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명. 모성보호관련법(이하 모성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26일까지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한 일반기업체 노동자의 숫자다.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인 통계자료다. 1월 한달 동안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134명. 시행 초기의 실적부진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할 경우, 올 한해 육아휴직급여를 받게 되는 사람은 1600여명 정도로, 노동부가 목표한 7만3천여명(‘2002년도 고용보험기금운용계획’ 중 모성보호비용 항목)의 2.2%에 불과한 숫자다. 지난해 개정 공방 때 경총에서 제시한 모성보호비용 8500억원에 들어간 육아휴직자 23만69명(연간 출산 여성 13만2560명과 그 배우자)에는 0.7%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산전후 휴가급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1월 한달 동안 산전후휴가급여를 받는 기업체 노동자는 52명. 올해 노동부 추정실적 12만1천명의 0.5%에 불과한 숫자다. 지난해 그 뜨거웠던 모성보호법 개정 논란이 무색해지는 이 결과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다음 사례는 그 원인에 대한 한 가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대 이하의 육아휴직 이용

사진/ 여성 일각에서는 법적으로 주어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의 정착을 위해선 정부차원의 대체인력활용제도가 운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승화 기자)

경기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과학조교로 일하고 있는 ㅇ(35)씨는 오는 3월 출산을 앞두고 지난 2월 초 학교에 출산휴가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2월28일로 만료돼 있는 계약의 갱신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해지 통고였다. “학기도 시작되는데 계약하자마자 두달 쉬게 하면 교육청 감사감”이라는 게 학교쪽의 반응이었다. o씨는 배가 불러오기 전부터 “장기근무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다른 일용직 직원들도 빨리 해고하는 수밖에 없다”는 학교쪽의 해고 압력에 시달려왔다. 그는 8년째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해온 계약직 노동자였다.

진통 끝에 통과된 모성보호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출산과 육아를 앞둔 여성노동자들의 모성보호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월2일부터 한국노총평등센터 홈페이지(www.koreawomen.co.kr)에서 ‘출산휴가·육아휴직 맘놓고 쓸 수는 없을까’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사이버토론회에 올라온 글들은 개정된 모성보호법 아래서 법적으로 ‘강제된’ 출산휴가 90일과, ‘허용된’ 육아휴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며칠 전 영양사가 팔삭둥이 딸을 출산했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였을까? 육아휴직 1년은 꿈도 꿀 수 없고, 산전후 휴가가 60일에서 90일로 확대된 것도 반갑지가 않다고 한다. 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이 기혼여성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1년에 15명 정도가 휴직에 들어가고 15명 정도가 임산부이다 보니 당연히 회사는 결혼해서 회사 다니는 것을 좋아할 리 없고 그만두기를 은근히 바란다.”(한 임산부의 글)

반쪽짜리라고 평가받았지만 여성계가 재계와 자민련 등 보수적 정치권과 싸워 힘겹게 얻어낸 권리조차 여전히 “우리 어머니는 애 낳고 바로 밭에 가서 일했다”(당시 임시국회 환경노동위 정식회의에서 자민련 조희욱 의원이 했던 발언)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당시 경총에서는 0살부터 사실상 출산시기가 끝난 40대 여성까지 포함하고, 출산을 한 여성과 그 배우자 모두가 휴직을 신청한다는 비현실적인 추산방식으로 연간 8500억원이라는 비용을 산출하기도 했다.

노동부 예상치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기대 이하의 육아휴직 이용에 대해 서울여성노조의 정양희 위원장은 “이미 예견됐던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정 위원장은 “실제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여성노동자는 38%에 불과하고, 별도의 기금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의 부담만 가중됐는데 어떤 여성이 당당하게 휴직원을 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고용보험의 실질적 혜택을 받기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90일의 출산휴가는 오히려 재계약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질곡이 됐다.

"그냥 60일 휴직만 쓰면 안 되나요?”

사진/ 지난해 5월 모성보호법 개정안 통과반대 세력을 풍자하며 퍼포먼스를 벌이던 민주노총 집회. 결국 모성보호법은 개정됐지만 모성보호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 (한겨레)

11월 이후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비정규직여성권리찾기운동본부 등 여성·노동단체에는 “반드시 90일을 써야 하나, 60일만 쓰면 안 되나”라고 묻는 상담전화가 부쩍 늘었다. 출산휴가와 재계약 시기가 겹치면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간에 아이를 낳았더라도 육아문제 때문에 해지의 ‘공포’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인천에 있는 ㄷ종합기계의 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은 2000년 노조를 만들면서야 결혼과 동시에 퇴직이라는 관행를 깨고 결혼 뒤에도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됐지만 기혼여성들은 “언제 애를 낳을 거냐”, “시간을 미리 이야기해달라”는 사실상의 해고압력을 요즘도 인사처럼 받고 다닌다. 앞서 예를 든 과학조교는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시교육청 등에 진정해 최근 재계약이 성사됐지만 계약서 아래에는 “교육부에서 위법하다고 지적하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불안한 전제가 붙어 있었다. 구체적인 시행안과 엄정한 관리감독의 부재 속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휴가’가 아닌 ‘해고’가 더 가까워진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김기선미 정책부장은 지난해 말 작은 무역회사 사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사원들이 육아휴직을 신청할 경우 그 기간에만 대체고용할 수 있는 적절한 인력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여성 고용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여성계는 법적으로 주어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제도의 정착을 위한 현실적 보완책으로 정부 차원에서 대체인력활용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김기선미 부장은 “기업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는 여성들조차 업무상의 공백에 대한 부담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각각의 업무를 도식화해 대체인력 풀을 만들고 지방노동사무소와 연계하는 역할을 정부가 한다면 기업과 여성의 부담도 줄고 실업자들에게 직업훈련과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3월부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대체인력은행’은 주목할 만한 실험이다. 지난 2월1일부터 일주일 동안 실업자를 대상으로 공모해 22명의 일용업무 단시간 근로자를 선발한 서울시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들어간 19명의 빈자리에 3개월 단위 계약으로 이들 대체인력을 투입할 계획이다. 대체인력은행제도의 실무 담당자는 “시간제 일용업무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려다 보니 4대보험이나 1년 이상 근무시 퇴직금 적용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서 “대체인력을 운영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구체적인 고용 가이드라인을 노동부나 여성부쪽이 제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성들이여, 육아휴직을 활용하라

가부장적 기득권층과 싸우면서 가까스로 따낸 결실인 육아휴직 급여 20만원이 생계가 어려운 여성과 급여가 높은 전문직 여성 모두에게 먹기도 아깝고 버리기도 아까운 계륵이 돼버린 것도 문제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영세사업장의 여성들에게 20만원이란 턱없이 부족한 급여이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여성들에게는 휴직하는 데 ‘눈칫밥’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장지연 부연구위원은 “육아급여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면 급여형태보다는 보육지원의 형식으로 바뀌어야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며 “육아보조문제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회복지적 접근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장 위원은 “육아휴직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여성보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육아휴직에 투여되는 기업의 비용이 여성 채용에 대한 비용으로 인식되어 여성 고용을 낮추게 되는 결과를 막고, 육아문제는 아직도 여성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다.

요즘도 여성단체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출산휴가를 앞두고 해고압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상담전화가 온다. 그러나 노동부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지방 노동사무소에 들어온 진정서류는 아직 한통도 없다.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는 현실에서 출산과 육아문제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개정된 모성보호법을 사문화시키지 않으려는 정부당국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한 여성과 남성 모두의 하나된 의지도 빼놓을 수 없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