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4월17일 제405호 

나이 먹은 게 죄냐?

전 생애를 따라다니는 ‘나이 차별’ 족쇄… 효율성과 인권 측면에서 너무 안 맞아




“차라리 구조조정이라도 당해봤으면….” 박영수(가명·30)씨는 재수끝에 원하던 학과에 진학했고 대학 시절 군 입대 전후로 두 차례 휴학을 하고, 그 기간에 모은 돈으로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 탓에 그는 졸업할 때 이미 기업의 채용기준(만 27살)을 넘어 있었다. 눈을 “낮은 곳으로 돌려” 중소기업에 취업했으나 반년도 되지 않아 회사가 문을 닫고 말았다. 공무원 시험(9급)에도 응시했으나 한 차례 낙방한 뒤 지원 자격 나이 상한선을 지나버렸다. 경기는 차츰 풀린다지만 그는 차츰 삶의 의욕을 잃고 있다.

‘붕 뜬 젊은이’가 7만여명


사진/ "취업수칙 제1조: 29살 넘으면 얼씬도 말라!" 4월 13일 서울 대학로에서 경실련 주최로 열린 나이차별 뿌리뽑기 거리 캠페인 장면. (박승화 기자)


박씨와 같이 구제금융기 한파로 취업기한을 놓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붕 뜬” 젊은이는 7만여명이 훨씬 넘는다. 박씨는 “인생의 ‘낙오자’가 된 기분이다”는 심정을 토로한다. 얼마 전 친구의 아기 돌잔치에 갔다가 우울함이 더 깊어졌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박씨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남들은 돈 벌어 결혼하고 집 얻고 애 낳는데…, 난 대체 무엇이 문제지?”

성영신(58·서울 송파구)씨는 오늘도 인근 노동사무소 구인구직란을 샅샅이 살핀다. 전직 교사 출신인 그는 지지난해 나이에 상관없는 유망직종으로 소개된 노동부 공인 직업상담사 자격증도 땄지만, 2년이 넘도록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있다. 그리 큰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공공근로 성격의 직업상담원, 계약직 통계조사원, 여성센터 상담원, 임시 상담교사 등 자격증과 경력이 쓸모 있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시도별 직업상담원 모집란에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소지한 20∼35살 이하”라는 기준이 명시돼 있었다. “면접이라도 볼 기회를 달라”며 노동부에 진정해봤지만 “노동부는 원칙적으로 나이제한을 두지 않지만, 각 지자체의 고용은 그 쪽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다”는 냉랭한 답변만 들어야 했다.

성씨는 자원봉사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러나 여기서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명예 직업상담원, 여성문화센터 하루 상담원, 청소년센터 도우미, 장애인복지회관 도우미…. 줄줄이 신청했으나 그대로 밀려났다. 심지어 노인 컴퓨터 강좌 자원봉사까지 거절당했다. 한번은 담당자에게 터놓고 물었더니,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몇살인 줄 아세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공공근로나 자원봉사도 결국 ‘부리는’ 사람은 공무원이므로 나이가 많은 성씨는 부담된다는 것이었다. 성씨는 “내집 앞 쓸기, 불우이웃 돕기, 쓰레기 분리수거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에 보탬되는 일은 없는 것 같다”고 씁쓰레한다.

나이가 죄다. 박씨나 성씨의 경우를 보면 분명한 죄다. 젊은 시절 취업기간을 놓친 사람이나, 나이 많아 ‘마땅히’ 놀아야 함에도 놀지 않는 사람을 우리 사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노동시장에서 그러하고 일상에서 그러하다. 각종 ‘적령기’라는 이름으로 인생의 주기를 촘촘히 구획해 거기서 한발 삐긋한 사람은 영영 사회적 금치산자, 인생의 불구로 내몬다. 박씨는 이렇게 항변한다. “제가 게으르고 무능하다면 할 수 없지만,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쟁에 뛰어들 기회 자체를 원천봉쇄당하고 인생의 모든 시나리오를 보류해야 하는 것은 너무한 게 아닙니까?”

대기업 절반 이상이 ‘나이차별’

정부는 지난해 입사연령 제한을 철폐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전해에도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은 기업의 입사연령 제한규정을 없애기로 합의했고, 금융기관과 금융유관단체들까지 인력 채용 때 나이제한을 폐지하도록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가까이에는 3월 말 노사정위원회 경제사회소위원회에서 ‘청년층 고용창출’을 위해 “불합리한 연령 차별을 없애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합의문을 내놓았다. 문제는 이런 상징적인 선언이 선언에 그친다는 것이다.

