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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2.05.02(목) 제4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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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들꽃의 생명력에 취해보라 잘 죽지 않고 번식도 잘하는 우리꽃, 집 안에 자생화 꽃밭을 꾸며보자
들꽃은 어감이 거칠다. 그런데도 그 낱말에는 거친 마분지 위에 떨어진 물방울 자국 마냥 언제나 슬픈 느낌이 얼룩져 남아 있다. 그리고 거칠면서도 슬픈 모순된 느낌이 어우러져 질긴 생명의 이미지를 빚어낸다. 어쩌면 들꽃의 미학은 이처럼 거칠면서도 슬픈, 그래서 질기디 질긴 생명의 미학일는지 모른다.
생명의 웃음을 준 꽃잎
인터넷 다음카페에서 우리 자생화 동호인 모임인 ‘풀꽃나라’(http://cafe.daum.net/wildflowerland)를 운영하는 이병연(48·경기 과천시 별내동)씨. 여지껏 병을 달고 살다시피 해온 그가 자생화 동호인 모임을 이끄는 건, 우연이라면 아주 운명적인 우연이다. 자생화에 처음 관심을 보인 것도 병치레 때문이었다. 직접적인 동기는 몸이 아파 힘들게 치료를 받고 나오는 길에 병원 앞마당 콘크리트 바닥의 갈라진 틈에서 제비꽃 한 포기가 아슬아슬하게 피어 있는 걸 발견하면서부터다.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 삭막한 틈바구니에서 청초한 꽃잎을 피워낼 수 있을까…. 어차피 아플 거면 짜증을 내는 것보다는 밝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제비꽃의 강한 생명력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의 일이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큰 수술을 받았고 잔병치레도 끊이지 않았지만, 그때 본 꽃 덕분에 그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던 그가 어느덧 지독한 자생화 마니아가 되어버린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5월이다. 이 봄의 마지막 달. 가요 <봄날은 간다>를 부른 여성가수의 애조 띤 목소리가 맞춤한 시절에, 우리 자생화는 질긴 생명력으로 가는 봄을 넉넉하게 떠나보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한다. 물론 우리 자생화들은 종류별로 연중 내내 번갈아가며 이 땅에서 꽃을 피우고 떨구지만, 봄이라야 자생화는 비로소 자신의 낙천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 곧 봄날은 가지만, 자생화는 끝없이 새롭게 꽃을 피울 것이다. 몇년 새 우리 자생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쩍 높아졌다. 모두 외래종 꽃들의 화려한 빛깔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한동안 그 모던한 플라워들이 이 땅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을 때, 10년 또는 20년씩 발품 들여 전국의 산과 들을 순례하고 다닌 ‘선각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공들여 만든 수목원과 역작 도서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언론들의 조명과 예우가 뒤따랐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자생화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눈떴다.
재배농가 늘어 값 많이 내려
지난 4월26일, 북한산 자락 끝에 자리잡은 서울 구파발성당 안에서는 이틀째 조경작업을 하고 있었다. 성당 안마당 곳곳에 우리 자생화를 심는 일이었다. 하늘매발톱·앵초·초롱꽃·둥굴레·은방울·금낭화 등…. 이미 지난해에도 마당 한쪽에 2평 남짓 자생화 꽃밭을 꾸민 성당은 이제 자그마한 우리꽃동산으로 변하였다. 성당의 봄은 아기자기하고 포근했다. 오랜 추억이 그 안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자생화에 대한 관심은 이제 들과 산에서 자라던 풀꽃들을 우리 삶 안쪽으로 깊숙이 들여오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 “금낭화는 예전 같으면 시골 집집마다 피어 있는 꽃이었습니다. 은방울도 산에 가면 지천으로 피어 있었지요.” 구파발성당 조경작업을 맡은 산풀농원(02-382-4454) 주인 황인상(41)씨는 “2∼3년 전부터 일반 가정에서도 우리 자생화 꽃밭을 꾸미는 집들이 많아졌다”며 “이제 사람들은 한동안 잊고 지낸 낯익은 꽃들을 다시 집안으로 불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꽃밭이 아니더라도 자생화 화분 한두개쯤 집안에 들여 살피고 돌보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웬만한 꽃집에 가도 소박하고 수수한 멋이 나는 자생화 화분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 자생화가 아직까지 벗어버리지 못한 오해는 값이 비쌀 거라는 것. 청산식물원(02-382-4454) 주인 유상혁(52)씨는 “4∼5년 전만 해도 자생화 값이 꽤 비쌌지만 몇년 새 자생화 재배농가가 크게 늘어나면서 값이 많이 내렸다”며 “희귀종이 아니라면 꽃집에서 한 분에 1500원에서 3천원대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생화 꽃밭을 꾸미는 일도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산풀농원 황인상씨는 “기본시설을 갖췄다면 재배농가에서 식물을 공급받아 두세평 크기의 꽃밭을 꾸미는 데 20만∼3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며 “특별히 귀한 종을 골라도 50만∼100만원선에서 꾸밀 수 있다”고 말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서도 베란다 안에 실내꽃밭을 꾸밀 수 있다. 꽃밭에 무리지어 기르는 자생화는 잘 죽지 않고, 번식도 잘한다.
