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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쇼핑 퀸!! 백화점 업계를 강타한 20대 여성군단, 쇼핑할 때가 가장 즐거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지난달 문을 연 서울 강남역 앞의 손발관리매장 ‘씨네일 ’은 손발을 마사지 받고 손톱을 예쁘게 가꾸려는 여성들로 늘 북적인다. 아침 11시에 문을 열고, 밤 11시에 문을 닫는 이곳이 가장 분주한 시간은 저녁 7시 이후. 퇴근한 직장여성들이 찾는 시간이다. 주로 20대 중후반의 젊은 여성들이다. 지난 4월18일 저녁 이곳에 들른 강지민(가명·26세)씨도 그 가운데 한명. 외국계 다단계판매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이날 발마사지를 받기 위해서 들렀다. “샌들 신을 계절이 왔잖아요. 뒤꿈치에 각질이 있으면 지저분해보이니까 여름에는 꼭 발손질을 받아요. 손과 손톱 관리는 2주에 한번 정도 늘 받고 있고요.”
좋은 옷, 좋은 화장품…
손관리를 한번 받는 데 드는 비용은 2만원, 발은 4만원이다. 종아리까지 마사지 받으면 7만원. 수수한 감색 재킷에 회색 스커트 차림의 강씨는 한눈에도 유난스레 치장하는 부류로는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 만나면 주로 백화점 쇼핑을 하거나 같이 피부관리를 받아요. 그리고 맛있는 것 먹으러 가죠. 아웃백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자주 가요. ” 강씨의 한달 용돈은 40만원 정도. 여기에는 옷이나 액세서리 등을 구입하는 데 쓰는 카드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교통비와 외식비, 운동 등에 쓰는 돈이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월말에 나오는 카드청구는 30만원에서 50만원가량 된다. “가방이나 신발은 루이비통이나 페라가모 같은 명품을 종종 사는 편이예요. 옷은 직업상 정장을 자주 구입하는데 마인 같은 국내 브랜드를 입어요. 명품은 비싸기도 하지만 체형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강씨는 ‘일부 몰지각한’ 사치덩어리 명품족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0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 패션 등 라이프 스타일을 다루는 잡지 <코스모폴리탄> 2001년 9월호가 2000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강씨의 소비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달에 의류비로 지출하는 돈으로 67.4%가 10만∼20만원을, 20.9%가 20만∼30만원을 쓴다고 응답했다. 화장품을 구입하는 데 쓰는 돈으로 5만∼10만원을 쓴다고 응답한 사람이 72.5%. 명품 브랜드 구입 경험이 있는 사람도 79%나 된다. 옷을 주로 구입하는 곳은 백화점(60.6%)으로 일주일에 한번 이상 쇼핑을 한다는 응답자가 77.5%(1회 54%, 2∼3회 23.4%)에 이르렀다. 소비에서 20대 여성들의 ‘약진’은 백화점 매출변화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롯데백화점 본점이 지난해 구매고객 가운데 롯데카드 사용객 59만여명의 구매액을 분석한 결과 20대가 전체 매출의 25.5%를 차지했다. 절대빈도는 32.2%를 차지한 30대의 뒤를 이었지만 30대를 비롯한 모든 연령대의 매출비중이 전년보다 줄었으나 20대는 5%나 늘었다. 엄청난 잠재구매력을 예고하는 수치다. 이른바 명품이라고 하는 고가의 해외 브랜드 구입에서도 20대의 구매력은 증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명품군 매출경향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20대의 비중은 99년 16.1%에서 2001년에는 20.8%로 늘어났고, 가파르게 상승선을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여성, 특히 경제력을 갖기 시작한 20대 중반 여성들이 주요 소비자군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쓴 만큼 번다”는 철학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은행에서 6년째 근무하는 한정아(가명·25)씨를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은 ‘쇼핑 퀸.’ 그는 자칭 “백화점 매출증가의 성실한 도우미”다. 그의 한달 평균 카드결제액은 50만원 정도. 그 밖에 헬스와 피부, 손발 관리에 30만원가량을 지출한다. 