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2월27일 제398호 

노무현은 대안인가

개혁성·영남표 바탕한 본선 경쟁력 주목… 개혁연대 구축 등 안팎 난관에 봉착


사진/ 누가 이회창과 맞붙을 건가. 지난 2월24일 후보경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고문이 V자를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요즘 이인제 상임고문 얘기만 나오면 신경이 곤두서고 목청부터 높아진다. “걸어온 길도 정책도 민주당과 안 맞는다. 민주당 후보를 말할 자격도 없다”, “이인제씨가 말하는 대세론은 당 안에서만 효력있는 ‘안방경쟁력’에 불과하다.” 자신만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보석’인데 당원들이 그 진가를 몰라준다는 인간적 섭섭함도 토로한다.

그럼에도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고문에게 뒤진다. 하지만 그는 영남 출신인 자신이 민주당 후보가 되는 순간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민주당=호남당’, ‘한나라당=영남당’이라는 지역대결 구도에 사로잡힌 유권자 의식이 뒤흔들리면서 영남표를 폭발적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호남표와 비호남 개혁세력뿐 아니라 ‘반DJ 비구여권’ 정서가 강한 수도권 중간층까지 흡수할 수 있는 후보는 자신뿐이라고 공언한다.

“이인제 대세론은 안방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7명의 민주당 대선 예비주자들이 후보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경선레이스에 돌입한 민주당. 여전히 ‘이인제 대세론’이 강세다. 대중지지도를 앞세운 이인제 상임고문 주변에는 이미 40여명의 현역 의원들이 결집했다. 하지만 노 고문 주변에는 좀처럼 세가 붙지 않는다.

물론 당 안팎에서 ‘노무현 대안론’을 외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다. 특히 소장·개혁성향 의원들과 보좌진들 사이에 그런 정서가 강하다. 전체유권자 중 영남 비율은 28.2%. 충청 9.9%와 호남 11.7%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이들은 이런 현실에서 호남과 충청지역이 연대해 영남을 포위하는 ‘이인제 카드’는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당밖의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진보진영에서 노무현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월18일 광주시 상록회관 연회장. 김하경 나주병원장, 박재규 변호사, 박대환 조선대 외국어대학장, 오대교 한국교원노동조합 광주본부장 등 광주·전남지역 각계인사 501명이 노무현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부산·경남, 제주의 학계·시민단체·법조계 인사들의 지지선언에 뒤이은 것이다. 이들은 “민주세력은 군사정부 아래서도 잃지 않았던 희망의 끈을 놓고 대세론에 발목잡혀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주의를 청산하고 상식과 공정한 룰이 통하는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체성과 정통성에 비춰볼 때 노 고문을 선택해야 옳다는 것이다.

이들뿐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12월17일 영화감독 정지영, 배우 문성근·명계남, 가수 정태춘, 화백 박재동 등 문화예술계 인사 100여명은 “지역통합을 이룰 수 있는 정치인은 노 고문”이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현재 300여명으로 그 세력이 확대됐다. 386세대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온 ‘제3의 힘’은 사실상 노 고문 경선 캠프에 합류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내부에도 ‘노무현 대안론’이 꿈틀댄다. 노항래 공공연맹 정책국장은 최근 노동계의 금기를 깨고 지지를 공표했다. 그는 “자유주의 세력과 수구보수 세력이 싸우는 현실에서 노무현이 승리하는 게 민중의 이익에 합치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의 주요 과제인 지역통합, 남북화해, 복지정책, 사회통합을 추진하는 데 노 고문이 적임자라는 것이다.

반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노동계 밑바닥은 노무현 문제로 들끓고 있다. 민주노총 한 핵심 간부는 “현재 비제조업체, 사무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무현 지지론이 확산되고 있다. 언론노조와 전교조에서도 정치적 고민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조차 노무현을 지지해 다시 한번 개혁공간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를 지지해 개혁세력의 운신폭을 넓혀보자는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 고문을 대안으로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각계 지지선언 잇따라도 현실에 무기력


사진/ 노무현 고문은 국민의 힘에 의한 '밑바닥 바람몰이'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2월22일 전남 나주의 한 병원을 찾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민주당 내부의 ‘이인제 대세론’을 돌파해야 할 노 고문에게 이런 움직임은 큰 힘이 된다. 그러나 현실정치판에서 ‘노무현 대안론’은 그저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당장 예선전인 당내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받고 있다. “솔직히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정체성과 본선경쟁력에서 이 고문보다 앞설 수 있다는 데 공감한다. 의원 보좌진의 경우 70%는 그를 심증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되는 문제는 다르다.” 민주당 한 소장 당직자는 노무현 대안론이 맞닥뜨린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국민경선에서도 당료 출신 중진들이 표를 좌우한다. 정치는 현실이고 이해관계다. 이 당직자는 “당원들이 대의명분과 본선경쟁력을 전략적으로 사고한 뒤 합리적으로 선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 발상”이라고 단정했다.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냉혹한 정치현실. 그 속에서 대의명분과 대선구도에 대한 추론을 앞세운 노무현 대안론보다 당내 지분이 확실한 동교동 구파가 지원하는 이인제 대세론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노 고문은 당 안에서 뚜렷한 지지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곧 이인제 고문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담은 바람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반면 ‘권노갑 사단’의 측면지원을 받고 있는 이 고문 주변에 현역 의원들이 몰린다. 노 고문은 “금배지는 중요하지 않다. 원외위원장들 다수가 나를 위해 뛴다”며 “당원들은 결국 본선경쟁력을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무현 바람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에도 장애물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 다른 한 핵심 간부는 “노동계 일각에서 노무현 지지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지만 97년 대선 당시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비교하면 미약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는 “‘노무현은 후보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정서가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노동자들의 심정적 지지는 강하지만 민주당 안에서조차 세를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직적 지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노 고문의 딜레마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개혁을 열망하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반DJ, 반이회창’ 정서를 가진 중간층의 대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당원들에게 본선경쟁력을 증명하고 지지를 호소할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반대로 “후보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하며 지지를 유보한다.

