히 여성에게 높디높은 진입장벽을 쳐놓았기 때문이다.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 결과, 여성후보는 꽤 많이 탈락했다. 현재까지 공천을 받은 여성후보들을 보자. 한나라당이 기초단체장 후보 2명(전상수 부산 남구청장 후보, 허옥경 부산 해운대구청장 후보)과 광역의원 후보 7명. 민주당 역시 기초단체장 후보 2명(이금라 서울 강동구청장 후보, 이영환 인천 남구청장 후보)과 광역의원 후보 7명이다. 민주당은 이 밖에 기초단체장 후보 세명과 광역의원 후보 한명이 선거 불공정 문제로 이의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법적으로 공천을 금지한 기초의원을 빼고는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 광역의원은 ‘상향식 공천’으로 후보자가 결정된다. 지역마다 단독으로 추대하거나 후보자가 많을 경우 대의원 경선, 주민참여 경선 등을 통해 후보자를 고른 뒤 중앙당에서 심사해 최종 공천하는 방식이다. 후보를 확정하지 않은 곳에서 모두 여성후보를 추대해도, 이번 지방선거의 여성 광역후보 공천율은 1.6∼1.8%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정치의 시대’라는 팡파르를 외쳐온 양당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긴급 당무회의를 통해 지구당에 여성후보 할당에 관한 지침문을 다시 내려보냈고, 민주당은 4월25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당헌당규상의 공직후보자 추천규정을 변경했다. 지구당 선거의 1차투표에서 1, 2위 득표자에 여성이 속한 경우 결선투표를 하지 않고 2명의 후보자를 복수로 선출해 중앙당에 결정을 제청하도록 한 것이다. 여성은 2등만 해도 후보자로 공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은 기초단체장 두곳, 광역의원 한곳밖에 남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여성당직자는 “이미 전투에 나가 피흘리고 전사했는데, 뒤늦게 총알을 더 준다는 꼴”이라고 당 지도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한나라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여성당직자는 “남은 것은 비례대표 여성할당 비율을 높이는 것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남성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역차별로 여긴다”며 당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5월1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는 성난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지난 4월30일 광역의원 비례대표의 70%를 여성으로 할당하라는 당무회의 권고지침이 지구당에 내려가자마자 소속 남성당원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70% 이상을 할당하면 “여자들이 다 먹고 들어간다”는 것이 항의 이유였다. 그러나 시도 광역의회 682석 가운데 비례대표는 10% 남짓한 73석이다. 만약 양당이 나누어 그 가운데 70%를 여성몫으로 한다 해도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남성당원들의 항의에 참다 못한 김금래 여성국장이 맞섰다. “두 발로 멀쩡하게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 왜 휠체어를 달라고 하느냐!” 물론 여성국장의 한마디가 이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조직에 밀려 후보등록 포기하기도
당 내부의 지지가 없는 가운데 상당수 여성후보들은 경선을 치르기도 전에 주저앉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지구당 위원장의 입김이나 심중에 따라 표의 향방이 결정난다는 것은 지역별 후보 경선과정에서 골고루 나타난 현상이었다. 지구당 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자질이나 경험이 아니라 돈과 조직이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여성후보라면 ‘더러운 꼴’을 보기 전에 물러나는 게 좋다는 의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인천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등록 과정에서 벌어졌다. 현직 시의원인 ㅎ씨는 91년 구의원을 시작으로 11년간 지방정치를 해온 베테랑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이번에 구청장 후보에 도전하려 했으나 상대후보에게 유리하게 대의원이 구성된 것을 보고 출마를 포기했다. 그러나 불출마 입장을 발표한 다음날 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이혼전력 때문에 출마를 포기했다는 근거 없는 헛소문이었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그 소문의 진원지가 지구당 위원장이었다는 것. ㅎ씨는 지구당 위원장에게 공개사과를 받으려고 했으나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고, 단독후보로 시의원에 나서달라고 강권하자 당에 대한 충정으로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3선 시의원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루도 안 지나 번복됐다. ㅎ씨를 단독으로 추대하는 게 아니라 경선으로 후보를 확정한다는 방침이 정해진 것이다. 크나큰 배신감과 상처를 안고 ㅎ씨는 결국 시의원 출마마저 포기했다. “최소한의 신의와 도의를 저버리는 과정에 대해 출마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문제제기를 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게 ㅎ씨의 항변이다. 이 밖에도 단지 지구당 위원장에게 “충성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저앉은 여성후보들은 부지기수다. 5월11일 구청장 후보 경선 예정인 민주당 광주서구는 지구당 위원장이 ‘여성전용특구’를 만든다고 호언해 눈길을 끈 지역이다. 그러나 이곳도 결국 경선으로 후보를 뽑게 됐다. 남성 대의원들의 항의 때문이다. 광주서구의 한 여성당원은 “여성전용특구라는 말만 나왔지 가시적인 조치는 전혀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으나, “그나마 우리 구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대의원 경선만 하는 다른 지역보다는 여성후보가 승산이 있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광주서구에서는 현직 시의원인 안성례 후보가 여성대표로 구청장에 출사표를 던져놓은 상태다. 한나라당 공천자들은 대부분 대의원 추대형식이었고, 민주당은 지금까지 확정된 후보 가운데 단체장 후보 1명, 광역의원 후보 3명만 경선을 통해 후보로 확정했다. 비록 소수지만 경선 장벽을 뚫고 후보가 된 여성들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꽃을 피워올리는 일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똑같은 100m 달리기라고 해도 여성들은 남성보다 출발선이 뒤에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상향식 공천’의 딜레마
