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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봐도 우울한 당신! 자살률 높은 봄, ‘마음의 감기’에 걸린 이들에겐 치료가 필요하다
가만히 앉았어도 왠지 눈물겹다. 봄풀이 돋아나도 그렇고 강물이 풀려도 그렇다. 말없이 서러운 것들. (이하 생략)
시인 이수익은 ‘한잔의 기쁨위에’라는 시에서 생명의 ‘환생’을 바라보는 느낌을 이렇게 읊었다. 물론 시인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요, 희열과 환희의 눈물이다. 당신도 이 봄에 피어나는 꽃송이를 바라보며 눈물지어도 좋을 일이다. 생명의 힘에 감격해 그리 하는 것이라면. 그러나 그 꽃에서 읽은 게 쓸쓸함, 상실감, 심지어 죽음이라면 그 눈물은 당장 거두어야 한다. 당신이 지금 대면해야 할 것은 꽃이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치료 전문가다.
자살도 의욕이 있어야 한다?
봄은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만물이 되살아나는 계절이지만, 유독 인간에게만큼은 꼭 그렇지 못하다. 봄에 자살률이 높다는 건 얼핏 아이러니다. 그러나 봄의 높은 자살률도 알고 보면 ‘되살아남’이 원인이다. 우울증 가운데 ‘계절형 우울증’이라는 게 있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에서 시작해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쯤 끝이 나서 여름이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주기를 1, 2년마다 반복한다. 봄에 자살률이 높은 건 회복단계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자살할 기운이나 의욕조차 없다. 그러다 상태가 호전되면 건강해져가는 기쁨보다 우울증을 겪을 때의 비참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끔찍해서 자살을 시도한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우울증클리닉 남윤영 과장은 “자살률은 우울증이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통계상 자살한 사람의 70%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며, 우울증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시도율이 4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울증이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무서운 병이라는 사실은 그 내용의 엄중함에 견줘 너무나 덜 알려져 있다. 아니, 무엇보다 우울증이 병이라는 것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배기영 동교신경정신과 원장은 “신문이나 방송에 우울증이 소개되는 날이면 ‘그런 병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심지어 가족이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 숨진 다음에야 그 사실을 알고 유족도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까지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은 흔히 ‘성격 탓’이거나 ‘심약함’으로 이해된다. 심지어 우울증에서 오는 무표정도 ‘과묵함’으로 ‘좋게’ 해석된다. 그러나 선의의 해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한국심리학회장)는 “학생이 교실에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지내는 것만 봐도 곧바로 심리상담을 받게 하는 서구와는 너무 대조적”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죽든 살든 개인이 혼자 다 알아서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우울증에 유별나게 ‘관대한’ 까닭은 뭘까. 많은 전문가들은 1차적 욕구가 충족된 선진국에서 우울증 발병률이 높다는 데 주목한다. 오랫동안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울증을 그저 한으로 삭이고 살아오는 데 길들여졌다는 얘기다.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채 교수는 “미국에서는 가끔 우리 동포들이 별 생각 없이 ‘죽겠다’는 말을 했다가 구급차까지 출동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참으로 ‘우울한’ 해프닝이다.
선진국 여성의 20%가 우울증 환자
전세계적으로 어느 나라나 우울증 발병률은 비슷하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 빈도수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에서 우울증 치료가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시판약물 상위 10위 안에 ‘프로작’을 비롯해 항우울증제가 무려 4가지나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울증이 그만큼 흔한 질병이기도 하거니와 치료 또한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항우울증제도 상위권에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우울증에 대한 낮은 인식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다. 도대체 우울증이 무슨 병이기에 나와 내 주변에 그토록 깊숙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걸까.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자 몸의 병이다. 배기영 동교신경정신과 원장은 “의학쪽에서는 갈수록 몸의 병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우울증은 의학적으로 뇌에서 신경정신 전달 물질이 변화해 생기는 생물학적 병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뇌세포의 연락이 나빠져서 생기는 ‘통신사고’인 셈이다. 신경전달물질인 뇌 속의 세로토닌과 노르에프네프린 농도가 떨어지면 걸린다는 게 가장 유력한 정설이다. 우울증이 몸의 병이라면 다스리는 건 마땅히 약이다. 90년대 들어 개발된 프로작 따위 항우울증제들은 뇌 속의 세로토닌이 신경세포 말단에서 다시 흡수되는 것을 막아 뇌 속 세로토닌 농도를 높여줌으로써 우울증을 치료한다. 이들 약은 어지러움, 시야 혼탁, 소화불량, 갈증, 졸음 따위의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의 길을 훨씬 넓혀놓았다. 90년대 후반부터는 미미한 부작용도 없애는 신약들이 개발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우울증 정도가 심한 ‘주요 우울증’의 경우 이들 약을 먹으면 대개 한두달 뒤부터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병이 나은 건 아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교수는 “재발을 막으려면 1년 정도 계속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많은 환자들이 증상이 호전되면 곧바로 복용을 중단해 재발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처음 발병했을 때는 치료율이 70∼80%에 이르지만 재발 뒤에는 크게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항우울제를 오래 먹으면 바보가 된다’는 잘못된 속설이 우울증 치료를 어렵게 한다고 전문가들은 개탄한다.
약물치료보다 정신치료가 우선
특히 심리치료는 우울증을 미친 것쯤으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태도를 바로잡는 데도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울증은 병이기 전에 삶에 대한 태도의 역기능적 부작용이다. 적절한 상담을 통해 인간의 성장과 성숙의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다.” 채규만 성신여대 교수는 “이제 우울증 치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질병을 다스리는 차원을 넘어서 삶의 질을 높이는 차원으로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울증. 외면하면 죽음까지 부르지만 사귀기에 따라서는 잘 지낼 수도 있는 까다로운 이웃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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