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아이는 또 하나의 강박 출산·육아에 대한 생각과 조건이 판이한 30대 남편 3명의 쾌도난담
한 사람은 자신을 “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일하는 아빠’로서 두딸을 기르는 김세중(39)씨는 아들 하나, 딸·아들, 아들 둘을 가진 아빠보다는 자신이 덜 평범하다고 위안하는 아빠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이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결혼 6년차인 황규원(35)씨는 그러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특이한 사람이라는 눈길을 종종 받는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세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최준민(36)씨는 장남이지만 “‘대를 이으라’는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특이한 아빠다. 출산·육아는 여성의 고민이면서 남성의 문제이다. 30대 기혼자라는 공통점 외에는 출산·육아에 대한 처지와 조건이 판이하게 다른 30대의 세 남자가 ‘남편들의 쾌도난담’에 흔쾌히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황규원(이하 황):아버지가 교육자셨고 가부장적 집안 분위기에서 뻔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랐죠.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평생 결혼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다 출판사에 다니면서 아내를 만나게 된 거예요. 아내와는 결혼관이 비슷했는데 결혼 전에 제가 먼저 이야기했어요. 아이는 낳지 말자고.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최준민(이하 최):아내도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았나요? 황:딱히 뚜렷한 의지는 없었는데 제가 설득했어요. 저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가족관계가 가장 친밀하면서도 많은 부담을 주는 관계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 관계를 더 늘리고 싶지 않아서 결혼도 안 하려고 했고. 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피해의식도 있었고요. 그런데 자식 낳으면 나처럼 억압적 성격으로 키울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죠. 아내 역시 가족관계에 대해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기 때문에 합의할 수 있었던 거죠. 아이 낳지 말고 둘이 여유있게 살아보자, 2년에 한번씩은 해외여행도 가고. 김:부럽네. 우리 부부는 그런 조건 다 세우면서 애들까지 있으니까 죽을 맛인데. 저도 개인적으로는 결혼이나 아이가 맞지 않아요. 그럼에도 남들 보기에 내가 애를 잘 챙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애가 주어졌는데 어쩌겠어요. 아이는 대책이 없잖아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돌보려고 한 거죠. (웃음) 황:강의 나가면서 직접 아이키우기 힘들지 않으세요? 김:집이 무악재고 제가 다니는 학교 부속 어린이집이 신림동에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는 벌써 출근했으니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데리고 나가죠. 최:아이들 때문에 강의하시는 것도 제약을 많이 받겠네요. 김:‘일하는 아빠’의 육아문제,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1, 2교시 수업과 오후 6시 넘어서 끝나는 수업은 못해요. 아침 9시부터 10시, 저녁 6시부터 7시까지는 세상 없어도 애들 옆에 내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학회고 엠티고 다 데리고 다녔어요. 애매한 자리는 미리 떠봅니다. 애는 안 된다고 하면 못 가죠. 그런데 제가 남자인 게 확실히 유리해요. 애 달고 가면 사람들이 독특하다, 멋있는 아빠다 이러거든. 제 입장에서는 시간제약 때문에 하는 건데 말이죠. 하지만 여자가 모임에 애 달고 나가면 저 여자는 애한테 매여서 큰일을 못해. 이렇게 되거든요. 최:저는 결혼에 대한 강박이 별로 없어서 늦게 한 편이에요. 아이도 낳겠다, 안 낳겠다는 의지는 없었어요. 아내가 아이를 낳고 싶어해서 자연스럽게 가졌는데 아이를 낳으면서 부모님과 합쳤어요. 아내도 퇴근이 늦을 때가 종종 있어 시부모랑 같이 살기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대안이 없었거든요. 현실적으로 타협을 본 거죠.
가장 다이내믹하면서 가장 무거운…
최:처음 손자를 직접 키우셔서 그런지 아이 키우면서 기뻐하시는 부분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아내도 별 제약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고요. 제가 보기엔. (웃음) 저는 둘째를 안 낳을 겁니다. 지금도 어머니한테 의존하는 데 또 낳아 맡길 순 없죠. 우리 부부로서는 가족 누군가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 외에는 개인적인 해결방도가 없으니까. 황:첫 손자였나봐요. 최:장남인데 아이는 제가 가장 늦게 낳았어요. 동생네 아이는 동생의 장모께서 키워주시고. 그 집은 동생 내외, 장인·장모님, 막내 처남까지 함께 살아요. 김:그래도 우리는 상황이 좋은 거예요. 끔찍한 건 아이 태어나서 돌봐줄 손이 부모 이외에 확대된 가족뿐이라는 사실이에요. 남의 집에 맡겨도 가정집이에요. 육아시설에는 시간제가 있잖아요. 어린이집에서는 열두 시간 봐주는 게 기본인데 그 시간에 맞춰 매일 칼퇴근할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어요? 최:그나마 우리는 안정적인 수입 있고 돌봐줄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돌봐줄 사람 전혀 없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부부들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해요. 아이들이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을 거예요. 아직까지도 아이를 방에 가둬놓고 문걸어 잠그고 나갔다가 사고가 났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잖아요. 황:외국의 딩크족들은 중산층 이상의 전문직이 대부분인데 저는 그게 아니거든요. 지금 직장 갖기 전에 1년 동안 아내와 저 둘 다 직장없이 지낸 적도 있어요. 아르바이트하고 빚지면서 근근이 살았는데 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더라고요. 최:맞아요. 제 경우에도 결혼보다는 애를 낳는 경험에서 오는 삶의 변화 폭이 훨씬 컸어요. 현실적인 제약이 거기서 다 오더라고요. 살면서 가장 다이내믹한 경험이자, 가장 무거운 과제이죠.