어떻게 기를 것인가
풀꽃나라 이병연씨와 산풀농원 황인상씨, 청산식물원 유상혁씨 등의 도움말로 자생화 기르는 법을 알아본다. 1. 흔한 꽃을 골라라. 먼저 집에서 기르기 쉬운 종을 고르는 게 가장 기본이다. 집에서 기르기 쉬운 종이란 다름 아닌 꽃집에 가장 많이 나와 있는 종이다. 대량재배가 이뤄진 것은 그만큼 생존력과 번식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희귀종은 생존력과 번식력이 약하고, 특히 집안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해 전문가들도 키우기가 쉽지 않다. 비싼 돈 들여 사다놓고 아까운 생명을 죽이느니 잘 사는 종을 선택하는 게 훨씬 낫다. 2. 계절별로 볼 수 있는 꽃을 적절히 배치하라.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 종을 골고루 골라 심으면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끊이지 않고 꽃을 즐길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면 노루귀와 남산제비꽃은 3∼4월에 꽃을 볼 수 있고, 이어 둥굴레와 은방울이 4월에 꽃을 피운다. 금낭화는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꽃이 피고, 붓꽃과 꿩의다리를 심으면 6월에 즐길 수 있다. 비비추·원추리·참나리는 한여름에, 벌개미취·냉초·긴산꼬리풀은 8∼9월에 꽃을 볼 수 있다. 자생화는 대개 여러 해를 살고 씨앗이 떨어져 스스로 번식하기 때문에 한번 심어 잘 가꾸면 두고두고 꽃을 감상할 수 있다. 3. 색깔별로 무리지어 심어라. 계절별로 볼 수 있는 꽃을 색깔별로 무리지어 심으면 훨씬 화사한 자생화를 즐길 수 있다. 예를 들면 노란색 산국을 무리지어 심고 그 앞에는 좀씀바귀를 심어서 봄에는 노란색 좀씀바귀꽃을 보고 가을에는 노란 산국을 본다든지, 층꽃과 벌개미취, 도라지꽃처럼 보라색 꽃을한데 모아 심어도 좋다. 4. 양지식물과 음지식물을 구별해서 심어라. 양지식물과 음지식물을 구분하지 않고 심는 것은 자생화가 자라는 자연환경을 거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생화의 최대 소비자인 지방자치단체들은 양지식물과 음지식물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심어 70% 이상을 죽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강한 햇볕을 피해야 하는 음지식물로는 개맥문동·곰취·노루귀·둥굴레·말나리·매미꽃·맥문동·마식줄·바위취·복수초·송악·비비추·애기나리·옥잠화·은방울꽃·일월비비추·털머위·속새·석창포·범부채(반음지) 등이 있다. 쇠고비·고비·고사리삼·공작고사리·꿩고비·파초일엽·넉줄고사리·바위손·석위·세뿔석위·차꼬리고사리 등의 음지식물을 키우면 실내에서도 푸른 잎을 감상할 수 있다. 5. 튼튼하게 자란 것을 골라라. 심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자생화는 뿌리가 약해 쉽게 죽는다. 포트에서 자생화를 꺼내봤을 때 아래쪽으로 잔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있고 둥글게 감아도는 뿌리가 심은 지 오래되고 튼튼한 것이다. 잎에 힘이 없거나 광택이 없는 것도 상태가 좋지 않다.
“진짜 자생화를 사랑하려거든 씨를 뿌려 싹나는 것부터 보아야 합니다. 자생화는 씨를 뿌리면 첫해에 꽃을 피우는 일이 없습니다. 씨를 뿌려 가꾸면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면 산과 들에 나는 꽃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이병연 풀꽃나라 대표는 “우리가 느껴야 할 자생화의 진실은 바로 강인한 생명력이다”라고 강조했다. 시나브로 가고 있는 봄날에 들꽃이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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