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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정치인의 추락 3당합당 때 민주당 잔류를 선언한 김희완씨의 정치적 방황
‘소신 정치인-철새 정치꾼-비리사범’.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희완씨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젊고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에서, 금배지를 위해 여야를 오간 전형적인 ‘철새’로 바뀐 뒤, 최근에는 이권을 챙기기 위해 국정을 농단한 비리사범으로 낙인 찍혔다. 김씨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정통 야당을 지킨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앙일보사 기자를 거쳐 지난 85년 이민우 신민당 총재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뛰어난 기획력을 바탕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90년 3당합당 때는 민주당 잔류를 선언하면서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했다. 깔끔한 인상에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갑에서 출마해 당시 국민당 조순환 후보에게 1979표 차로 아쉽게 패했다. 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서울시장선거운동본부 기획단장으로 일한 그는 96년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장학로 사건으로 낙승을 예상했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정치적 방황’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로 보인다. 선거 패배가 상대 후보의 금품살포 때문이라고 확신한 그는 홍 의원을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고소했으나, 검찰은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96년 12월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된 뒤에도 이에 대한 검찰의 재정신청을 받아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97년 초 김현철씨의 비리의혹을 폭로한 박경식씨에게 접근한다. 박씨는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내게 김현철씨나 신한국당 쪽과의 통화내용을 녹음하라고 했다”며 “메디슨과의 화해를 요구하는 대통령 주치의 고창순씨와의 통화내용은 직접 나와 함께 녹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박씨가 (주)메디슨과 벌인 명예훼손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해 “녹음을 종용하지 않았으며, 녹음된 테이프를 나중에 넘겨받았을 뿐”이라고 증언했고, 이 증언으로 박씨는 법정구속까지 됐다. 98년 6월 정무부시장직에서 물러난 뒤 김씨는 99년 6·13 재선거 출마를 노렸다. 국민회의 공천을 기대했다가 지역구인 송파갑이 공동여당이던 자민련 몫으로 돌아가자 발빠르게 자민련으로 옮겨 공천을 따낸 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와 맞붙었다. 결과 또 한번의 패배였다. 김씨의 행보는 이후 더욱 숨가쁘게 이어진다. 2000년 2월 16대 총선을 불과 두달 남짓 남기고 “보궐선거 과정에서 이 총재의 원칙주의와 인간미를 알게 됐다”며 홍사덕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총선 뒤 원하던 전국구 의원직을 얻지 못하자, 입당한 지 두달도 안 된 4월 말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김씨는 탈당에 앞서 “앞으로 벤처 관련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달여 만에 또 다른 정치적 변신을 감행한다.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권노갑 고문의 핵심참모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김씨가 최규선씨와 의기투합해 ‘벤처 사업’에 나선 것도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지난 정권에서 대통령 아들의 국정농단을 파헤치고 다닌 김씨가 현 정권에서는 대통령 아들을 등에 업고 온갖 이권을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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