한씨는 “한달 수입 160만원에 비해 과소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명품에 관심이 많은 그는 6개월이나 10개월 할부로 가방이나 선글라스를 구입한다. 옷은 주로 국내 브랜드 의류를 구입하지만 큰맘먹고 펜디 겨울용 코트를 장만하기 위해 11개월째 매달 10만원씩 계를 붓고 있다(표 참조). 화장품 공동구매를 위한 계도 하나 들었다. 시슬리 기초화장품 세트를 인터넷으로 구입하기 위해서다. 로션 하나에 20만원가량 하는 시슬리는 “한국 사람들이 회사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브랜드. 지지난해에 3년 동안 모은 돈 400만원으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서 쇼핑하는 데 쓴 400만원 카드대금을 1년에 걸쳐 갚느라 고생하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나름대로의 쇼핑 원칙이 있다. “절대로 카드연체는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것”이다. 한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지만 평소에는 집에서 싸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돈을 아끼기 위한 이유도 없지는 않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예요. 후딱 밥을 먹고 직장 동료들과 근처 백화점을 쇼핑하거나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상품을 검색하면서 남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요.” 지금은 갖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게 사실이지만, 대책 없는 쇼핑 중독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30대가 되면 창업할 생각이다. “평생직장이 아니잖아요. 혹시 결혼하면 나가라고 할 수도 있고. ”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도 그에 대한 준비다. 현재를 즐기는 바탕에는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깔려 있다. 한씨는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이 단지 과시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어요. 돈도 쓴 만큼 번다고 하잖아요. 저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요.” 성공한 여성의 커리어 전략이나 라이프 스타일 등을 자주 소개하는 <코스모폴리탄>의 윤경혜 편집장은 “고전적인 명품족의 이미지가 귀족인 데 비해 요즘 젊은 여성들이 쇼핑에 많은 돈을 쓰면서 보이고 싶은 이미지는 부잣집 딸이 아니라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라고 지적한다. “독자 모니터를 하면 결혼을 안할 수도 있지만 직업적 성공은 반드시 하고 싶다, 또는 해야 한다는 응답이 훨씬 많고, 성공담을 특집으로 소개할 때 판매부수도 올라간다. 이들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옷을 잘 입는 것 역시 성공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옷차림이 감각뿐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지성을 표시하는 방편인 셈이다. ”‘옷차림도 전략’이라는 오래 된 여성복 광고 카피가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는 현실이 된 것이다.
국내 입점 안해도 인터넷서 소비 폭발
이 잡지의 구성은 20대 중반 여성이 가장 ‘핫’으로 여기는 관심사를 잘 드러내준다. 예를 들면 ‘국내 미유통 화장품 브랜드 꿰뚫기’식 기사는 이전부터 여성지들이 구경 한번 하는 식으로 소개하는 프레타포르테·오트쿠튀르 패션쇼 등과는 달리 구체적인 구매정보를 알려준다. 국내에서는 유통되지 않더라도 인터넷에서 제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정보력이 잡지를 앞지른다. 국내 미유통 브랜드 이름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더 상세한 소개를 요구하는 주문이 많다.” 전지현 입술로 알려진 미국 베네피트사의 베네틴트(입술에 윤기를 내는 색조 화장품)는 국내 매장에 입점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한 제품. 지난 3월 말 한국 상륙 뒤 색조 화장품 가운데 최고의 판매실적을 올린 스틸라도 국내 진출 전부터 메이크업에 관심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였다.
