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지나치면 병이던가. 우리 자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작 산과 들에 핀 자생화가 때아닌 수난을 겪고 있다. 영월 동강에 댐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한 래프팅과 트래킹이 동강에 심한 상처를 남긴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자생화가 겪는 수난은 무단채취에서 비롯한다. 과거에는 무관심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방치되어온 꽃들이 이제는 아예 사라진 것이다.

이병연씨가 지난해 인터넷에 ‘풀꽃나라’ 카페를 연 것은 우리 자생화를 알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무단채취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서였다. “제가 자주 다니는 약수터 길에도 천남성이 지천이었는데, 이젠 찾아보기조차 어렵게 됐습니다. 언론을 통해 천남성이 알려지면서 다들 한두촉씩 캐어간 때문이죠.” 이씨는 “누군가 잔소리꾼이 되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초보자들이 주로 가까운 곳의 흔한 자생화를 훼손한다면 고산지대의 희귀종을 훼손하는 건 대부분 고수들이다. 그런 사정으로 보호종인 광릉요광꽃은 정작 광릉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들 가운데는 상업적 목적으로 희귀종을 무단채취하는 ‘업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배가 안 되는 광릉요광꽃이 일본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요즘 들어 자생화를 직접 캐다 파는 일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호사스러운 취미생활을 위해 기꺼이 희귀 자생화를 희생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병연씨는 “여러 곳에 흩어진 꽃들을 뜯어다 한데 모아놓고 사진촬영을 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은 다음 아예 다른 사람들이 촬영을 못하게 하려고 꽃을 꺾어버리는 사람도 보았다”며 “그들 가운데는 이 분야에서 제법 이름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21세기는 종자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자생화를 무단채취하는 문화는 종자전쟁에서도 매우 불리하다. 청산식물원 유상혁씨는 “우리 자생화가 종자개량도 되고 하려면 관련산업이 살아나야 한다”며 “값싼 재배 자생화마저 돈 주고 사지 않는다면 어떻게 종자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개탄했다. “탐나면 산에서 캐내지 말고 자연학습장에서 훔쳐가라. 그러면 다시 사서 심을 수 있으니 그나마 종자산업은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유씨는 일갈한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