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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비 넘긴 북-미 관계 남북관계 돌파구 뚫리며 새로운 전기 마련…대량살상무기 협상 등 넘어야 할 과제 산적
“단기적으로 볼 때,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행태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사일 기술은 북한이 국제시장에서 경화를 획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품이다. 또 재래식 전력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 미사일, 특수전 부대, 소형 잠수함 등 이른바 ‘비대칭’적 군사력 개발을 확대하려는 입장을 유지할 것이다. 북한이 현재와 같은 행태를 유지할 경우 동북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미국에게 주요한 위협이 될 것이다.” 지난 3월21일 미 국방정보국(DIA) 토머스 윌슨 국장이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 가운데 일부다. 윌슨 국장은 이날 보고에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재개되더라도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군사력을 획기적으로 낮출 가능성은 없다”며 “북한은 정권 안보와 지역적 위치, 협상 수단을 위해서라도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발언이다.
변하지 않는 대북인식
부시 행정부 출범 뒤 얼어붙은 북-미관계는 ‘9·11 테러사태’를 겪으며 더욱 악화됐다. 여기에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두고 북-미간에 험악한 말들이 잇따라 오가면서, 한반도에서 ‘엄중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졌다. 임 특보가 방북에 앞서 방북 목표를 두고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는 “부시 정부 들어 북-미대화가 중단되면서 그 여파로 남북관계마저 경색되고 말았다”며 “하지만 임 특보의 방북으로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거꾸로 북-미관계도 개선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핵사찰 문제는 전력지원 문제와 연계할 경우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미사일 문제 역시 클린턴 행정부가 마련했던 미사일 개발 중단과 현물 제공 맞교환 전략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래식 무기 문제를 핵·미사일 등과 함께 일괄타결하려는 우를 범하지 않는 한 북-미대화가 상당 부분 진척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진단이다. 그러나 임 특보의 방북 성과에도 북-미대화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방북 기간 중 ‘주적론’과 함께 ‘민족공조냐, 국제공조냐’를 두고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는 임 특보의 말은 북-미대화를 둘러싼 남북 양쪽의 입장 차이가 컸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악의 축’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대북인식이 변하지 않고는 북-미대화에서 다룰 대량살상무기 비확산문제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임 특보가 방북중이던 지난 4월4일 부시 행정부 내에서 비교적 온건파로 분류되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조차 이 같은 대북인식을 재확인했다. 그는 이날 미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행한 연설에서 “북한은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하고 미국과 남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기 위해 자국민을 굶주림에 허덕이게 내버려두고 있다”며 “북한은 경의선 복원 등 남한과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고, 깡패국가에 탄도미사일을 수출하는 등의 위험한 행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켈리 차관보는 “북한이 최근 대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환영하며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는 없다”면서도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로 주변국을 위협하는 행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입장을 새삼 강조했다.
강경책에 대한 내부 비판도 높아
이에 앞서 지난 3월21일 부시 행정부가 “충분한 정보가 없다”며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는 인증을 거부하자, 데릴 킴벌 미 군축협회(ACA) 사무총장도 거센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진정으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이라는) 결과를 얻기를 희망한다면, 제네바 합의를 적극 옹호해야지 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 같은 행동은 워싱턴 정가에서는 호평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북-미대화 재개 전망을 더욱 위태롭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킴벌 사무총장은 이어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클린턴 정부의 정책시도를 내팽개쳤으며, 올해는 북한을 ‘악의 축’의 일부로 규정하기까지 했다”며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정책이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부시 행정부에게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가 위기의 해소를 원하기보다 위기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이에 따른 반사이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에 찬 목소리까지 나온다. 북한이라는 ‘위협’이 사라질 경우 자칫 미사일방어계획을 포함한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 자체에 커다란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북-미대화 과정에서 미국이 핵·미사일·재래식무기 등 3대 쟁점과 함께 북한의 인권문제 등을 거론하며 밀어붙이기식으로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임동원 특보의 방북으로 열린 북-미대화의 앞날도 결국 이같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인식을 어떻게 바꿔 나가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잭 프리처드 대북담당 특사의 역할이다. 윌리엄 페리와 웬디 셔먼, 찰스 카트먼에 이어 대북정책을 총괄하게 된 프리처드 특사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난 1998년 12월 미-일정상회담이 열린 뒤, 회담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과정에서 프리처드 특사는 “북-미협상에서 미국이 북한에 제안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의 기본은 북-미관계 개선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다. 제네바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려면 결국 북-미 양국 간의 경제·정치적 관계 정상화가 중요하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6월6일 대북성명을 통해 북-미대화 재개를 선언한 뒤, 기회 있을 때마다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대화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프리처드 특사의 방북을 허용함으로써 북한은 이에 화답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북미대화를 통해 “신뢰는 하지만 검증해야 한다”는 협상전략을 도출해냈다.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검증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온 부시 행정부가 다가오는 북-미대화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보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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