이런 환경은 여성뿐만 아니라 정치신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력자 여성후보를 제치고 남성 정치신인들이 지구당 위원장의 신임을 받아 추대된 경우는 적지 않다. 그가 ‘누구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충성심을 보인다면 지구당 차원에서 앞장서 그를 위한 ‘조직’을 만들어준다. 서울의 한 시의원 경선과정은 전형적인 사례다. 지구당의 한 간부는 지역의 유지로 산악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1년여 전부터 정치신인인 남성후보를 데리고 다니며 인사를 시켰다. 대의원 선정 결과 그 간부가 이끌고 있는 산악회 회원들은 대부분 신임 대의원이 됐다. 대의원 선정이 경선 40일 전에 마무리됐으니 아무리 지방정치에 잔뼈가 굵은 여성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불리한 경선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후보 경선제도가 지구당 위원장의 입김이나 남성 대의원들의 세싸움에 좌지우지되는 한 여성 할당, 민주적 경선이라는 말은 무색하다. 그 결과 아래로부터의 공천이라는 정치개혁의 명분이 여성들에게는 악재로 작용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여성 국회의원은 “민주적 경선제도는 분명 살려나가야 하지만, 경선제도 자체가 여성 할당의 취지와 충돌하지 않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이를 앞장서 끌어갈 당 지도부는 ‘상향식 공천’이라는 말만 내세운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각 정당의 미온적인 태도는 지난 2월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때 드러났다. 정치개혁특위는 기초단체장 여성할당은 빼고, 국회의원·광역의원 지역구 공천 30% 여성할당, 광역의원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을 권고조항으로 담은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의무규정이 아닌 권고조항인데다 지키지 않는 정당에 대한 제재조처도 명시된 게 없어 ‘30% 할당제’는 그야말로 말잔치에 그쳐버렸다(상자기사 참조). 그 뒤로 여성 할당을 위해 각 정당 지도부가 한 일은 “후보자 추천에서 여성이 30% 이상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지침을 한 차례 각 지구당에 전달한 것뿐이다. 한 지구당 대의원은 “당원에게 알릴 필요도 없었다. 알린다고 해도 자기 지역구가 그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권고를 받아들일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울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 결선투표장에서는 남성후보 쪽 운동원들이 “여성은 안 된다. 여성을 뽑으면 우리 당은 진다”는 구호를 외치기까지 했다.
정말 득표력 떨어질까
많은 지구당에서 여성후보 추대를 꺼리며 내세우는 이유는 “여성은 득표가 어렵다”는 통념이다. 그러나 여성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감도는 대의원과 당원의 의식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난 2월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가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능력과 자질이 비슷한 남성과 여성이 시장이나 구청장에 입후보한다면 여성을 뽑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은 78.4%에 달했다(상자기사 참조). 이들의 여성후보에 대한 선호도는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은 근거 있는 판단이다. 지난 4월23일 한국여성개발원(KWDI)이 주최한 ‘여성과 국가경쟁력’ 심포지엄에서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특정국가 국회와 정부 등에 진출한 여성비율이 10% 증가하면 세계은행(IBRD)과 세계투명성기구가 그 국가에 부가한 청렴도 지수와 부패인지 지수가 각각 0.24, 1.2씩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여성이 남성보다 부패를 덜 용인하고 여성의 정치·경제·사회 진출이 활발한 나라일수록 국가 투명성이 높아지는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래로부터의 후보공천은 분명 의미 있는 실험이다. 이와 같은 거대한 정치개혁의 물꼬는 결국 정당 지도부가 공직후보자 추천규정 등 당헌·당규를 바꾸는 제도적 혁신으로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여성 정치지망생들에게 높기만 한 진입장벽은 선언적인 구호를 내건다고 저절로 없어지는 게 아니다. 거대한 굴삭기와 장비를 동원해 낡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실효성 있는 제도를 세우지 않는 한 아이들은 내내 “엄마, 여자도 정치할 수 있나요?”라는 지루한 질문을 계속할지 모른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계속 후진의 언저리를 맴돌 것이다. <5월6일 현재 기초단체장·광역의원 공천확정 여성후보>
한나라당
전상수(부산 남구청장 후보)
민주당
이금라(서울 강동구청장 후보)
민주노동당
이순녀(서울 영등포갑 광역의원 후보)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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