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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들의 ‘파업전야’ 프랑스보다 낮은 1.42로 출산율 급락… '사회적 결단' 없으면 대책없는 고령사회로 간다
딸(5) 하나를 둔 윤씨는 2월 중순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그는 둘째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남편(36·건설업체 근무)과도 “딱 하나만 잘 기르자”고 굳게 맹세한 상황이다. 아이를 더 낳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전쟁 같은 육아’와 ‘돈문제’.
‘싱커족’을 아십니까
야근이 잦은 윤씨와 출장이 잦은 남편은 딸애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찾아오는 일부터가 악몽이었다. 친정과 시가는 모두 멀고, 가까이에 아이를 봐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반지하 전세에서 시작해 현재 사는 도시 외곽의 23평형 아파트를 장만하는 데 부부의 벌이가 몽땅 들어갔다. 꼬박 5년을 허덕이며 집장만에 매달리고도 아직 융자빚은 3천만원이나 남아 있다. “눈 질끈 감고 아이를 지우느냐, 하나 더 낳는 모험을 감행하느냐”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부부는 2월 말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지웠다. 없거나 혹은 하나이거나. 소리소문없이 ‘출산파업’을 감행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 의식하건 안 하건 아이 낳기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준파업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인구센서스를 보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1.42명.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엄마, 아빠, 동생, 나’라는 기준표현은 이제 두집에 한집꼴로 맞지 않는 표현이 됐다. 출산율이 낮기로 유명한 프랑스(1.75)보다 낮은 비율이고,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더 떨어질 전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임기의 결혼한 여성 중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91년 90.3%에서 10년 사이에 58.1%로 뚝 떨어졌다. 대신 ‘반드시 자녀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8.5%에서 41.5%로 크게 늘어났다(<2000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 교육정도나 취업유무에는 상관관계가 없었고, 젊은층으로 갈수록 ‘아이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에서 남성들의 ‘아이 안 낳기’ 결정도 이제는 튀는 생각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김아무개(40·언론사 근무)씨는 아이가 없다. 결혼 초에는 “사회생활에 에너지를 쏟고 싶다”는 아내의 뜻에 따라 아이를 안 낳았고, 그렇게 차일피일 세월이 흐르다보니 자연스레 아이없이 부부중심으로 사는 게 익숙해졌다. 그러나 최근 마흔줄을 앞둔 아내쪽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눈치다. “앞으론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게 될지 모른다는 심리적 부담 때문인지, 아이를 낳아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반대입니다.” 김씨의 생각은 단호하다. 지금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성인이 될 때 부부는 환갑이다. 언제까지 일을 할지 보장이 없는 가운데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아이에게도 부부에게도 좋지 않다. 그래서 아이에게 쏟을 에너지와 열정을 부부의 ‘우아한 노후’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싱커족’인 셈이다. 싱커(Thinker)란 결혼한 뒤 맞벌이로 왕성하게 벌고(Two Healthy Imcomes), 아이를 기꺼이 낳지 않고(No Kids),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일찍 은퇴해(Early Retirement), 인생을 충분히 즐기겠다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설득력 잃어가는 ‘종족보존의 책임감’
최씨는 차남, 집안의 장손인 형은 딸만 둘이다. 장남 특유의 책임감 때문인지 형은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오랜만에 가진 형제의 술자리에서 “너라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형의 주장과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최씨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형제간의 다툼으로 비화됐고 최씨는 형에게 졸지에 “자식 노릇 안 하는 이기주의자”로 낙인이 찍혔다. 아이를 안 낳거나 적게 낳아서 생기는 집안갈등이야 서로 이해하면서 해결해나갈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파생되는 2차, 3차의 갈등은 현재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아이를 적게 낳는 추세 속에 “남부럽지 않게 키우자”며 경쟁적인 육아, 사교육 열풍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를 위해 아이를 적게 낳고도 다시 그 아이를 기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웃지 못할 상황이 집집마다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숫자가 집안 경제력의 척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고령사회 진입 코앞에 다가왔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낮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급락 속도가 빠른 나라는 없다. 인구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 출산율은 2.1명.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83년 2.1명에서 1.4명으로 떨어지는 데 16년이 걸렸다. 출산율 급락이 빠르기로 유명한 일본보다 두배 빠른 속도이다. 그 결과 고령사회 진입도 코앞에 다가왔다. 지금은 14살 이하 어린이 인구가 65살 이상 인구의 3배이지만, 20년 뒤면 역전돼 30년 뒤에는 사회 전체적으로 어린이 1명당 노인이 2명인 상황이 된다(그래프 참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면서 고령사회를 준비해 나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전제하며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원인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파업 이전에 결혼파업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결혼을 미루거나 안 하는 비율이 늘어나는 것과 아이 낳기를 미루거나 안 낳는 추세가 커지는 것은 전체적으로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가치관의 변화로 볼 수만은 없다. 그런 가치관은 개인의 삶에 대한 사회적 지지기반이 없는 현실에서 더욱 굳어진다. 여성이 결혼하고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보육·교육·의료문제 등 생존에 필수적인 일들이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만 남아 있는 현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앞서 형과 다퉜던 최씨 역시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 주변에서 아이 기르는 걸 보면 점점 더 낳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아닌 말로 육아전쟁 없이도 아이가 보호받을 수 있다면, 경쟁적으로 돌아가는 교육전쟁이 줄어든다면,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다면,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는 갑자기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인생은 기간이 정해져 있다.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론적인 수치이지만, 일부 경제학에서는 우리나라가 수출입 없이 내수시장에서 자급자족한다는 가정 아래 사회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인구의 수는 1억명이라는 계산도 있다. 대도시에서 어깨 부딪치고 사는 사람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수치이지만, 텅 빈 농촌을 생각하면 무심히 봐넘길 계산만도 아니다. 미국의 컨설팅 전문회사 매킨지와 매일경제신문이 공동으로 내놓은 <우먼코리아 보고서>는 앞으로 10년간 생산인구에 속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90%대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극단적인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출산·육아에 대한 부담이 지금처럼 계속 부모(특히 엄마)에게 머무는 한 여성의 노동단절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획기적 처방전을 구하기는 어렵다.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 가족팀장은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나가는 것은 여성의 일할 권리 차원이 아니라 사회전체적인 경쟁력, 인구정책과 맞물리는 중차대한 과제이다”라고 말한다.
국가 차원의 의지와 전략은 없는가
개발드라이브 시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 아래 우리 사회는 60년대 평균 5∼6명이던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출산율을 다시 올리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출산율은 떨어지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유엔 등 세계기구의 해석들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 인구정책을 세워도 그 효과를 거두는 것은 50∼60년 뒤의 일이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할 경우, 오늘의 출산율은 20∼30년 뒤인 내일 가임여성의 숫자를 줄여 출산율 급락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다. 게다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출산문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의지와 전략은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 이해와 합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도 “인구가 너무 많아 줄여야 한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절반이 넘는다. 노인복지에 대한 대책 역시 ‘윤리’나 ‘효’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 모성보호관련법 개정 논란이 빚어질 때 “여자들이 놀려고 그런다”는 이야기가 정책결정권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나오기도 했다. 대체 왜 이럴까.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김종해 교수는 “국민적 합의나 정책 방향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는 까닭은 출산은 여성의 몫, 아이문제와 노인문제는 가정의 몫이라고 여기는 시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지금 빈 상투만 잡고 늘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준파업’단계에 접어든 출산율은 이미 사회를 지탱하는 가정의 뿌리와 줄기가 뒤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산·육아문제가 더이상 ‘개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사회적 결단’의 대상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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