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4월17일 제405호 

언어에 숨은 억압

극존대에서 극하대까지 세분화된 우리말의 계급성… ‘님’의 위력을 보라

“나이를 따지는 게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상대방과 격의 없이 이야기하려면 나이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나보다 나이가 많을 때는 형이라 존대하고, 어릴 때는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낄 만큼 가볍게 말을 놓는다.” 상대방의 나이에 따라 존대와 하대를 적당히 바꿔써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은 이아무개(39)씨가 기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개씨’라는 것보다는 ‘형’이나 ‘아무개야’라고 부르면 더 친숙한 느낌을 받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우리말의 존댓말과 반말은 두 사람 사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장점 못지않게 존댓말과 반말은 권위주의라는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인물과 사상> 99년 2월호에 실린 ‘한국어의 계급성을 타파하자’는 극존대에서 극하대까지 세분화된 우리말이 가진 계급성과 폭력성을 외국언어와 비교하며 분석하였다. 이 글을 쓴 이현우씨는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어와 반말의 심층에는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구조가 전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흔히 존댓말은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이 어린 간부가 나이 많은 부하직원에게 반말에 가까운 말투를 쓰는 것은 일상적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남편이 아내에게 반말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우리 같은 경어가 없는 외화의 자막까지 이런 사회적 관습에 맞춰 번역되어 나온다.

<우리안의 파시즘>에서 언어 안의 파시즘을 분석한 “너 뉘집 아들이야?”를 쓴 김근(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편다. “우리는 흔히 호칭의 대상이 신분이 높거나 존경받을 만하기 때문에 ‘님’자를 붙여 부른다고 여기지만, 실은 ‘님’자 때문에 높은 분도 생겨나고 존경받는 분도 생겨나는 것이다.(중략)다시 말해 언어체계 내에서의 계급은 그대로 사회적 관계에서의 위계로 전이되고 다시 학번과 같은 순열적 숫자로 치환된다”

이씨는 “뾰족한 수는 없어보인다”고 전제하면서도 “먼저 되도록 경어를 쓰려고 노력할 것”을 제안한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한다.” 라캉의 명제처럼 언어를 고치는 것은 무의식을 뜯어고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이 방법은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하는 데 매우 중요해보인다. 아이들의 어른 말 따라하기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언어의 평등성과 그것이 사회 기층 속에서 왜곡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말은 때로 친숙함의 표현이지만, 그보다 훨씬 자주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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