애 낳으면 인격수양된다고?
김:황 선생은 아이 낳으라는 집안의 압력은 없었나요? 황:결혼 초에는 엄청 심했지요. 이기주의다 뭐다 해서 친척들이 나무라는 통에 내가 오히려 충격 받았어요. 고육지책으로 ‘고자’라고 해볼까 그런 생각까지 해봤다니까요. (웃음) 최:요즘에는 어떠세요? 황:침묵을 지키며 뭉개는 방식으로 대응하죠. (웃음) 재미있는 건 아버지도 처음에는 어른이 되려면 애를 낳고 길러봐야 한다고 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신 것 같아요. 이번 설 때 친척 중에 한분이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낳아야지’ 하니까 ‘왜 나를 위해 낳냐 자기 인생인데’라며 오히려 반박하시더라고요. 김:애 낳으면 인격수양된다는 말들이 있잖아요. 근데 아닌 거 같아요. 그 수양은 군대 가서 쌓는 것과 비슷해. 하지만 군대 갔다온 사람이 많아도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잖아요. 애 있는 집 많지만 사회가 풍요로워지는 수양은 쌓이지 않는 것처럼요. 황:저는 특정 친구들하고는 통화를 잘 안 해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온통 애 얘기만 하니까 재미도 하나도 없고 질려서 그래요. 김:나는 유달리 아이를 예뻐하는 남자를 보면 애 엄마가 불쌍해져요. 그런 남편들은 애가 조금만 다쳐도 마누라를 들들 볶지. 남자들은 사실 애와 원수질 일이 별로 없잖아요. 늦게 들어와 천사처럼 자는 모습 보거나 아니면 반가워서 방긋거리는 모습만 주로 보니까. 하루종일 애와 씨름해봐. 천사는커녕 악마 같지. (웃음) 그나저나 두분은 애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번씩 미치고 팔짝 뛰는 부부들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최:다들 힘들다고는 해도 대부분 저처럼 가족들에게 비빌 언덕을 만들죠. 김: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남편은 일간지 기자고 부인은 박사공부 하는 부부가 있어요. 시집과 친정은 광주, 부산이라 맡길 때도 없는데, 둘째아이가 다운증후군이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첫애 어린이집에 맡기고 둘째 재활치료 보내는 건 아내 몫이에요. 남편은 정치부 기자라 늘 새벽에 오니까 저녁 때도 아내가 또 그 먼 거리를 왔다갔다 해야 하고요. 강의도 한 군데밖에 못 나가죠. 밤에는 애들 재우고 책 번역하고. 황:둘째는 어떻게 낳게 됐대요? 김:계획하고 가진 건데 아이가 그렇게 태어난 거지. 주변사람들은 그 부부에게 다들 이민가라고 해요. 의지만 있으면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 부부 말이 그래도 자기들은 한국에서 비교적 존중받는 일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여기서 장애인 자식을 열심히 키워야 우리 사회에서 장애아를 키우기가 좀더 나아지지 않겠냐는 거예요. 최:그런 분들 보면 정말 저 같은 사람은 자식 키운다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총각 때 친구들과 육아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애는 (부모의) 욕심덩어리’라는 거였어요. 그런 욕망이 자신을 구속하게 되니까 아이 낳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도 더러 있었고요. 김:고위공무원 부정 저지르는 게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마 70∼80%는 자식한테 갈 걸요.
