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돌 기획 ㅣ독자가 뛰어든 기자 세상
“왜곡 보도하면 어떡하지?”… <한겨레21> 편집실을 습격한 천현주 독자의 기자 체험기
사진/ 금요일. 창간기념호 기획 회의를 하고 있는 기자들. 가지의 업무는 단순히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이정용 기자)
“난데, 너 혹시 노무현 고문에 대해 아는 거 있음 다 말해봐.” 다짜고짜 두어달 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웬 노무현이냐며 친구의 첫마디는 “너 회사 잘렸구나?”였다. 당장 내일 아침 정치팀 신승근 기자와 노 고문 인터뷰를 가야 했다. 아뿔사! 정치엔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 많은 팀 중에 왜 하필 정치팀을 먼저 돌라는 거지? 앞길이 막막했다.
지난달에 열린 독자편집위원회 전체 모임에서 유현산 기자가 “400호 특집으로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독자가 뛰어든 기자 세상으로 한번 해볼까 해요”라고 말을 꺼내자, 난 ‘딱 걸렸다’ 싶었다. 그 어떤 직업보다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자라는 직업을 부러워했던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한겨레21> 독자편집위원회 활동 이후 “또 언제 나와? 사진발 진짜 잘 받더라” 하고 묻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천현주씨는 열정은 있는 것 같은데…” 하며 탐탁지 않아 하는 유 기자를 반 협박하다시피 했다. 드디어 설 연휴가 지나고 부름을 받았다. 아흐∼ 이게 웬 횡재야!
지면 안에 숨소리를 넣으라고?
사진/ 준비했던 질문은 생각 안나고 허둥지둥…. 노무현 고문과의 인터뷰는 힘겹게 진행됐다. (이용호 기자)
기자체험 첫날은 397호 마감날인 월요일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노트북을 열어놓고 자판 위에서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난 일주일의 휴가를 고스란히 쏟아부을 작정이었다. 빈 책상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자, 신승근 기자가 마침내 기사를 다 쓰고 내게 다가왔다. 내일 아침 일찍 노무현 고문과 인터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은 노 고문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인터넷 검색도 하고 친구들에게 전화도 걸어 평소 노 고문에 대한 비판의 소리와 지지의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다 보냈다. 저녁 무렵, 사회팀에서 ‘월요회의’가 있으니 오늘 할 일이 끝났으면 참석해도 좋다는 전화가 왔다. 수요일부터 체험하게 될 사회팀이라 미리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녁식사 겸 회의라. 일분일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대단하다고 느끼며 들어선 순간, 식탁엔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일명 음주회의…. 음주운전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던데, 음주회의는 언론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사회팀 기자들은 술이 있어 말이 술술 나오는 체질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한겨레21>을 펼쳤다. 기사를 읽고 떠올린 기자의 이미지와 내가 오늘 소개받았던, 그리고 한마디라도 말을 섞었던 기자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사를 읽는 사람과 기사를 쓰는 사람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어제 신 기자와 약속한 대로 난 여의도에 있는 노무현 고문 캠프로 갔다. 다년간 쌓아온 기자생활의 노하우였을까, 신 기자는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어색함 없이 얘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막상 물어보려고 적어 두었던 질문들은 눈에 하나도 안 띄고 횡설수설해가며 두어 가지 질문을 던졌다. 소시민들의 생활고와 교육정책에 대해서(크게 심호흡하고 물었던 내 질문은 398호 어디에도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밀려오는 허탈감을 견디기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신 기자는 “아마 지금쯤 들어가면 사무실에 몇명밖에 안 나와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월요일 마감을 마치고 화요일 오전은 각자 쉬는 시간을 갖든지 아니면 함께 등산을 간다고 한다. 다음호에 대한 재충전의 시간이랄까. 사무실로 들어와서 신 기자는 노 고문 인터뷰 내용 중 30여분 정도의 녹취를 풀고(녹음을 듣고 그대로 받아적는 일) 정리해 보라고 했다. 일단 신 기자가 준 테이프와 녹음기를 들고 집으로 와서 노 고문과의 인터뷰 때 적어놓은 내용을 뒤적였다. 내가 적어놓은 내용을 대충 써놓고 녹음을 들어가며 다시 받아적었다. 30여분짜리 녹취를 푸는 데 2시간 정도 걸렸다. 이어폰을 빼고 난 뒤에도 귓가에서 노 고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테이프가 늘어났는지 확인도 할 겸 다시 처음으로 돌려 들었다. 중간중간 단어를 잘못 알아들어 친 것도 있고 정리한 내용은 앞뒤가 안 맞는 것도 있었다. 왜 그리 잘못 들은 단어는 많은 건지. 나중에 정리한 내용을 보여주자 신 기자는 대체로 정답만을 썼으나 인터뷰 상황을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했다. “정치기사일지라도 너무 정답만을 고집하면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없어요. 지면 안에 숨소리, 분노, 호소 등의 요소들이 들어 있어야 하고, 기사를 적절히 요리해서 독자들에게 좀더 생동감 있는 상황을 보여주어야 하거든요.”
