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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2.04.10(수) 제404호

[특집] 봄비 몰고 왔습니다!

임동원 특사 방북에 적극적 자세 보인 북한… 경제교류 활성화 등 남북관계 급물살 탈 듯

위기는 곧 기회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상공에 전쟁위기의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으나 어느새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조만간 닥칠지 모를 안보위기를 막기 위해 자못 비장하게 평양길에 올랐던 임동원 대통령 특사의 얼굴에도 여유가 넘쳐나고 있다. 북-미간의 위기가 남북관계에 새로운 기회를 갖다준 셈이다.

남과 북, 격식깨고 머리맞대

임 특사가 평양에서 갖고 내려온 6개항의 공동보도문에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서울 개최, 금강산 육로 및 경의선 연결, 군사당국자회담 재개 등 굵직굵직한 희소식들이 담겨 있다. 남북관계 복원뿐 아니라 북-미·북-일 관계 개선에도 청신호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합의서의 내용이 그대로 실천된다면 남북관계는 질적으로 도약할 것이며 단순히 평화유지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일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섣부른 기대감도 만발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중론을 펼치기도 한다. 북한이 약속을 어긴 게 한두번이냐며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합의사항 보장장치는 미흡해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을 더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임 특사가 스스로 밝혔듯이 이제는 실천이 되도록 서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특사 방북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남북한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협상 전략과 태도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사실 과거 정권은 물론 현 정부도 대북정책 성패의 관건은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해왔고, 사실 그런 측면이 강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정책을 내놓아봤자 북한이 고개를 돌리면 수포로 돌아가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미-일 공조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목표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거의 차질 없이 달성돼왔다. 세 나라 공조가 아무리 굳건해도 이 역시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물거품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양쪽이 남북 공조의 싹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이는 공동의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민족의 운명은 물론 남북정상회담 이후 공들여 쌓아온 성과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남북 공조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줬다. 필요하면 북쪽 지도부와 머리를 맞대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 수 있다는 점에서 남쪽 고위 정책담당자들은 적지 않게 고무돼 있다. 이는 사실 임 특사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임 특사 일행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5시간여 대화를 나눈 것을 비롯해 김용순 등 대남정책 실세들과 두루 만나 현안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김용순 노동당 통일전선담당 비서가 4월5일 저녁 김대중 대통령 특사인 임동원 외교안보통일 특보를 위해 마련한 환송만찬에는 김 비서를 비롯해 림동옥(통전부 제1부부장), 김완수(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안경호(조평통 서기국장, 범민련 북쪽본부 의장), 전금진(내각책임 참사, 조평통 부의장, 1∼4차 장관급회담 북쪽 단장), 강능수(문화상), 김령성(내각참사, 민화협 부회장, 5∼6차 장관급회담 북쪽 단장), 정운업(민족경제협력연합회 회장), 김택룡(금강산당국회담 북쪽 단장) 등이 참석했다. 이런 만남은 극히 파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날 회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로 이뤄진 일로 전해지고 있다. 회담 전문가들은 외견상으로 저녁식사 자리를 빌렸지만 양쪽 회담 핵심관계자들이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현안을 논의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남쪽과의 관계개선 의지와 신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보기 드문 모습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구나 이 자리에는 양쪽 정보당국의 대북·대남 담당 실세들도 참석했다. 대북·대남정책을 주무르는 양쪽의 선수들이 모두 발가벗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대외에 과시한 셈이다. 임 특사가 가져온 방북 성과물은 이런 형식과 격식을 파괴한 만남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기대해볼 만하다.

남쪽 정책변화 요구하기도

그렇다면 북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정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북한이) 특사를 받아들이고 일본, 미국과 대화에 나선 것은 근본적으로 경제회생을 통해 체제안정을 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으로부터는 정치·경제적 지원을 보장받겠다는 것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또 9·11 테러사태 이후 북한은 과거와 같은 벼랑 끝 전술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 같다. 우선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의 일방적인 압박을 피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미국과의 현안을 풀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는 듯하다.” 사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에는 남쪽 및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병행해 추진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결과 김정일-클린턴 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가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초강경정책으로 나오자 다시 미국과의 관계설정에 우선순위를 두기 시작했다. 체제안전을 보장받는 미국과의 관계개선 없이 남쪽과 잘 지내봤자 소용없다는 판단을 하면서 ‘선미후남전략’이 나오게 된다. 이런 판단의 결과로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고 북-미관계는 위기국면으로 치달았다.

사실 임 특사 방북의 최대 목적도 이런 북한 지도부의 생각을 바꿔놓는 데 있었다. 그는 이번 방북기간 중 북쪽 인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남북관계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북-미 문제도 해결 안 된다. 북한이 6·15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등에서 자주적 해결을 주장하면서 미국에 매달리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우선 남북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줄곧 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이 합의한 공동보도문 내용들도 모두 이런 설득이 먹혀들어간 결과다.

하지만 북쪽은 임 특사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남쪽 당국에 대해서도 주장에 걸맞은 정책변화를 요구했다. 바로 임 특사 스스로 밝힌 주적론과 외세공조 문제였다. 남쪽이 민족공조가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 핵심요소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북한을 여전히 주적으로 삼고, 민족공조보다 외세공조를 앞세우고 강화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반박한 것이다. 이때 상황은 임 특사가 6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통해서 생생히 드러난다. “가장 큰 쟁점은 민족공조냐, 외세와의 공조냐, 양자택일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였다. 이는 양자 대립이 아니라 상호보완되는 개념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한-미-일 3국 공조는 북한이 미국이나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공조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조라는 점을 설명했다. 양자대립이 아닌 상호보완 개념을 (북한이) 상당히 이해했다고 본다. 주적론 문제는 가장 어려운 쟁점사항이었다. 남북 군사당국자회담을 열어서 논의하고 해결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로 대체했다.” 임 특사의 주장대로 북한이 이런 민감한 문제들을 이해했다면 이 또한 큰 성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외세공조와 주적론 문제는 지금껏 남북관계 개선의 결정적인 걸림돌로 박혀 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들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한국군의 존재 명분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북한이 이들 예민한 문제들에 대해 이해한 수준이지 그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앞으로 남쪽 당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지, 북한이 이 주장을 포기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어쨌든 이번 특사방북을 통해 남북한 양쪽은 전례 없는 공조체제를 과시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경협 활성화는 긴장완화

이번에 공식적으로 발표는 안 됐지만 이산가족 상봉도 한 차례에 그치기보다는 상설 면회소가 금강산에 설치돼 지속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보 소식통의 귀띔이다. 남북한을 관통하는 경의선과 금강산 육로가 뚫리면 인적·물적 교류가 봇물을 이룰 게 뻔하다. 개성공단은 남쪽의 섬유·신발업체 등 사양산업의 활로를 열어줄 뿐 아니라 북한에도 금강산에 이은 새로운 외화수입원 창구구실을 톡톡히 하게 될 것이다. 개성공단의 성패를 좌우할 안정적인 전력공급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으로서는 단순히 외화뿐 아니라 각종 인프라 시설, 경제발전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회생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 현 정부는 남북한 사이의 경제공동체 건설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정착의 첩경이라고 늘 주장해왔다. 이는 곧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군축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약간의 시차만 존재할 뿐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곧 군사적 긴장완화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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