열번 정도의 비교·검증과정
그는 물건을 살 때면 열번 정도의 비교, 검증 과정을 거친다. “여성지의 제품 소개나 제품 사이트, 다음 카페 같은 데 들어가서 제품 사용후기를 자세히 읽어보고 가격도 여러 번 비교한 다음 선택해요. 인터넷의 공동구매 가격은 너무도 다르잖아요.” 화장품 브랜드들이 최근 인터넷 홍보에 각별히 신경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외 브랜드 선글라스와 에스티 로더, 시세이도 등의 수입 화장품 홍보를 대행하는 차커뮤니케이션의 차희숙 실장은 “소비자들이 제품 사용감상 등을 매우 적극적으로 쇼핑몰이나 동호회 사이트에 올려놓기 때문에 인터넷에 한번 안 좋은 소문이 나면 그 제품은 100% 실패로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말한다. 유씨는 쇼핑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패션 잡지를 세개 정도 꼬박꼬박 사보고, 백화점에도 일주일에 한번은 나간다. 좋은 세일 물건이 나올 때를 대비해 사이트 검색과 홈쇼핑 채널 시청은 날마다 하는 편. 더 싸게 사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습관이 되다 보니 쇼핑 재난을 겪은 적도 있다. 지난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석달 쉬는 동안 쓴 카드대금이 70∼80만원에 이른 것. 신문에서 학습지 편집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그 돈을 갚느라 1년 동안 허리가 휘었다. “놀다 보니까 시간도 많고 내가 불쌍하고 볼품없이 느껴져 백화점을 다니면서 정장, 원피스 같은 걸 나도 모르게 마구 샀어요.” 유씨의 과소비체험은 쇼핑과 패션이 젊은 여성들의 자존감과 매우 강한 끈으로 묶여 있다는 걸 보여준다.
솔직한 욕망, 적극적 쾌락
인터넷과 홈쇼핑 텔레비전, 잡지 등 정보의 증가는 소비욕망의 증가를 동반한다. 특히 외모에 대한 경쟁심이 강한 20대 여성의 또래문화와 맞물려 만족의 체감률은 점점 높아진다. 전반적인 씀씀이가 커지는 것을 물론이고, 종종 감당할 수 없는 과소비에 이르기도 한다. 평촌에 사는 신아무개(30)는 얼마 전 200만원가량의 카드대금 청구서를 받았다. 만들기는 했지만 책상서랍에 두고 쓰지 않는 신용카드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집에 있던 여동생이 쇼핑하느라 쓴 돈이었다. “브랜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여동생의 옷장을 보면 대부분 브랜드 제품이고, 종종 명품 로고도 눈에 띄었다”는 신씨는 “방배동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여유있게 지출하는 친구들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 것 같다”고 덧붙인다. “동생은 직장에 다닐 때도 전혀 저금을 하지 않고, 모두 물건을 사는 데 썼다. 높아진 소비수준이 수입이 없어졌다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 신씨의 동생처럼 저금을 하지 않거나 전체 소득 가운데 저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떨어진 것도 20대 여성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달 저금액 20만원 가운데 12만원이 해외여행 자금마련을 위한 적금인 한정아씨처럼 저금액의 상당부분도 미래를 대비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기기 위한 경우가 많다. “무작정 돈을 모으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나를 위한 투자가 미래를 준비하는 거죠.” 열심히 벌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미래의 꿈이 아니라 해외여행을 다녀옴으로써 미래의 나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이들의 생각은 전 세대의 것과 분명 다르다. 오로지 안정된 미래를 위해 달려온 부모세대가 요즘 겪는 위기와 좌절에 비춰본다면 어느 편이 바람직한가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해보인다. 취재하면서 만난 20대 중반의 여러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에 대한 솔직한 태도, 현재의 쾌락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그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가꾸면서 느끼는 행복이 무언가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처럼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건 기자가 이미 ‘전 세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까. “명품족이니 과소비, 몰개성이니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이든 사람들의 고정관념으로 젊은 사람들을 훈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의 심각한 도덕주의나 대단한 자제심 때문에 세상이 좋아진 것도 별로 없잖아요. ”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만난 한 젊은 여성은 기자의 우려섞인 물음에 이렇게 답한 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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