나를 울린 육하원칙
다음날. “어제는 어땠어요?” 사회팀 안영춘 팀장이 물었다. “노 고문 인터뷰하고 국회 구경하고….” 사회팀 기자들은 다른 팀에 지원을 해주는 경우가 많단다. 이번주엔 경제팀 특집인 ‘돈을 향해 튀어라’에 김소희 기자가 지원을 나간다고 했다. 어찌 보면 정치든 문화든 모두 사회라는 통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팀은 이미 보도된 사건의 후속 취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발굴해서 이슈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내가 취재해야 할 ‘이경운 의문사 사건’이 그것이다. 영국유학생이었던 이경운씨는 런던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영국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라 발표했으나, 정황으로 미뤄보아 여러 가지 의문점이 발견되고, 경찰의 은폐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첫 번째로 할 일은 이 사건을 먼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해결을 위해 뛰고 있는 김성원씨와 약속 날짜를 잡는 일이었다. 안 팀장이 가르쳐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다음날 12시로 약속을 잡았다. “어디서 보기로 했어요?” 취재원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로 찾아가기로 했다는 말에 안 팀장 왈, “취재원과의 약속은 기(?)싸움인데 그렇게 호락호락 간다고 하면 안 되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기자들의 특성일까? 오전엔 사무실 자리가 거의 비어 있다. 마감 기사를 위해 발로 뛰어다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누워 있으면 기획, 일어나면 취재라는 기자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모든 시간이 말 그대로 책임질 줄 아는 자유시간(?)이었다. 11시쯤 한겨레 사옥을 빠져나와 전철역까지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체험 네 번째 날인 오늘은 김성원씨를 취재해야 하는데, 만에 하나 안 팀장이 원하는 내용을 못 캐오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갑자기 모든 질문은 육하원칙에 의해 차근차근 하고 근거를 확실히 알아와야 한다는 안영춘 기자의 말이 떠올랐다. 지하철역에 다다르자 오늘 하루만은 철저히 <한겨레21>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취재원을 기다리는 동안 질문내용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아무리 읽어봐도 덮고 나면, 시험지 받기 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리는 증상이 일어났다. 취재원은 1시쯤 얼굴을 보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도대체 우리 외교통상부는 뭘 하고 있으며, 이런 사고 하나 속시원히 처리해줄 능력도 없는가”라고 비통해했다. 취재원의 회사를 나오면서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6시쯤 별탈 없이 마친 ‘이경운 의문사 사건’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보고하는 중간중간 안 팀장의 입에서는 “Why, When, Where…” 등이 쏟아져나왔다. 육하원칙에 의해 근거를 확실히 알아와야 한다는 안 팀장의 말은 까맣게 잊은 채 취재원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의심 한점 없이 열심히 적기만 했던 나의 미련함이여!
금요일에는 문화팀 이성욱 기자와 <욕망>이란 영화를 디지털로 찍고 있는 김응수 감독과의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왕이면 영화배우를 취재하러 갈 것이지… 왜 하필 감독이야.” 하지만 취재차량까지 타고 사진기자와 함께 가는 길은 즐거웠다. 차가 신호에 걸려 정지할 때마다 괜스레 차창 너머를 힐끗거리며 사람들이 취재차량을 타고 있는 나를 봐주길 바랐다. 이성욱 기자의 인터뷰가 끝난 뒤 나는 “왜 이 영화를 디지털로 찍으세요?” 하고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색채감 등을 일반 영화보다 훨씬 잘 표현해낼 수 있고 즉석에서 찍은 장면을 보며 배우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비용도 덜 들고요. 앞으로 디지털 영화 상영관이 많이 생겨나서 디지털 영화가 값싼 영화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으면 해요.” 김응수 감독은 너무도 시원스럽게 대답해주었다.
