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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깊숙하게… 미국의 한국 대선 예측은 틀린 적 없다…선거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영향력 행사
“미국 관리들이 한국 내 정권교체를 열망하고 있다.” 한국 대선을 불과 두달여 앞둔 1997년 10월13일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불쑥 미국 행정부의 ‘정권교체 희망설’을 퍼뜨렸다. 신문은 미국 고위관리의 말을 빌려 클린턴 행정부가 4자회담 진전에 대해 사실상 희망을 포기했다고 전하고 “이러한 교착상태로 인해 미국 관리들은 북한에 대해 좌절감을 느낄 뿐 아니라, 1963년 이후 똑같은 정치집단에 의해 지배되어온 한국 정부에도 변화가 있기를 열망하고 있다”고 썼다. 미국 관리들은 사석에서 한국 대선에서의 야당의 승리가 남북간의 직접 대화와 관계 확대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연락사무소 개설을 늦춘 사연
공교롭게도 당시 비밀전문의 주인공이었던 토머스 허바드 국무부 부차관보는 주한 미 대사로 와 있고, 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발탁돼 지금도 두 나라의 주요 외교안보정책 조율을 하고 있다. 한국의 대선전이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특정후보를 밀어주고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 이 기사는 당시 국내 정치권은 물론 여론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미국의 무례한 내정간섭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성난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신문에 나온 미국 관리들의 말이 언론을 통해 전달된 것이기는 했으나 그 발언 뒤에는 어떤 분명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미국이 말로는 우방국 선거에 엄정중립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직·간접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음을 드러낸 단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당시 미 행정부는 이 보도에 대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펄쩍 뛰었다. 마치 노출해서는 안 될 자신들의 내밀한 부위를 내보인 듯 무척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도 비쳤다. 미 행정부는 주한 미대사관을 통해 서둘러 낸 성명에서 “미국은 한국 대선의 어느 후보도 선호하지 않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기꺼이 협력할 것이며 이와 달리 보도되는 견해는 미 정부의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랬다. 미국의 선거중립 입장은 적어도 원칙론적으로는 확고해 보였다. 심지어 클린턴 행정부는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워싱턴을 방문할 경우 면담할 수 있는 관리를 여야를 막론하고 차관보급(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엘 고어 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 후보를 만날 경우 미국이 특정후보를 선호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은 지난 87년 9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석달 앞두고 미국을 방문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선후보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만나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집권여당을 지원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치적 혼란기에 노골적 개입도
사실 미국은 과거 정치적 혼란기에 국내 정치에 노골적인 개입을 하기도 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된 뒤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3김을 상대로 “당신네들이 잘못하면 한국은 다시 국민의 뜻이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현실이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전두환 대통령의 장기집권 음모를 저지하는 데도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 대통령이 87년 단임제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하려고 군까지 동원하려 했던 기도를 무산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은 또 노태우 후보에게 6·29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도록 설득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미국은 이런 처신들과 관련해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한국 국민이 바라는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를 지원하려 했다는 얘기였다. 미국은 1997년 대선전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DJ)에게도 접근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한국 책임자가 일산 자택으로 찾아가 황장엽 신문결과를 설명한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97년 2월 망명한 뒤 오랫동안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아온 황장엽이 자신과 접촉한 한국 정치인들의 이름을 정보기관에 진술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과거 선거 때마다 용공음해로 시달려온 DJ로서는 황장엽리스트의 존재여부가 대선의 사활을 좌우할 수도 있는 현안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DJ쪽에서 먼저 요청한 것을 미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수락해서 이뤄진 것이기는 하나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미국 정보기관이 야당후보를 만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황장엽리스트는 없다’는 지부장의 보고를 받은 DJ는 용공조작의 우려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당시 언론은 미국이 과거와 달리 DJ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미국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한국을 그냥 둘 수 있겠는가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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