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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2.05.08(수) 제4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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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말잔치뿐인 여성할당제 강제력 없는 ‘권고사항’으로 둔갑…남녀동수 공천법안 만든 프랑스의 힘을 보라
국민들은 여성의 낮은 정치참여도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조치'의 하나인 여성 30% 할당제가 이미 법제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각 정당이 앞다퉈 도입한다던 여성 할당제는 사실상 '립서비스'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부터 여야 정치인들은 국회의원·광역의원 지역구 공천 30% 여성할당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30%, 광역의회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을 제안했고, 정당 지도자들은 ‘여성정치의 시대가 열린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불과 두어달도 안 된 지난 2월25일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기초단체장 30% 여성할당은 아예 빼고, 지역구 공천 30%, 광역의원 비례대표 50% 여성할당 등도 임의규정인 권고사항으로 둔갑시킨 채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할당제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고보조금을 삭감한다는 기존의 방안도 크게 완화해 이를 시행한 정당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하나마나한 조항’을 삽입시켰다. 기초단체장 30% 할당이 빠진 이유로 특위위원들이 내세운 명분은 “여성할당을 의무사항으로 하기에는 위헌성 여부 등 무리가 많고, 각 정당에서 상향식 공천을 도입하는 추세이므로 여성할당을 지침으로 삼으면 민주주의의 원칙과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정치 선진국의 각 정당들은 어떻게 여성할당을 정착시키고 있을까. 독일 사민당은 당규에 정당 내 조직과 의원에 여성이 40% 이상 되도록 규정하였고, 독일 녹색당은 선거 후보자 명단 홀수석에는 무조건 여성이 오르도록 하였다. 여성이 짝수석에도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비춰보면 최저 50% 할당제인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지방정부와 의회후보 예비심사에 여성 50% 할당을 명시하였다. 할당제가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켜 상승효과를 본 것은 프랑스다.
프랑스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여성의원 비율이 유럽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러 각국으로부터 놀림감이 되곤 했다. 그러나 모든 선거에서 의무적으로 남녀 동수의 공천자를 내도록 하는 ‘남녀동수 공천법안’(일명 동등법)을 만들어, 공천 리스트에 남녀의 비율이 같지 않으면 선관위에 접수조차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이를 어긴 정당에는 정당보조금을 삭감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벌금을 물도록 했다. 물론 이 법을 그리 쉽게 만든 것은 아니다. 조스팽 총리는 32명의 장관 가운데 10명을 여성으로 지명해 내각을 꾸렸고,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국민여론조사를 하며 동등법의 취지와 내용을 상세히 알렸다. 상하원을 통과한 다음 위헌시비가 붙자 헌법까지 뜯어고쳤다. 새로운 동등법에 따라 치른 지난해 지방선거 결과 여성의원의 진출은 47.5%에 이르렀다. 상당수 남성 정치인들은 선거 전에 “여성의 정치참여가 절망스러운 수준이지만 동등법 적용은 너무 이른 게 아니냐”고 우려하였지만, 프랑스의 정치현실을 일거에 뒤바꾼 위력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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