4월 한달간 각 신문에 실린 구인광고란을 보면 여전히 “남자 75년 이후 출생자, 여자 78년 이후 출생자”라는 문구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경리직·비서직 모집란에는 “80년 이후 출생자”로 못박고 있는 곳도 있다. 대졸자라면 남자는 만 27살이 되기 전에 여자는 만 24살이 되기 전에 무조건 취업해야 하는 것이다. 학업과 군복무 기간을 지내고 나면 여유 기간은 불과 1∼2년 안팎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첫 일자리 진입 기간이 평균 15.5개월인 통계(2002 한국노동연구원)에 비춰보면 하루라도 다른 데 눈을 팔면 안 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취업전문회사 리크루트의 공동조사(2월25일∼3월11일)에 따르면 대기업의 경우 절반 이상이 사람을 뽑을 때 나이제한 규정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제한 규정을 두는 이유에 대해서 대기업 채용담당자의 과반수(51.7%)는 연공서열문화를 꼽았고, 그 다음으로는 업무습득의 비효율성(38.3%)을 꼽았다. 나이제한을 폐지할 의향에 대해서는 5명에 1명꼴로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나머지는 모두 소극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근속연수에 따라 호봉승급이 달라지고 연장자를 대접하는 연공서열 문화는 그러나 ‘적령기’를 지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취업이나 고용에서의 나이제한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관행”이라면 일정 나이 이상자에 대한 강제퇴출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행”이다.

‘노동의 유효기간’은 굳어졌나


사진/ 성영신씨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갖고도 직업상담원 모집에 원서조차 못 내봤다. 단지 나이가 쉰줄 후반이라는 이유로 자원봉사마저 거절당했다. (박승화 기자)


지난 2월 금융감독원 인사에서 임원(부원장보)으로 승진하지 못한 10명의 국·실장은 보직을 받지 못했다. 이들이 물러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48년 이전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근영 금융감독원장은 2000년 9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인사에서 “46년생(당시 만 54살) 이상은 임원이 되지 못하면 모두 옷을 벗으라”는 기준을 내놓았다. 그 뒤로도 이런 인사원칙은 계속 관철되고 있다. 올해 국장 보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상담역 등으로 배치됐으나 이 자리는 나가기 전에 시간을 버는 자리일 뿐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54살이면 한창 일할 나이다. 그 나이에 일자리가 없어진다면 막막할 것”이라며 “하지만 조직 전체의 측면에서 보면 인사적체가 해소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과 조직에서 나이 차별은 이렇듯 복합적인 이유로, 그러나 선명하게 존재한다. 노동정책을 만들고 실태를 관리감독하는 노동부도 “사람을 뽑는 것은 기업 고유의 권한”이라는 주장에 밀려 뒷짐지고 있다. 노동부가 하는 나이차별 완화 방안은 일정 나이(만 55살) 이상자를 뽑는 기업에 장려금을 준다는 정도다. 노동부 담당자는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지기 전에는 별다른 방안이 없다”고 말한다.

지난 4월12일 밤 SBS 토론프로그램에서는 ‘40대 경영진 급증 현상’을 놓고 공방이 오갔다. 40대 경영진 급증은 40대 간부·임원진 퇴출과 동전의 양면이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전화 여론조사에서 시청자의 4명 중 3명은 이 현상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응답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인위적인 퇴출에 대한 비판의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강제퇴출은 흔히들 연공서열에 따른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한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지금과 같은 취업연령 제한, 일정 나이 이상의 강제퇴출은 사람을 나이로 줄세우는 것이라 오히려 연공서열을 조장하는 측면이 크다”고 털어놓는다. “직업훈련과 자기계발 기회를 들먹이지만, 사실상 어린 사람은 부려먹기 편하다. 반면 나이 많은 사람이 함께 있으면 분위기도 칙칙하고 돈도 많이 든다.” 그 결과 우리의 노동생애 주기는 2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유효기간’이 정해져버린 셈이다.

취업과 퇴출에서의 나이 문제는 효율성과 이득을 따지는 경제논리를 들이대면 논쟁 자체가 블랙홀로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선임연구위원은 “효율성과 합리성은 나란히 가는 것”이라며 “경제학자의 시각에서도 노동시장의 나이제한은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관행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선 취업연령 제한은 다수의 사람들을 자영업으로 내몰아 인적 자원을 낭비하는 것임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생산인력을 감소시켜 노동시장에 압력을 준다. 두 번째는 나이에 따른 차별은 취업뿐만 아니라 승진·보직에서 이직·해고에 이르기까지 노동생애 전주기를 위협해 사회의 안정성을 망가뜨린다. 금 연구위원은 “공공부문에서의 나이차별 완화 노력은 사회적 파장이 크다”고 전제한 뒤 “고용에서의 나이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정부가 개발해 운영해나가는 게 시급하다”고 말한다.

물과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서…




지난해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 외에도 종교·혼인 여부·가족상황·외모·사회적 신분·출신지역, 그리고 나이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법조항으로는 어느 선진국 부럽지 않은 원칙을 마련한 것이다. 인권위를 통해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한 성적 소수자, 채용을 거부당한 장애인, 포주와 손님들의 착취에 시달리는 매춘여성을 비롯해 병역 거부자,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인권위에 접수된 차별과 인권침해 사례 중 나이로 인한 차별에 대한 진정은 아직까지 없다. 나이차별 뿌리뽑기 시민캠페인을 벌이는 경실련 류한승 간사는 “나이차별이 없어서가 아니라, 물과 공기처럼 너무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를 해석하며 “사회 전체적으로 나이차별에 대한 심리적 이해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이가 젊다고 무조건 순발력있고 진취적이지도 않고,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탄탄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잘 하게 하는 것, 노동시장의 효율성·합리성 이전에 사회가 구성원에게 보장해줘야 할 인권인 것이다. 나이를 잣대로 사회적·개인적 삶을 재단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나이주의’는 집요하게 이를 방해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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