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엔 항우울제 거부하는 안티 해피메이커 그룹까지 출현할 것인가
<돈 크라이 마미> <아담스 패밀리>와 <슬리피 할로우>에 출연했던 아역배우 출신 크리스티나 리치가 <프로작 국가>(Prozac Nation)라는 영화의 주연과 제작을 맡아 화제라고 한다. 이 영화는 동명의 논픽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엘리자베스 부르트첼이라는 여인이 하버드대를 거쳐 언론인으로 성공하기까지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혀온 우울증을 프로작이라는 기적의 약으로 극복해낸 일종의 인생수기이다. 또한 비틀스 이후 최고의 록스타라 불리는 브라이언 슬래이드도 2001년 자신의 새로운 글램록 앨범 <프로작 국가>를 발표했다.
프로작이라는 일개 항우울제가 도대체 무슨 영험이 있기에 ‘국가’라는 거창한 말까지 덧붙여져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의학이 단순히 질병만을 퇴치하던 과거의 역할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생활을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화방지, 비만제거, 기억력 증강 등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약물 하나로 개선시킬 수 있다는 이른바 생활의약(lifestyle drug)의 개념이 급속히 도입되고 있다.
<프로작에 귀 기울이기>(Listening to Prozac)라는 책을 펴낸 미국의 정신과 의사 피터 크레머는 정신도 얼굴처럼 얼마든지 마음대로 성형수술할 수 있다는 미용정신약물학(cosmetic psychopharmacology)이라는 도발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열이 나면 아스피린을, 두통이 생기면 진통제를 사먹듯이 기분이 좀 찌뿌드드하고 블루하다 싶으면 복잡하게 여러 생각할 것 없이 해피메이커인 항우울제를 삼키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커피나 술, 담배처럼 인류가 오랜 기간 즐겨온 기호식품 목록에 새롭게 하나가 추가되는 효과에 불과한 것일까? 그보다는 인간의 복잡다단한 정신세계를 단순한 생화학적 뇌 조작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발상이 더 앞서는 것 같다. 외출할 때 여러 개의 옷을 코디해 입는 것처럼 칵테일식으로 약을 적절히 섞어 먹기만 하면 어떠한 정신상태도 연출해낼 수 있게 되는 상황은 마치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기계적 통제를 연상시킨다.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인류가 사이보그화되어 더 고차원적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것일까?
정말 그런지 500년 뒤의 미래로 한번 날아가보자.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독재사회보다 더 살벌한 유토피아가 미래의 2540년에 펼쳐진다. 이 세계의 표어는 공유, 균등, 안정이다. 이를 위해 아기가 태어나면 ‘신파블로프식 조건반사 양육실’에서 자기의 계급에 만족하도록 세뇌시킨다. 그 결과 어떠한 계급투쟁도 생기지 않는 평화로운 낙원이 건설되었다.
우울하거나 불안하면 ‘소마’(soma)라는 약을 먹으면 만사형통이다. 이 약을 먹으면 무조건 행복해지며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 ‘소마’는 한마디로 미래판 해피메이커인 셈이다. 단순처벌보다는 조작, 통제하는 사회가 더 무서운 것이라는 미셸 푸코의 예언처럼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갈망한다. 이렇게 본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우울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며 항우울제를 거부하는 안티 해피메이커 그룹이 현실에 곧 등장할 것만 같다. 2540년이 되기 훨씬 이전에, <멋진 신세계>는 이미 우리 눈앞에서 서서히 날개를 펼치고 있다.
백상빈/ 신경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