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종수 기자)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 체제의 붕괴가 곧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나 재래식 병기로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안보문제다. 남북간에 이산가족 상봉이나 철도·도로 연결이 이뤄져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변하지 않으면 북-미관계도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워싱턴의 보수적인 싱크탱크 허드슨 연구소의 로버트 듀자릭(Dujarric) 선임 연구원은 미국의 관심사는 오직 한반도에서의 대량살상무기 제거라고 강조했다. 하버드와 예일대를 나온 듀자릭 연구원은 1993년부터 허드슨 연구소에서 안보분야 전문가로 일해왔다. 워싱턴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 사이의 가장 활발한 토론장인 ‘한국-일본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최선의 방법은 북 위협 무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동맹국인 한국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못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경정책을 고수하는 이유와 배경은 무엇이라 보는가.

사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일관적이지 않다. 지금까지 여러 번 정책 변화가 있었다. 대북 강경정책은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3월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드러났다. 하지만 같은 해 6월에 발표된 대북정책 재검토는 기대한 것보다 덜 강경적이었다. 그 뒤 ‘악의 축’이라는 대북 강경발언이 나왔으나 부시 대통령은 한국에 가서는 유화적인 발언을 했다. 이처럼 대북정책은 상당히 변해왔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렇다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믿고 있다. 북한은 미 행정부의 지속적인 대북 개입정책을 뒷받침해줄 만한 제스처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이 부시 행정부가 강경정책을 펴는 근거다. 이 강경정책의 향방은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요구사항이 너무 포괄적이고 위협적이며 일방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더구나 아무런 보상은 생각지 않고 요구만 한다는 지적이 많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방식이 성과를 낼 것으로 보는가.

이는 구조적 문제다. 북한이 쓸 카드는 많지 않다. 그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카드는 대량살상무기다. 북한이 이들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들이 보기에 대량살상무기 포기는 곧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특히 장거리 미사일은 동맹국인 일본을 칠 수 있고, 아시아에 주둔한 미군, 언젠가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 남한은 이미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 장사정포와 로켓 공격에 노출돼 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좀더 유화적인 정책을 편다고 해도 북한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쌍방은 결코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금전적 보상을 통해서이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 개발 및 수출 중단 등의 대가로 금전적인 보상을 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워싱턴에서 누가 권력을 잡아도 북-미관계가 상당히 진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무시하는 것이다. 가령 미국은 북한에 대해 미사일 개발은 자유이나, 만약 그것들을 사용하거나 그럴 생각을 품는다면 반드시 보복을 당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붕괴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일이다. 이는 미국이 옛소련의 팽창정책에 맞서 대응했던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협상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현 단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은 동맹국인 일본, 한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할 것이다.

북-미관계는 남북관계의 장애물?

사진/ 지난 2월 20일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현재로서는 북한과의 싸움에 휘말리기를 원치 않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임동원 특사의 평양방문은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한반도 위기를 사전에 막아보자는 의도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실제로 2003년에 한반도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이 끝내 핵사찰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가.

군사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약 특별사찰에 큰 진전이 없으면 미 행정부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철수할지도 모른다. 이는 북-미간의 제네바 기본합의서의 붕괴를 뜻한다. 하지만 이런 조처도 한국의 지지가 없으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KEDO의 위기가 바로 미국의 군사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군사적 조처를 취할 경우는 오직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을 먼저 공격할 때다. 북한이 명백하게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발사를 준비하는 경우에도 미국이 선제공격을 결정할 수 있다. KEDO나 북-미간의 기본합의서 붕괴 위기가 곧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 미국 내 가장 강경한 보수주의자들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원하지 않고 있다.

임동원 특사의 북한 방문이 북-미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 북한이 어떤 제스처를 보여야 미 행정부가 만족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솔직히 미국의 관심사는 한국과는 다르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등은 미국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가령 이런 문제들은 미군의 안전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즉 미국은 안보문제에 좀더 관심이 있다. 특시 대량살상무기, 재래식 무기 등의 문제해결에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오면 북-미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관계 개선의 장애물이 북-미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임동원 특사 방북 전까지 남북관계가 제자리를 맴돌았던 것은 본질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이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늘 남북관계의 교착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물론 미국 대북정책의 문제점도 발견된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분명히 불필요한 말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막은 적은 없다. 미국은 이산가족 상봉이나 경의선 철도 연결을 방해한 적이 없다.

일각에서는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북한 경제를 살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북한이 미국에 팔 물건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미국 물건을 많이 살 금전적 여력도 없다. 북한이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투자를 하려는 미국 기업인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란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미국은 이란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기업인들은 이란과 비즈니스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란에는 돈을 벌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의 문제는 미국의 경제제재 탓이 아니다. 비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의 문제다. 따라서 북-미관계가 개선되어도 경제 회생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중동의 불똥이 튀지는 않을 것

부시 행정부의 외교군사정책이 온통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돼 있다. 미 행정부는 북한이 테러와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가. 만약 연관성이 입증된다면 미 행정부는 어떤 조처를 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현재로서는 북한과 싸움에 휘말리기를 원치 않는다. 미 군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마무리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알 카에다 테러조직을 제거하는 데도 바쁘다. 북한이 알 카에다 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증거는 없다. 분명한 것은 미국은 과거 핵·미사일 위기 때처럼 북한이 도발을 하면 보상을 주기 위한 협상보다는 강경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북한이 먼저 군사도발을 일으키지 않는 한, 동맹국인 한국이나 일본의 동의 없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인 조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동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북-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중동문제와 북한이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지는 않다. 다만 북한이 중동 나라들에 미사일을 판 적은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전면전이나 미사일 전쟁은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을 구입한 시리아, 이집트 등과 이스라엘이 한판 붙는 전쟁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직까지는 중동사태의 불똥이 북한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의 대북 접근정책이나 방식에 대해 평가해달라.

지금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은 별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경제제재도 마찬가지다. 남한을 비롯해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이 동의를 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이런 조처들은 별 쓸모가 없어 보인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북한을 포용하는 햇볕정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북한의 상응하는 대응조처가 뒤따라야 실효를 낼 수 있다. 여기서 분명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햇볕정책의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을 방위하고 좀더 유리한 위치에서 북한과 협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