돈으로 애를 키워야 하는 시대
황:우리는 하나한테 쓸 것마저 우리한테 쓰자 이런 거죠. (웃음) 김:나는 영유아는 사회주의식으로 공보육을 하고 고등학교나 대학은 경쟁력 중심의 신자유주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완전히 뒤집어진 것 같아요. 돈없고, 가족의 뒷받침이 없으면 아이를 키울 수가 없으니 말이죠. 최: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우선적으로 공보육 혜택이 돌아가야겠지만 너무 사회적 책임만 강조하기보다는 가가호호 각개격파하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출산·육아의 사회화에 대해서 논의하자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원칙에서는 지지하잖아요. 더이상 논쟁거리가 안 되죠. 여성에게 차별적인 기업의 태도도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논리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너질 수밖에 없거든요. 김:장기적으로야 그런 경제논리가 통할지 몰라도 당장의 경제논리는 그게 아니죠. 기업 처지에서는 ‘우리가 보기에는 출산휴가 쓰는 여성들이 아무래도 비생산적이니까 남자만 쓰겠다’고 할 수 있는 거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한다고 해서 사태가 바뀌거나 개선되는 건 아니죠. 지난해 모성보호관련법 개정 때에도 결정권을 쥔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목격했잖아요. 이건 사실 여성노동자와 기득권을 가진 기업 등 이해당사자의 문제거든요. 이해당사자가 싸우지 않으면 정치권이든 정책결정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으려는 게 당연한 거고요. 황:여성이 맘놓고 애 낳아 기를 기회가 보장되는 게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해도 어느날 갑자기 이뤄지는 게 아니라 과정을 밟아야만 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전 여성뿐만 아니라 부모가 함께 목소리를 내서 바꿔가야 종착지의 방향도 제대로 설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김:아직까지는 가정과 사회활동을 병행한다는 게 무리예요. 애 낳고 기르는 게 여자의 최고 역할이라는 가치관이 너무나 공고해서 십년, 이십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리고 일하는 엄마들은 기회비용이라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고 봐요. 사회가 아무리 출산이나 양육에 우호적으로 바뀐다고 해도 둘에서 모두 백점을 맞을 수는 없어요. 한쪽에 충실하면 한쪽은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자학하죠. 나는 두딸한테 지금부터 결혼하지 말라고 세뇌하고 있어요. 결혼 전에는 동거주의자였는데 결혼하고 나서 독신주의자로 바뀌었어. (웃음)
우리 사전에 “돕는다”는 없다
최:저는 농담삼아 ‘애가 마약만 안 하면 성공이지’ 그런 말도 했는데, 애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싶어요. 만족스럽지 못한 교육체계지만 보편적인 조건 속에서 자아를 확보해나가는 아이로 자라줬으면 좋겠는데, 또 모르죠. 이것도 욕심인가요? (웃음) 황: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더 가정적으로 돼가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파트너십이니까 상대방에 대한 노력도 더 많이 하고요. 저는 결혼을 애 낳는 문제와 등식화시키는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비단 돈문제뿐만 아니더라도 애를 낳아서 키우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준비가 됐는지 성찰해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제는 생길 때가 됐지 않나 싶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가 “이상하지 아빠, 엄마가 데려다 주는 애들도 있어” 하는 딸을 가진 김세중씨와 “엄마”가 아닌 “아빠”를 부르며 우는 딸을 가진 최준민씨, 그리고 설거지와 자신의 빨래는 하늘이 두쪽이 나도 직접 한다는 황규원씨는 대담 내내 아내를 “돕는다”는 표현을 한번도 쓰지 않았다. 출산, 육아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가 아닌 부부의 문제, 사회의 문제로 풀어나가기 위해서 끼워야 할 개인들의 첫단추는 바로 이 “돕는다”는 표현을 사전에서 지우는 일이 아닐까.
참가자 프로필
김세중(63년생) 일곱살, 네살짜리 딸 가진 딸딸이 아빠.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자 시간 강사로, 언론사 다니는 바쁘고 건강이 안 좋은 부인을 대신해 가사와 육아의 상당부분(실은 대부분)을 맡고 있음. 처가와 본가에 번갈아 맡기던 아이를 요즘에는 학교 부설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부인의 생각으로 두 아이를 낳았으나 반드시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두딸에게 결혼하지 말라는 세뇌를 지금부터 부지런히 하고 있다.
황규원(67년생)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생각하는 결혼 6년차 맞벌이 부부. 아이에게 투자할 돈으로 둘이 2년에 한번씩 해외여행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고 일찌감치 실버타운에 들어가서 편안한 노후를 즐기는 게 꿈이다. 아이를 낳으라는 주변의 압력에 묵비권으로 대응하면서 최근 완고한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냈다. 나름대로 가사 분담하지만 아내의 불만으로 가끔 다투기도 하다가 최근 설거지와 자신의 빨래는 전담하기로 결정봤다.
최준민(66년생) 세살짜리 딸 하나를 두고 있는 외국계 회사의 엔지니어. 맞벌이 부부로 부모와 함께 살면서 육아부담을 상대적으로 쉽게 풀었다. 아들이었으면 하나 더 낳을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딸이라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이든 부모님을 더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컸다. 아이를 낳은 게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경험이었지만 요즘엔 화장실에 갈 때도 엄마가 아닌 아빠만 찾는 아이 때문에 가끔씩 퇴근하는 게 무서워진다고.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