제목 달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사진/ 문화팀 이성욱 기자(왼쪽)와 함께 한 김응수 감독 인터뷰. 김 감독의 시원스런 답변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김종수 기자)
금요일마다 <한겨레21> 기자들은 기획회의를 한다. 이번주엔 창간기념호에 대한 회의였다. 그동안 사무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무슨 얘길 하나 싶었는데 기획회의 때 팀별로 내놓을 아이디어 때문에 그렇게 골치를 썩었나보다. 기자라는 직업은 단순히 글만 쓰면 되는 직업이 아니었다. 다방면의 지식도 중요하지만, 여론을 읽을 줄 아는 안목도 필요했다. 회의를 마치고 난 뒤에는 기사 1차 마감인 토요일까지 완성해야 할 ‘이주의 독자’ 기사를 썼다. 최종마감일은 월요일이지만, 대부분의 기사는 토요일에 작성된다. 우선 인터뷰 때 작성한 메모를 보고 대강 글을 만들어 나갔다. 취재원이 한 말을 글로 옮기면서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조금씩 바꾸다 순간 멍해졌다. “나 왜곡 보도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됐다.
토요일. 기사 마감일이라 그런지 평소 아침에 보이지 않던 기자들이 열심히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라고 물어보자 유현산 기자는 “그냥 제 옆자리에서 기사에 제목과 부제목 다는 일만 하시면 돼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커다란 레이저 프린터가 옆을 턱 버티고 있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상을 가리켰다. 빡빡한 키보드에 먼지 뿌연 모니터. 그러고 보니 기자들 책상 위는 겨우 노트북 하나 올려놓을 공간만 남겨두고 다 쓰러질 듯한 책더미에, 여기저기 쑤셔넣은 자료로 어지럽다. 언제 한번 독자편집위원회가 단합하여 대청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빡빡한 키보드가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기사를 읽었다. 교직원으로 근무하며 학교 홍보책자에 기사 쓸 때도 그랬지만, 기사에 제목을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10자에서 12자의 한줄짜리 글이긴 하지만 그것에 기사 전체를 알릴 수 있는 핵심이 담겨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5시쯤이었을까. 유현산 기자가 “이제 별로 할 일도 없고 웬만한 체험은 한 것 같은데 가보세요”라고 말했다. 정말 가도 되나? 편집장이 나를 앞세우고 “자, 천현주씨 이제 간답니다” 했더니,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가도 되나? 진정한 체험은 이제부턴데. 밤도 한번 안 새우고 기자체험이라 할 수 있나? 새벽 5시까지 술마시고 취재도 나가보고 해야지. 그동안 물 좋은 데 취재도 다녔으면서 주머니도 안 채웠나? 밥 한번 안 사고, 그냥 가면 섭하지.” 나는 기자들 ‘말발’이야 어련할까 싶어 다 듣고 인사 꾸벅하고 갈 생각만 했다. 그런데 편집팀장인 고경태 기자가 딴죽을 거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고 가면 진정한 기자체험이 아니지. 자, 여기 앉아서 이 기사 제목 한번 달아봐요. 그리고 아까 단 이 제목은 독자로서 바라보는 시각일 뿐이지. 이런 거 누가 모르나. 기자는 독자들의 시각도 중요하지만 중간자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반감만 앞세우면 안 되는 거예요.” 7시까지 다시 제목을 달아보라는 고 팀장의 지시를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취재원, 그들이 두렵다
“그냥 한번 해보세요. 체험인데요 뭘” 하던 유 기자도 그제서야 “제목을 달 때는요…” 하면서 요령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면있다고 유 기자를 믿었던 나를 원망했다. 마무리 단계가 중요하다는 ‘지독한’ 고 팀장은 월요일도 기자체험을 해야 한다며 큰소리를 쳤다. 억지로 앉혀 둔다고 제목이 톡톡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포장해야 독자들이 포장지 풀어보고 감탄하는 거지? 밤 10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에야 나는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11시쯤 버스 좌석에 앉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우∼ 일주일 동안의 체험은 온데간데 없고 머리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원고지 30매 분량의 원고지를 무엇으로 채울까? 그나저나 이 기사가 나간 뒤 나에게 취재당한 취재원들이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하면 어쩌지? 제일 일찍 출근하는 임을출 기자, 베스트 드레서 김은형 기자,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김소희 기자, 기사쓸 때마다 머리카락을 괴롭히는 안영춘 기자, 가장 분주한 ‘척’하는 유현산 기자, 이 시대 마지막 아나키스트 신윤동욱 기자, 내가 기자체험하는 동안 가장 말을 아끼지 않았던 신승근 기자, 낮은 목소리의 정영무 편집장, 이상 <한겨레21> 기자님들! 증인석에 나와주실 거죠?
천현주/ 2기 독자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