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2월20일 제397호 

은밀하게… 깊숙하게…

미국의 한국 대선 예측은 틀린 적 없다…선거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영향력 행사

“미국 관리들이 한국 내 정권교체를 열망하고 있다.”

한국 대선을 불과 두달여 앞둔 1997년 10월13일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불쑥 미국 행정부의 ‘정권교체 희망설’을 퍼뜨렸다. 신문은 미국 고위관리의 말을 빌려 클린턴 행정부가 4자회담 진전에 대해 사실상 희망을 포기했다고 전하고 “이러한 교착상태로 인해 미국 관리들은 북한에 대해 좌절감을 느낄 뿐 아니라, 1963년 이후 똑같은 정치집단에 의해 지배되어온 한국 정부에도 변화가 있기를 열망하고 있다”고 썼다. 미국 관리들은 사석에서 한국 대선에서의 야당의 승리가 남북간의 직접 대화와 관계 확대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연락사무소 개설을 늦춘 사연


사진/ 대선을 두달여 앞둔 1997년 10월, <워싱턴포스트>는 불쑥 클린턴 행정부의 '정권교체 희망설'을 퍼뜨렸다. 클린턴 행정부가 김영삼 정부에 점점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나아가 클린턴 행정부가 이처럼 점점 더 김영삼 정부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95년 말 총선을 앞두고 미국 관리들이 취한 행동과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특히 당시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토머스 허바드 부차관보와 당시 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 사이에 오간 ‘비밀전문’ 내용까지 소개하면서 “미국 국무부는 북-미간 연락사무소 개설과 관련해 한국의 국내 정치상황을 고려할 것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이 비밀전문에 따르면 임성준 미주국장은 “김영삼 대통령이 어려운 선거에 직면해 있다. 한국 내 보수세력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정치적 쟁점으로 사용할지 모른다. 따라서 연락사무소는 내년 초부터 4월까지의 선거 이전에는 개설되지 말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허바드 전 국무부 차관보는 “한국 내 정치상황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내용은 두 나라 정부가 96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개입’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비밀전문의 주인공이었던 토머스 허바드 국무부 부차관보는 주한 미 대사로 와 있고, 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발탁돼 지금도 두 나라의 주요 외교안보정책 조율을 하고 있다.

한국의 대선전이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특정후보를 밀어주고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 이 기사는 당시 국내 정치권은 물론 여론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미국의 무례한 내정간섭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성난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신문에 나온 미국 관리들의 말이 언론을 통해 전달된 것이기는 했으나 그 발언 뒤에는 어떤 분명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미국이 말로는 우방국 선거에 엄정중립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직·간접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음을 드러낸 단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당시 미 행정부는 이 보도에 대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펄쩍 뛰었다. 마치 노출해서는 안 될 자신들의 내밀한 부위를 내보인 듯 무척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도 비쳤다. 미 행정부는 주한 미대사관을 통해 서둘러 낸 성명에서 “미국은 한국 대선의 어느 후보도 선호하지 않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기꺼이 협력할 것이며 이와 달리 보도되는 견해는 미 정부의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랬다. 미국의 선거중립 입장은 적어도 원칙론적으로는 확고해 보였다. 심지어 클린턴 행정부는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워싱턴을 방문할 경우 면담할 수 있는 관리를 여야를 막론하고 차관보급(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엘 고어 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 후보를 만날 경우 미국이 특정후보를 선호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은 지난 87년 9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석달 앞두고 미국을 방문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선후보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만나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집권여당을 지원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정치적 혼란기에 노골적 개입도


사진/ 레이건을 만나고 있는 전두환


정치 전문가들은 지난 시절 미국이 당선되기를 희망했던 후보가 낙선된 적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어떤 이는 미국의 한국 대선결과에 대한 예측이 빗나간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한국 정치와 관련된 미국쪽의 한국정보수집과 정세분석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신들이 희망하거나 혹은 예측했던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보수집의 차원에서 깊이 개입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정부쪽 관계자들은 귀띔하고 있다. 주한 미 대사나 중앙정보부(CIA) 관계자들이 정치인들이나 여론주도층 인사들을 수시로 접촉하고 있는 것도 정보수집 활동의 하나다. 미국은 지난 1970년대 후반에는 청와대까지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한-미간에 파문이 일기도 했다.

사실 미국은 과거 정치적 혼란기에 국내 정치에 노골적인 개입을 하기도 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된 뒤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3김을 상대로 “당신네들이 잘못하면 한국은 다시 국민의 뜻이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현실이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전두환 대통령의 장기집권 음모를 저지하는 데도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 대통령이 87년 단임제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하려고 군까지 동원하려 했던 기도를 무산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은 또 노태우 후보에게 6·29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도록 설득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미국은 이런 처신들과 관련해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한국 국민이 바라는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를 지원하려 했다는 얘기였다. 미국은 1997년 대선전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DJ)에게도 접근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한국 책임자가 일산 자택으로 찾아가 황장엽 신문결과를 설명한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97년 2월 망명한 뒤 오랫동안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아온 황장엽이 자신과 접촉한 한국 정치인들의 이름을 정보기관에 진술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과거 선거 때마다 용공음해로 시달려온 DJ로서는 황장엽리스트의 존재여부가 대선의 사활을 좌우할 수도 있는 현안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DJ쪽에서 먼저 요청한 것을 미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수락해서 이뤄진 것이기는 하나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미국 정보기관이 야당후보를 만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황장엽리스트는 없다’는 지부장의 보고를 받은 DJ는 용공조작의 우려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당시 언론은 미국이 과거와 달리 DJ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미국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한국을 그냥 둘 수 있겠는가


사진/ 노태우 전 대통령. 미국은 87년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선후보를 레이건이 만나줌으로써 집권여당을 지지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보도사진연감)


“미국은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의 눈초리를 한시도 접어두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활동은 전적으로 미국의 국익과 직결된 것이다. 한국은 미국 동북아 전략의 중심축이며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다. 한국의 위기상황이나 정치적 불안을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의 국내 정치나 대선에 관여하는 것은 전혀 미국의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미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이나 직접적 의도와 무관한 간접적인 영향까지 일일이 차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이 한국 대선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한 견해는 아니다.” 20여년을 미 정부부처에서 일해온 한 한국계 미국인의 견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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