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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하게 보이고파…” 구색 갖추고 명품 선호하는 20대의 패션 트렌드의 안과 밖
1. 뒤통수 쪽을 조금 부풀린 단발머리에 짙은 단색의 프라다풍 정장(점퍼형 상의에 무릎길이 스커트)을 입고 체크무늬선이 그려진 흰 스타킹에 페라가모 구두를 신는다. 구치나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에스카다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2. 수수한 검은 스커트 위에 같은 색 니트와 가디건을 받쳐입고 흑단처럼 염색한 검은 생머리에 로고가 선명하게 도드라진 에트로 핀이나 머리띠로 강조점을 준다. 깜찍한 티파니 목걸이와 파스텔톤의 테크노마린 시계를 차고 페라가모 단화를 신는다. 3. 엔지니어드진 바지를 헐렁하게 입고 스니커 운동화를 신고 후부 티를 겹쳐 입고 삐죽삐죽 손질하지 않은 염색머리에 귀걸이를 서너개씩 하고 있다. 디케이엔와이 시계를 차고 프라다 메신저백을 메고 화려한 빛깔의 펜디 선글라스를 낀다.
집안·센스·지성·교양, 그렇게 보일려면…
성공한 직장여성으로 여겨지든, 청순한 소녀분위기를 풍기든, 자유로운 힙합족으로 보이든 돈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명동의 쇼핑몰 아바타에서 헤어 소품점을 운영하는 백현정씨는 “들고 계신 OO 가방하고 이 OOO 머리띠하고 보통 함께 해준다”는 말만큼 호객효과가 큰 건 없다고 귀띔한다. 20대의 패션은 이렇듯 머리에서 발 끝까지 ‘세트’로 구성된다. 그리고 고가의 브랜드 제품으로 항목들을 채운다. 구색을 갖추고 명품을 선호하는 20대의 패션 트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간호섭 동덕여대(의상디자인학) 교수는 세대론으로 그 흐름을 해석한다. X세대, N세대에 이어 등장한 M세대는 구제금융기 때 성인이 된 20대 초중반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이들은 움직이고(Mobile), 개인적이고(Myself), 도덕적(Moral)이다. 간 교수는 “M세대는 자기 중심적인 소비욕구가 있고, 해외에서 보고 들은 게 많으며, 그룹의 동조의식이 강한 세대”라고 설명한다. “이들에게는 세계관이나 직업,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 어떤 패션을 하는가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매개다. 그 결과 취향과 안목에 맞는 이들끼리 인간관계가 재편되고, 준거집단의 패션에 맞춘 소비를 반복한다. 남을 간섭하지도 않지만, 남에게 간섭받기도 싫어한다. 오로지 믿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휴대폰 판매 도우미를 하는 윤아무개(24)씨는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쇼핑의 즐거움을 표현한다. 일이 많은 달은 200만원, 일이 없는 달은 50만원 정도 벌지만 그의 카드 씀씀이는 한달 평균 1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돈은 없어서 아쉽지 아낄 필요는 없다. “좋은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고 남들 보기에도 좋잖아요.” 윤씨에게 고가품은 “필요해서 쓰는” 유형의 물건이 아니라 “존재 증명을 하는” 무형의 자산이다. 고가 브랜드 제품을 내놓는 기업에서 이 심리를 놓칠 리가 없다. ‘명품의 바이블’로 꼽히는 잡지 <뱅생캉>(25ans·25살)에 등장하는 고가품들은 멋진 모델을 내세워 “집안 좋고 센스 있으며 지적이고 교양 넘치는 여성”을 위한 제품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진다. 집안·센스·지성·교양은 추상적인 수사지만, 무수히 많은 여성에게는 그렇게 되야 할 구체적인 목표가 된다. 여기에 이르는 유일한 수단은,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경제불황이 고가브랜드를 키웠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고가 브랜드 제품을 키운 것은 경제불황이었다. <코스모폴리탄>의 윤경혜 편집장은 “고가 브랜드 제품은 구제금융기 한파 때 대거 쏟아져 들어왔다. 국내 브랜드가 쓰러질 때 자본력을 갖추고 소비 타깃을 정확하게 한 결과 급성장했다”고 말한다. 당시는 경기가 얼어붙어 ‘정말 돈이 있는’ 상류 소비층의 소비력이 도드라질 때였다. 그 뒤 경기가 풀리면서 소비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다. 20대의 고가품 선호 흐름에 대해서는 상반된 해석을 한다. 패션마케팅 기획자 황의건(오피스 H 대표)씨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이를 바라본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품질 경쟁력이 생기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기 안목을 갖춰나가는 훈련이 된다는 것이다. “외제차가 들어오면서 국내차의 품질과 디자인이 좋아졌듯이 패션 분야에서도 외제 브랜드는 국내 패션산업을 긴장시켜 상승효과를 낳죠. 게다가 패션은 라이프 스타일 자체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골라내는 경험을 기른다면 일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 일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일본 주간 <문예춘추>에 ‘명품 쇼핑기’를 연재하는 프리랜서 작가 나카무라 우사기는 이렇게 일갈한다. “명품은 품질이 좋고, 사람의 안목을 길러줍니다,라고? 웃기지 마라!” 그가 명품을 소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여왕처럼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서.” 그의 책은 최근 국내에도 <나는 명품이 좋다> <너희가 명품을 아느냐>(사과나무)라는 제목으로 잇따라 소개됐다. 자신의 글을 두고 쇼핑벽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심한 여성’의 ‘한심한 스토리’라고 밝히지만, 명품의 생리와 본질, 사람들의 욕망과 한계를 솔직하게 보여줘 눈길을 끈다. 그는 “명품이란 ‘나도 상류계층이 되고 싶다’는 서민들의 욕망을 무기삼아 성장해왔다”고 잘라 말한다. 한 마디로 환상과 착각을 주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샤넬 우산은 방수처리가 안 돼 있어 비가 많이 오면 줄줄 새고 망가진다. 비오는 날 쓸 수 없는 우산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일까. 그러나 우사기에 따르면 “샤넬 마크가 붙은 가죽 우산 케이스를 어깨에 멩 것만으로도 시선이 집중된다.”
쇼핑벽 주체 못하는 한심한 여성?
현대인을 ‘패션인’이라고 이름붙인 프랑스의 사회사상가 쥘 리포베츠키는 자신의 책 <패션의 제국>에서 “옷을 멋들어지게 입고 최신 유행을 철새처럼 좇는 사람이 패션인이 아니라 덧없음의 논리에 따라 덧없음의 유혹이 자극하는 대로 움직이는 현대인의 모습이 패션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신개인주의자인 패션인은 유혹에 따라 움직이기는 하되 무조건 그 물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들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15년 전에 나온 이 진단은 벌이의 70∼80%를 패션에 쓰는 ‘대한민국 소비특구 25살’ 여성들을 대변하는 말임과 동시에 그들을 향한 경고로도 들린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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