결국 경선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당 안팎에 좀더 확실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최선책은 경쟁력에서 이 고문을 앞선다는 점을 확인시키는 것.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노 고문은 그동안 ‘본선경쟁력’으로 대세론에 맞서왔다. 1위 주자인 이 고문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이길 수 있을지 회의하는 당원들의 불안심리를 겨냥한 전략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다. 여기에 대안론의 또다른 약점이 있다. “노무현 대안론을 뒤집어보자. 노무현이 후보가 될 경우 충청표와 YS집권 당시 경험을 상기한 대구·경북의 ‘반부산·경남표’가 충청도 출신 이회창 총재에게 몰린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지금 당장 영남표를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수도권 개혁성향 초선 의원) 그런데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이 고문이 앞서 있다.

‘노무현 깃발’의 파괴력 반신반의


사진/ 역전의 드라마를 위하여…, 지난 2월19일 노씨 종친회에 참석해 삼릉단에 참배하고 있다.


노 고문은 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얻은 36.8%, 2000년 16대 총선 때 부산 북·강서을에서 받은 35.3%가 ‘본선경쟁력’의 실증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반DJ정서’가 맹위를 떨친 영남에서 ‘DJ깃발’을 들고 얻은 것인 만큼 확실한 ‘노무현 고정표’라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영남 출신인 자신에게 연고주의적 투표성향까지 가세해 부산·경남에서만 50%는 득표할 수 있다고 공언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정서가 불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초선 의원은 “그런 주장은 당원들에게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으로 비칠 뿐”이라고 단정했다. 더욱이 상당수 당원들이 영남의 극심한 지역주의가 DJ정권을 망쳤다는 불신감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노 고문의 가설만 믿고 선뜻 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다. ‘본선경쟁력’은 당원의 속마음을 읽지 못한 주관적 추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 고문에게 활로는 있을까. 결국 반전을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책은 경선 초반 이 고문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근태, 한화갑, 정동영 고문 등과 이른바 ‘개혁연대’ 구축이 필수다. 노 고문 지지활동을 펼치고 있는 천정배 의원(경기 안산을·재선)은 “지금처럼 개혁성향 의원들이 각개약진해 제주, 울산 등 경선 초반부터 이 고문이 확실한 우세를 점하고 다른 주자들이 표를 조금씩 나눠가질 경우 게임은 사실상 끝난다”고 말했다. 그 이후 경선일정은 사실상 이 고문 추대를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천 의원은 “결국 3월9일 제주 경선 전 개혁후보 단일화가 반전의 결정적 기회”라고 주장한다. 경선이 치러지는 한달 동안 개혁성향 의원들이 총결집해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당원과 유권자들 사이에 개혁정권 재창출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일화를 통한 반전도 간단하지 않다. 당장 노 고문에게 가장 우호적인 김근태 고문조차 최근 “대세론과 대안론 모두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경선을 앞둔 그는 1만명의 노사모 회원과 300명의 문화·예술인들이 경선참여 원서를 들고 밑바닥을 훑고 있다.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참여 선거인단 3500명의 10배수인 35만명의 지원서를 받는 것이 1차 목표. 취약한 당내 지지기반을 경선에 참여하는 일반 국민의 힘으로 뒤집겠다는 전략. 이른바 ‘밑바닥 바람몰이’다. 노 고문의 한 핵심 참모는 “메이저 캠프에 비해 우리쪽 자원봉사자가 3배 이상 많고 충성도가 높은 유권자들이 계속 경선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결국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 고문 진영은 노동자들이 밀집한 전국 80여개 대단위 사업장을 중심으로 지지선언도 준비중이다. 제주 경선이 임박한 3월 초순이 ‘디데이’.

밑바닥 돌풍은 역전 드라마 연출할 건가

한편 이인제 고문의 아킬레스건인 경선불복 전력과 정체성 논란도 전면에 제기하고 있다. 김영배 선관위원장이 “비슷한 행위가 재발하면 후보자격 박탈 등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노 고문은 공격을 멈출 줄 모른다. 오히려 “국민과 당원이 선택할 지도자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상황이 그만큼 다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고문은 “좋은 충고로 받아들인다”고 말할 뿐 반격은 자제한다. 이 고문의 측근 참모는 “맞받으면 말려든다. 우리는 국민과 당원을 상대하며 앞만 보고 달릴 뿐 괘념치 않겠다”며 “결국 그렇게 떠드는 노 고문만 추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년 동안 민주당 깃발 아래 원칙과 소신을 지켜왔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노무현 고문. 그는 과연 밑바닥 돌풍을 일으켜 후보단일화를 이루고,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는 역전의 드라마를 펼쳐보일 수 있을까. 제주와 울산은 그 갈림길이다. 특히 3월10일 울산 경선은 그가 대안일 수 있는가를 가리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글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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